개인사업자 류지영(32·가명)씨는 지난해 승용차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차종을 바꾸기 위해 6년 가까이 탄 생애 첫 차를 팔았다. 류씨는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던 애마를 좋은 가격에 떠나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엔카닷컴(당시 SK엔카)의 ‘비교견적’ 서비스. 신청은 간단했다. 엔카닷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비교견적 신청 버튼을 누른 후 차량번호·제조사·모델·연식·사진 등 기본 정보를 입력하면 이 회사와 제휴한 전국 딜러들이 경쟁 입찰하는 방식이다.

다음 날 엔카 측으로부터 가장 높은 입찰가를 쓴 상위 3명을 소개받은 류씨는 그중 한 명에게 연락했다. 두 시간 만에 류씨 집에 도착한 딜러는 차량 상태를 살핀 후 최종 조정가를 제시했다. 사진에 없던 손상 부위가 발견돼 애초 입찰가보다는 10만원 낮아졌지만 류씨는 만족했다. 가격을 조정해도 시세보다 30만원가량 높았기 때문이다. 딜러와 거래 계약서를 쓰자마자 류씨 통장으로 돈이 입금됐다. 류씨는 “차가 내 곁을 떠나기까지 내가 한 일은 집에 앉아 스마트폰을 조금 만진 게 전부”라고 했다.

정보기술(IT)은 중고차 비즈니스를 키우는 강력한 원동력이다. 엔카닷컴 같은 중고차 거래 플랫폼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류씨는 직접 운전해 중고차 매매 단지를 돌아다녔을 것이다. 류씨는 애마 2호(SUV)도 집에 앉아서 샀다. 이때 활용한 건 K Car(케이카)의 ‘내 차 사기 홈서비스’. 소비자가 원하는 장소로 차를 배송해주고, 3일 이내에 환불할 수도 있는 서비스다. 류씨는 케이카가 제공하는 ‘3차원(3D) 라이브 뷰’로 원하는 차종을 살핀 다음 내 차 사기 홈서비스를 신청했다. 그는 “차를 팔고 사는 모든 과정을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했다. 새삼 세상 좋아진 걸 실감한다”고 말했다.

KB캐피탈이 운영하는 중고차 매매 플랫폼인 KB차차차는 IT 중에서도 인공지능(AI) 기술을 자사 서비스의 매력 포인트로 내세운다. KB차차차는 AI 기술로 중고차의 6개월 전 거래 가격과 현재 시세, 나아가 2년 후 시세까지 높은 정확도로 예측한다. 또 KB차차차는 사용자가 입력한 개인 정보를 토대로 평소 취향에 가장 가까운 차종을 자동 추천해주기도 한다. 여론조사 회사 나이스디앤알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국내 주요 중고차 앱 설치자 수는 176만 명으로, 2018년 하반기(123만 명)보다 43%(53만 명) 증가했다.


중고 명품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20대는 주로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온라인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를 통해 명품 정보를 얻는다.
중고 명품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20대는 주로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온라인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를 통해 명품 정보를 얻는다.

밀레니얼 덕 보는 중고 명품 업체들

중고차를 꽃피운 게 IT라면, 중고 명품은 소비 시장의 주축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1981~96년 출생) 특성과 연결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 소비자 심리학 전문가인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가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개성 표출 의지가 확고한 젊은 소비자는 실용성을 중요시하면서도 ‘나’를 드러낼 때는 거침이 없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양 교수의 분석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빅데이터 컨설팅 기업 롯데멤버스는 지난해 말 ‘트렌드Y 리포트’를 발표하면서 2019년 명품 쇼핑 트렌드 3대 키워드 중 하나로 ‘20대’를 꼽았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대의 명품 구매 건수는 2017년 2분기 6000건에서 2019년 2분기 4만4000건으로 2년 새 7.3배 늘었다. 전 구매 연령대에서 20대 비중도 같은 기간 5.4%에서 11.8%로 6.4%포인트 상승했다. 명품 구매자 둘 중 한 명이 온라인 커뮤니티나 중고 거래 플랫폼, 중고 명품 전문점 등을 통해 물건을 사고판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에 중고 명품 취급 업체들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온라인 명품 거래 플랫폼 필웨이는 올해 초 명품 세일(SALE) 기획전을 열었는데, 한 달여 만에 목표 매출의 300%를 달성했다. 구구스·고이비토 등 다른 중고 명품 쇼핑몰도 밀레니얼 세대의 꾸준한 방문 덕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악재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많은 항공사가 비행기를 저렴한 가격으로 리스해 운용한다.
많은 항공사가 비행기를 저렴한 가격으로 리스해 운용한다.

