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시에 있는 LG전자의 구미사업장. LG전자는 5월 21일 경북 구미시에 있는 TV·사이니지 생산라인 6개 중 2개를 인도네시아로 옮기는 오프쇼어링 결정을 밝혔다. 정부가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하는 시기라 더욱 주목을 받았다. 사진 LG전자
경북 구미시에 있는 LG전자의 구미사업장. LG전자는 5월 21일 경북 구미시에 있는 TV·사이니지 생산라인 6개 중 2개를 인도네시아로 옮기는 오프쇼어링 결정을 밝혔다. 정부가 리쇼어링 정책을 추진하는 시기라 더욱 주목을 받았다. 사진 LG전자

“LG전자 구미 공장 해외 이전을 재고해 달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구미 경제 위기가 더욱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LG전자의 해외 이전 결정은 구미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미래한국당 백승주 의원(경북 구미갑)이 5월 26일 이방수 LG 부사장을 직접 만나 이렇게 말했다. LG전자는 5월 21일 경북 구미시에 있는 TV·사이니지 생산라인 6개 중 2개를 인도네시아로 옮긴다는 방침을 밝혔다. 정부가 리쇼어링(reshoring·해외 생산 기지 국내 유턴)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역방향인 오프쇼어링(off-shoring) 방침이 대기업에서 나온 것이다. 장세용 구미시장도 5월 25일 “LG전자의 인도네시아 이전을 재검토해주길 다시 한번 부탁한다”고 나섰다.

LG전자가 TV 생산라인 이전을 결정한 이유는 아시아 시장의 생산라인을 통합하기 위해서다. LG전자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공장의 조립, 품질 검사, 포장 등 전 공정에 자동화 설비도 대거 확충해 생산능력을 50% 늘릴 계획”이라면서 “아시아 시장에서 판매하는 TV를 현지 시장 수요에 맞춰 적기에 공급할 수 있도록 최적의 공급망을 구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가전제품은 시장에 근접한 곳에 생산라인을 둔다. 무게감이 있는데 출하량도 많아 물류비용이 많이 드는 탓이다. 시장별로 거점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LG전자는 폴란드, 멕시코, 러시아, 브라질, 인도에 권역별 거점 생산지를 구축한 상태다.

거점 생산지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은 인건비다. 가전제품은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인건비 비중이 높다. 구미시 국회의원과 시장이 읍소해도 LG전자가 현실적인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업계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임금은 한국의 15~20% 수준이다. 경쟁사인 삼성전자도 이미 2018년 수원 공장의 TV 생산라인을 인건비가 저렴한 베트남으로 통합하면서 국내 생산을 종료했다.


중국 우시에 있는 SK하이닉스 생산법인. 사진 SK하이닉스
중국 우시에 있는 SK하이닉스 생산법인. 사진 SK하이닉스

노동집약적 전자 산업, 한국에 리쇼어링 어려워

LG전자와 삼성전자의 TV,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 생산 기지를 살펴보면 겹치는 곳이 많다. 러시아, 멕시코, 미국, 베트남, 브라질, 인도, 중국, 태국, 폴란드가 대표적이다. 내수 시장이 큰 미국을 제외하곤 모두 인건비가 낮은 국가들이다.

특히나 중국 경쟁사의 저가 공세가 심해지면서 비용 절감을 위해 사업장을 통합하는 경우가 늘었다. 앞서 LG전자는 태국 라영, 중국 선양, 폴란드 브로츠와프, 베트남 하이퐁, 카자흐스탄 알마티 등의 해외 TV 사업장을 인근 사업장과 통합했다.

사실상 가전 제품 사업장은 리쇼어링이 불가능하다. 2016년 LG전자가 리쇼어링의 첫 대기업 사례로 떠올랐지만, 오보로 밝혀지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LG전자가 멕시코 몬테레이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세탁기 물량을 아시아 공장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국내 창원 공장이 대상으로 거론된 것이다. 당시 LG전자 관계자는 “멕시코보다 동남아시아 공장의 생산성이 높고 인건비가 낮아 이전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국내 전자 산업의 주요 먹거리인 스마트폰도 생산라인의 통폐합 과정을 거쳤다. 삼성전자는 1988년부터 휴대전화 생산을 시작한 구미사업장의 물량을 서서히 줄였다. 중국 시장에서 판매 점유율이 감소하면서 지난해엔 중국 광둥성 후이저우 휴대전화 생산공장도 문을 닫았다. 이 물량은 중국보다 인건비가 낮은 인도로 이전됐다. 점차 인건비가 낮은 곳으로 물량이 모이기에 리쇼어링은 사실상 어렵다.

스마트폰 사업 부문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LG전자도 지난해 6월 국내 스마트폰 공장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 LG전자는 경기 평택, 베트남, 브라질, 중국 등 4곳에서 스마트폰을 생산해왔다. 평택 스마트폰 물량은 베트남 북부 하이퐁 공장이 맡았다.


반도체는 자동화로 국내 증설 가능…미·중 사이에서 고통스러운 러브콜

반면 반도체 사업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삼성전자는 5월 21일 경기 평택캠퍼스에 반도체 EUV(극자외선) 파운드리(수탁생산) 시설을 구축한다고 밝혔다. 앞서 삼성전자는 2018년 초 화성에 EUV 전용라인을 구축한 뒤 올 초부터 본격 생산에 나섰다. 화성 사업장의 경우 투자 규모는 1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사업은 국내 시설 투자가 대부분을 이룬다. 기술 보안이 중요하고 자동화 설비로 인건비 비중이 높지 않고 무게가 가벼워 물류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기흥(10개), 화성(7개), 평택(1개), SK하이닉스는 이천(2개), 청주(4개)에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다.

다만 리쇼어링은 쉽지 않다. 반도체 시설 설비 투자는 전자 업종 가운데서도 조(兆) 단위 규모로 크다. 일례로 삼성전자의 시안 1공장은 총투자 금액이 108억달러(약 13조3000억원)에 달한다. 3D 낸드플래시 공장인 시안 2공장 투자 규모는 총 150억달러(약 18조6000억원) 규모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중국 두 곳(우시공장, 충칭공장), 삼성전자는 중국 두 곳(쑤저우공장, 시안 1공장), 미국 한 곳(오스틴 반도체 사업장)에 해외 생산라인을 두고 있다.

이곳에 부품을 납품하는 반도체 장비 업체들도 전속 거래를 끊고 한국행을 택하기 어렵다. 전속 거래는 중소 부품 협력사가 대기업과 거래하는 조건으로 다른 사업자와는 거래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장비 업체를 리쇼어링 대상 기업으로 삼는다면 대기업과 거래하지 않는 곳을 찾아야 한다. 기업 간 거래 데이터가 중요한데 ‘깜깜이’ 정보다.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의 공급망이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에 사업장을 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당분간 리쇼어링보다는 해외 투자를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으로 생산라인을 역내에 늘리라는 난처한 ‘러브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삼성전자의 오스틴 공장 증설을 원한다고 알려진 상황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시안 2공장 증설을 앞두고 5월 22일 300여 명의 관련 기술진을 현지에 파견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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