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구 워싱턴대 경영학 석사, 국민대 겸임 교수 / 사진 김소희 기자
이항구
워싱턴대 경영학 석사, 국민대 겸임 교수 / 사진 김소희 기자

세계적 분업 구조인 글로벌 가치사슬(GVC·Global Value Chain)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고장 났다. 중국은 내수 위주의 경제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각국 정부는 글로벌 가치사슬을 해체하는 ‘리쇼어링(reshoring·해외 생산기지 국내 유턴)’ 정책을 추진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5월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세계는 이제 값싼 인건비보다 혁신 역량과 안심 투자처를 선호하기 시작했다”며 “우리에게는 절호의 기회로, 한국 기업의 유턴은 물론 해외 첨단산업과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과감한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리쇼어링이 한국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 강화 정책의 하나로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하면서 2013년 한국도 ‘유턴법(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당시 유턴법을 연구한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에게 이번 정부 방침을 어떻게 해석할지, 전화를 걸어 물었다. “유턴법 제정 당시 리쇼어링은 정책적 한계가 있다고 결론 지었어요. 산업구조를 분석하면 알 수 있습니다.”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5월 21일 서울 정동 ‘이코노미조선’ 사무실에서 이 선임연구위원을 만났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1987년부터 산업연구원에서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 동향을 연구한 산업 정책 분야 최고 전문가다. 그는 인터뷰에서 “국내 주요 산업의 경우 대기업과 협력업체가 해외 시장에 동반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공급망에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업체들이 독자적으로 돌아오기 어렵다”라고 했다. “보호무역주의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면 관세 장벽에 수출길이 가로막힐 위험도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3년 제정한 유턴법 성과를 어떻게 판단하나.
“2014년 1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총 71개 기업(대기업 1개, 중견기업 8개, 중소기업 62개)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 주력 업종이 보석과 신발이었다. 원가를 절감하려고 중국으로 나간 기업이 각각 전북 익산과 부산으로 돌아왔다. 중국 현지 업체의 맹공으로 가격 경쟁에서 밀린 기업들이었다. 한국에서 고부가가치화를 시도했지만, 성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오히려 원가가 지나치게 높아져 비용 부담만 떠안았다. 중소기업이니 고용 효과가 크지도 않았다.”

무엇이 문제였나.
“검증이 부족했다. 리쇼어링에는 몇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먼저 어떤 업종인지, 단독 진출인지 협력업체와 동반 진출인지, 현지 경영 성과는 어느 정도였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설령 경영 성과가 충분한 곳이더라도 해외 공장 유지 비용과 리쇼어링 비용을 명확히 비교 계산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한국 경제에 득인지, 실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어떻게 검증해야 하는가.
“미국은 법인세, 회계 기준, 기회비용 등 총소유비용(TCO)을 연구하는 학자나 컨설팅 업체가 산업계에 있다. 이들은 특정 기업이 국내로 돌아오는 총소유비용이 해외에 머물 때보다 높다면 리쇼어링을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타당성을 조사하지 않고 성급하게 리쇼어링 기업 수만 늘리려고 하면 안 된다. 미국이 연 400개 유치했다고 우리도 따라갈 필요는 없다. 미국은 우리와 기업 수가 배로 차이 난다. 절대적인 수치는 중요하지 않다.”

이 선임연구위원이 우려하는 상황은 기업이 수익이 아닌 구제를 바라고 ‘한국행’을 택하는 경우다. “간혹 이런 경우도 있다. 대기업이 해외에 나가보니 기존에 동반 진출한 협력업체보다 괜찮은 현지 업체가 있어 거래처를 바꾼다. 거래가 끊긴 한국 협력업체는 해외에서 도산 위기를 겪고, ‘큰일 났네’ 하고 한국 정부에 손 벌리며 들어오는 거다.” 기업 입장에서도, 한국 경제에도 모두 실이 되는 경우다.

국내에선 어떤 산업군이 현실적인 리쇼어링 대상일까.
“사실 지금 여건으로는 답을 하기 어렵다. 우선 주력 업종인 전자와 자동차를 살펴보자.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해외로 진출하면, 전속 거래를 맺은 협력업체가 10~100개 정도 따라 나간다. 이들은 동반 진출한 경우가 많아 단독 리쇼어링이 쉽지 않다. 특히나 어떤 기업을 한국에 들여와 연구·개발(R&D) 투자를 하면 좋을지 현황이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다. A라는 부품을 만드는 삼성전자의 1차 협력업체는 어디냐? 아무도 모른다. 시장에 공개되면 경쟁사에 협력업체를 빼앗길 우려가 있어서다.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하려면 정부는 적어도 이 미시적인 데이터를 알아야 한다. 듀크대 글로벌 가치사슬 연구센터 소속 교수가 한국에서 열린 세미나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얘기도 ‘(기업 간 거래 현황을 나타내는) 미시 데이터가 없으면 관련 정책은 불가능하다’였다.”

다른 산업군은 어떤 상황인가.
“국내로 돌아와도 관세를 적용받지 않을 6대 자유무역협정(FTA) 업종을 확인해봤다. 전자와 자동차를 제외하면 화학, 자동차, 전기장비, 식료품 제조, 기타 기계다. 화학은 원자재가 있는 중동에 남아 있을 확률이 높다. 남은 것 중 전기장비는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육성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할 수 있다. 해외에 진출한 전기장비 업체가 어떤 곳인지 알아봐야 하는데, 삼성전기처럼 삼성전자를 지원하는 업체가 대다수면 어려울 수 있다. 식료품 제조는 시장을 보고 나간 거라 들어오기 어렵다. 기타 기계는 분류가 안 되는 비주류 산업으로, 리쇼어링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일각에선 기업이 국내로 돌아올 유인을 제공하기 위해 획기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해외에 진출한 대기업이 국내 규제 때문에 나갔다고 생각하나? 각자의 전략에 맞춘 것이다. 기업은 보통 수요가 있는 곳에 나간다. 그러니 미국, 유럽, 중국으로 갔다. 동남아는 개발되면서 최근 수요가 생겼으니 많이 나간다. 수요를 쫓아간 기업을 데리고 온다? 전략에 어긋나는 일이다. 산업구조별로 이런 미시적인 전략을 따져봐야 한다.”

사실상 가능 업종이 없는 것인가.
“기업들이 납품선이나 공급망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 자칫하면 더 골치 아픈 문제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현재 세계 통상 환경은 ‘자국 우선주의’로 가고 있다. 내수 시장이 큰 국가는 역내 가치사슬(RVC·Regional Value Chain)을 완벽하게 구성한다. 한국 기업이 현지에 있으면 공급망에 편입되기 쉽다. 그런데 한국에 있으면 어렵다. 관세 장벽이 생기면서 수출길이 막힐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유턴 기업과 기존 기업이 조그마한 내수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그런 리스크를 왜 떠안는가.”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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