매년 20% 크는 중고폰 시장

중고폰 시장의 성장도 빼놓을 수 없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은 포화 상태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많지만, 중고폰 관련 수치는 여전히 견고한 모습이다. 중고폰 빅데이터 분석 업체 유피엠에 따르면 2018년 국내 중고폰 거래량(B2C 기준)은 483만5000대로 집계됐다. 2016년 365만 대, 2017년 430만 대에 이어 연평균 20%의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SK텔링크가 만든 중고폰 유통 플랫폼 ‘바른폰’은 중고폰 판매뿐 아니라 구매와 중개 거래까지 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전문가가 엄격한 검수 과정을 거쳐 품질 확인서를 발급해준다는 점이 바른폰 서비스의 특징이다. 제품이 불량일 경우 일주일 이내에 무료로 반품할 수 있다. 중고폰 판매 신청을 하면 택배기사가 원하는 장소로 한 시간 내에 찾아가는 ‘홈픽’도 바른폰 서비스의 특징으로 꼽힌다.

SK네트웍스와 홈플러스가 의기투합해 선보인 중고폰 매입 서비스 ‘민팃’은 전국 홈플러스 매장 140여 곳에 중고폰 거래 전용 ATM을 설치했다. 이용자가 민팃 ATM에 중고폰을 넣으면 AI가 기기 외관 상태를 자동 진단한 뒤 합리적인 평가 금액을 제시·정산한다. 모든 절차가 끝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분 안팎이다. 최근 SK네트웍스는 민팃 ATM의 AI 감정 기능을 통해 적합한 액정파손보험 상품을 소개하는 서비스를 출시하기도 했다. 또 CU와 리폰의 중고폰 사업 ‘리폰’은 1만4000여 개에 이르는 CU 점포의 접근성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한 가족이 SK네트웍스의 중고폰 거래 전용 ATM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 SK네트웍스
한 가족이 SK네트웍스의 중고폰 거래 전용 ATM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 SK네트웍스

기업끼리도 사고팔고

중고 거래는 기업 간에도 이뤄진다. 자동차 유통·관리 전문기업 오토플러스의 중고차 구매 브랜드 ‘리본카’는 다른 기업으로부터 중고차를 매입한 뒤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예컨대 자동차 리스 사업을 하는 현대캐피탈과 제휴하고, 약정 중도·만기에 환입된 자동차 일부를 매입하는 식이다. 오토플러스 관계자는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매입은 균일성과 안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어 B2B(기업 간 거래) 방식을 고수한다”고 했다.

큰 비용이 들어가는 기업 내 사무 가구를 다른 업체를 통해 사고팔기도 한다. B2B 전문 중고 사무 집기 재활용 전문기업 리싸이클오피스는 컴퓨터·책상·의자·파티션·에어컨 등 중고 제품을 대기업과 건설 회사, 공공기관 등으로부터 사들인 후 다른 회사에 되파는 사업 모델을 갖고 있다.

항공사는 값비싼 항공기를 리스한다. 일반적인 중고 매매와는 결이 조금 다르지만, 타 항공사가 운용했던 비행기를 저렴한 가격에 빌려 운행한다는 점에서 중고 거래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제일 작은 여객기도 1000억원에 육박할 정도여서 항공기 매매는 투자 부담이 크다”며 “저비용 항공사일수록 다른 기업이 썼던 비행기를 리스하는 경우가 잦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항공기 84대 중 54대(64%)가 리스한 것이고, 여기에는 신형과 중고 비행기가 섞여 있다”고 밝혔다.

