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리메이킹 아메리카(Remaking America)’ 정책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정책은 모두 리쇼어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리메이킹 아메리카(Remaking America)’ 정책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정책은 모두 리쇼어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지금 한국에서 리쇼어링(reshoring·해외 생산 기지 국내 유턴) 정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요. 미국이 한다고 우리도 다 따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리쇼어링 관련 정책간담회에서 만난 한 경제 전문가는 최근 한국이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는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연일 한국과 미국의 리쇼어링 기업 수를 비교하는 데이터가 나오고 있다. 미국과 한국이 같은 시기에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했는데 실적 차이가 크다는 얘기다. 미국은 2010년부터, 한국은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미국은 2010년 이후 9년 동안 3327개 기업이 본국으로 돌아간 반면, 한국은 2013년 이후 현재까지 유턴 기업이 100개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성과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미국의 리쇼어링 정책이 성공한 데는 40년간에 걸친 산업 역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미국을 따라 리쇼어링을 성급하게 추진하면 안 되는 이유다. 미국의 성공 사례에서 우리가 차용할 만한 점을 분석해봤다. 1980년대부터 미국 산업을 연구한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다.


몸집 줄인 美 제조업…국내서도 인건비 부담 없어

미국의 리쇼어링 정책이 성공한 원인을 살펴보려면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80년대 일본의 자동차, 전자 등 첨단 산업 발전으로 미국 제조업은 입지가 줄어들었다. 전 세계 공장이 채택한 생산 체계가 미국 포드자동차의 ‘포드주의(소품종 대량 생산)’에서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도요티즘(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바뀌는 시기였다.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우선 진압 작전을 수행했다. 1985년 G5(프랑스·서독·일본·미국·영국) 경제 선진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모임에서 엔화를 평가절상한 것. 엔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일본은 수출에 어려움을 겪었고, 미국이 산학연을 비롯 기업 간 협업으로 제조업 강국 자리를 탈환했다.

이후 미국 제조업은 무게를 덜어내는 효율화 작업을 거듭했다. 1990년대 정보통신기술(ICT) 발전과 맞물려 공정 자동화 투자를 늘리고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덕분에 지난 30년 동안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단위 노동 비용(한 단위 생산에 들어가는 노동 비용)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 미국 제조업 생산량이 경기 침체기를 제외하곤 증가세를 보였다는 점과 대비되게, 제조업 고용 규모는 2000년 6200만 명에서 2010년에는 4500만 명으로 급감했다.

제조업의 체질 개선은 미국 리쇼어링 정책에 긍정적인 기반을 마련했다. 고용 규모 축소로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높은 미국에서 인건비 부담이 줄었다. 미국과 중국의 임금 격차도 갈수록 줄었다. 중국의 제조업 종사자 인건비는 2005~2010년 연평균 19% 증가한 반면 미국은 2~4% 증가에 그쳤다. 반면 최근 급격한 인건비 인상으로 한국은 미국의 성공 사례와 거리가 더욱 멀어졌다.


고부가가치 전략 충실…내수 시장 커 부담 없어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리쇼어링 정책이 시작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계기로 실물 경제가 뒷받침되지 않는 비대한 금융 산업은 취약하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리메이킹 아메리카(Remaking America)’라는 슬로건 아래 제조업 육성 정책을 시행했다. 유턴 기업의 공장 이전 비용의 20%를 보조하고, 제조업의 연구·개발(R&D) 관련 세제 지원에만 500억달러(약 61조7000억원)를 배정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미국은 중소기업 중심의 고부가가치 기술 강화에 집중했다. 2013년 오바마 행정부는 ‘제조 혁신을 위한 국가 네트워크(NNMI·현 매뉴팩처링 USA)’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독일 제조업의 성장을 이끈 프라운호퍼 기술 연구소를 벤치마킹한 ‘제조혁신연구센터’를 향후 10년 동안 45개를 설립하는 것이다. 현재 14개 기관에서 각기 다른 미래 기술을 과제로 한 산학 협력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고부가가치 산업이 뒷받침된 덕에 미국에서 리쇼어링 정책은 탄력을 받았다. 고부가가치 산업은 입지 제약이 크지 않다. 이윤이 많이 남아 인건비 등 비용 요인에 크게 영향받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개발도상국보다 높은 미국의 인건비를 감당할 수 있는 이유다. 해외 납품처를 구하는 데도 부담이 덜하다. 고부가가치를 내는 원천 기술이 있으면 법인 위치와 관계없이 다국적 대기업과 계약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국내 제조 기업은 전속 거래를 맺고 있는 대기업을 따라 해외에 동반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납품 원가를 줄여 거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중소기업이 국내에 머무르려면 대기업과 전속 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대기업 산하 협력업체나 기타 중소기업의 현황을 파악하고 혁신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최근 트럼프 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정책은 리쇼어링 흐름에 가세했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 제품 수입을 차단하고 관세를 높이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전 세계 1위 내수 시장이 새로운 공급처를 구하는 셈이다. 리쇼어링하는 기업 입장에선 수출 시장뿐만 아니라 내수 시장까지 공략할 수 있게 됐다. 미국 리쇼어링 기업은 2017년 624개, 2018년 886개로 트럼프 정부 이전 3년 평균(300개)보다 두 배 이상 많아졌다.


plus point

동남아도 ‘우리 땅’…내수 시장 제한 없는 日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도 리쇼어링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속에서 미국 편에 섰다. 일본 정부는 2435억엔(약 2조8000억원) 규모의 리쇼어링 기금을 조성해, 일본 기업이 중국 생산 공장을 본국으로 이전할 때마다 비용의 3분의 2까지 지원한다. 특이한 점은 기금의 10%에 해당하는 235억엔을 동남아시아 이전 비용에 쓰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침은 일본이 동남아를 범(凡)일본 지역으로 간주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본은 1970년대 대동남아 투자를 시작해 생산 기지뿐만 아니라 내수 시장까지 장악하고 있다. 도로를 건설하고, 자동차를 수출하고, 자동차 생산 설비까지 구축하는 것이 일본의 ‘자동차 외교’ 방식이다. 현대자동차가 올해 동남아에서 베트남 10만 대, 인도네시아 23만 대 등 33만 대 수준의 생산 능력을 갖추는 동안 일본은 10배 이상 많은 400만 대를 생산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인구수는 1억2600만여 명으로 한국(5100여만 명)보다 2.4배 많고, 미국(3억3100만여 명)의 38% 수준이다. 이미 인구가 많은데 동남아 신흥국(말레이시아·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베트남)의 인구 6억 명을 합치면, 7억2600만여 명에 달한다. 동남아를 일본의 내수 시장에 편입하면 잠재 시장 규모가 미국보다 큰 셈이다. 일본이 대규모 역내 가치사슬(RVC·Regional Value Chain)을 기대하고 부담 없이 리쇼어링 정책을 시행하는 이유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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