중고 시장 활성화를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분야는 대중문화 산업군이다. 최근 중고 거래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례가 늘었다. 올해 2월부터 방영 중인 JTBC 예능 ‘스타와 직거래-유랑마켓’에는 연예인 MC들이 다른 연예인의 집을 방문해 숨은 물건을 찾아내고 이웃과 직거래하는 과정이 담겼다. 개그맨 김숙은 자신이 운영하는 구독자 16만 명의 유튜브 채널 김숙티비에서 동료 연예인의 애장품을 판매하고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는 ‘숙배송’이라는 코너를 진행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정선희 대중문화평론가는 “일반 시민 사이에서 호응받는 중고 거래 문화가 방송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되는 것”이라고 했다.


plus point

글로벌 중고 시장은 관광지부터 IT 플랫폼까지 다양

김소희 기자

왼쪽부터 영국 런던의 포토벨로 골동품 시장, 프랑스 파리의 생투앙 시장, 중국 베이징의 판자위안 시장. 사진 동방IC
왼쪽부터 영국 런던의 포토벨로 골동품 시장, 프랑스 파리의 생투앙 시장, 중국 베이징의 판자위안 시장. 사진 동방IC

한국에 동묘시장이 있다면, 영국에는 포토벨로 골동품 시장이 있다. 영화 ‘노팅힐(1999)’의 주인공 윌리엄 태커(휴 그랜트 분)의 서점이 있는 이곳은 런던 노팅힐에 있다. 도자기·접시·축구공·망원경 등 다양한 골동품이 노점에서 판매된다. 2014년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10만 명의 관객이 포토벨로 골동품 시장을 찾는다.

유럽은 현지인뿐만 아니라 관광객도 즐겨 찾는 중고품 시장의 ‘성지(聖地)’다. 프랑스 파리에는 방브 시장, 몽트뢰유 시장, 생투앙 시장 등 3대 벼룩시장이 있다. 골동품과 구제 의류를 판매하는 곳으로 2시간 안팎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소규모 시장이다. 프랑스에선 공터에서 비정기적으로 여는 벼룩시장도 50여 개에 달한다.

중국은 규모 면에서 다른 중고품 시장을 압도한다. 베이징 판자위안 시장, 리우리창 시장, 상하이 위위안 시장, 난징 푸즈먀오 시장, 지난 잉숑산 시장이 5대 중고품 시장으로 꼽힌다. 규모가 가장 큰 곳은 4만8500㎡의 판자위안 시장이다. 이곳에선 1만여 명의 상인이 고서적·그림·동전·보석·공예품 등을 판매한다. 시장을 오가는 하루 고객은 7만여 명에 달하고, 연간 거래액은 수십억원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관광지뿐만 아니라, 정보기술(IT)을 등에 업은 현대적 골동품 시장도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앱)이 중고 거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의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스타트업) ‘메루카리’가 대표적 예다. 현지 중고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는 메루카리는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중고품 사진을 찍어 간편하게 판매 글을 올리는 앱이다. 일본에선 ‘메루카리 중독’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그 덕에 2016년 기준 경제산업성 추정 중고 물품 거래 시장 규모(중고차와 중고 오토바이 제외)는 2조6201억엔(약 26조원)에 달했다.

싱가포르 중고 거래 플랫폼 ‘캐러셀’도 인기다. 소소한 생활용품에서 가구·자동차까지 1억여 개의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인공지능(AI) 머신러닝(기계학습)으로 구매자가 관심 있어 할 만한 매력적인 상품을 소개하고, 자체 간편결제 ‘캐러페이’ 등으로 거래 편의성을 높이는 기술력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말레이시아·필리핀·인도네시아·대만·호주·홍콩 등 9개국에 진출했다.

전준범·이소연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