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승식(왼쪽 두번째)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이 4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 열린 ‘민관합동 유턴지원반 출범식’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나승식(왼쪽 두번째)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이 4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서 열린 ‘민관합동 유턴지원반 출범식’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대기업 입장에서는 이미 진출해 있는 중국 등 현지 당국 눈치를 보느라 리쇼어링 관련사로 언급되는 걸 꺼릴 수 있습니다.” 리쇼어링(reshoring·해외 생산 기지 국내 유턴) 정책을 세우고 있는 한 정부 관계자는 ‘이코노미조선’과 통화에서 이렇게 귀띔했다. 이는 리쇼어링 정책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한국 대기업 대부분은 해외 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중국과 동남아에 진출해 현지 당국으로부터 혜택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작은 내수 시장에 더해 주 52시간 근무제 등 생산 비용이 커지고 있어 기업은 리쇼어링 의지가 매우 약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2018년 11월 매출액 기준 1000대 제조기업 중 해외사업장을 보유한 150개사를 대상으로 당시 진행한 ‘제조기업 국내 유턴 계획’ 설문 결과를 발표했는데, 150개사의 96%가 “리쇼어링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77.1%가 ‘해외 시장 확대’를 꼽았다. 이어 ‘국내 고임금 부담(16.7%)’과 ‘노동 시장 경직성(4.2%)’이 꼽혔다. ‘과도한 기업 규제(0.7%)’도 거론됐다.

한국 정부는 2013년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유턴법)’을 제정하고 유턴 기업 지원에 나섰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세계화를 기치로 내걸고 각국에 진출했다가 갑자기 복귀할 유인이 적어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해외에서 2년 이상 사업장을 운영하던 기업 중 없던 국내 사업장을 신설하거나 해외 사업장을 청산·양도·축소하고 국내 사업장을 신·증설하는 기업을 유턴 기업으로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유턴 기업으로 선정되면 해외 사업장을 청산·양도한 경우, 국내에서 처음 소득이 발생한 이후 5년간 법인세와 소득세를 100%, 추후 2년간 50% 감면해준다. 분양가·지가·임대료의 최대 40%, 투자금액의 22% 보조 등 입지·설비투자 지원과 함께 고용 지원도 해준다. 

그러나 올해 들어 5월 말까지 유턴 기업에 선정된 기업은 7개사에 불과했다. 지난해엔 1년간 16개사였다. 앞서 2014~2018년 정부 지원을 받아 국내로 유턴한 기업의 수는 연평균 9.6개사였다. 2014~2018년 중 미국의 수천 개 기업이 자국으로 유턴한 것에 비해 매우 미미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리쇼어링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보호무역주의 기조 강화에 더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글로벌 가치사슬이 붕괴할 조짐이 보여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월 13일 “글로벌 가치사슬이 훼손된 상황에서 소위 ‘K-소부장(소재·부품·장치산업)’은 ‘K-방역’ 못지않은 중요한 당면과제가 됐다”며 “리쇼어링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재계는 리쇼어링에 대해 별로 반기지 않고 있다. 2013년 이후 국내로 돌아온 기업 중 대기업은 지난해 현대모비스가 유일했다. 이는 눈에 확 띄는 당근(인센티브)이 없으면 굳이 해외 시장에서 철수할 이유가 없어서다. 재계와 중소기업계는 유턴 기업 기준 완화, 수도권 규제 완화(공장 총량제), 법인세 인하, 주 52시간 근무제 등 노동규제 완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등 환경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저렴한 생산 비용이나 현지 시장 진출을 위해 동남아나 중국 등으로 나간 기업들이 다시 국내로 돌아올 수 있게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기업 간에 다양한 논의가 계속 이뤄지고 있다. 여당도 최근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단장으로 한 리쇼어링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업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산업부에 따르면, 현재 리쇼어링 정책으로 가장 유력하게 검토되는 방안은 유턴 기업에 대한 자금·세제 지원 확대다. 현재 정부가 국내 복귀 기업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토지·공장 매입비, 설비 투자금, 고용보조금 지원을 늘리는 방식이다. 현재 정부는 유턴 기업별로 토지 분양가나 임대료의 9~40%, 설비 투자액의 6~22%를 지원하고 있다. 고용보조금 액수를 늘리거나 지원 기간을 확대하는 방안 등도 논의하고 있다.

정부는 손을 내젓고 있지만, 일각에선 수도권 공장입지 규제 완화 가능성도 제기한다. 다만 이 방안은 국토 균형 개발에 크게 어긋날 수 있어 반대하는 여론도 있다. 수도권 집중화가 심화할 가능성이 큰 탓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6월 중에는 확정안을 마련해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신산업 육성책 우선해야…노동환경 개선도 중요

리쇼어링이 어려운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한국의 작은 내수 시장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국내로 복귀해서도 기존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고려 대상인데 시장 자체가 작아서는 어려움에 부닥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향후 보호무역주의 기조 강화로 관세장벽이 높아지면 유턴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커질 수도 있다. 경쟁력을 잃은 산업을 유치하는 것보다는 전체 산업의 경쟁력이나 부가가치를 키우게 하는 정책이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미국 기업이 유턴한다고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가 그대로 따라 하긴 어려운 면이 있다”면서 “결국 해법은 인재 육성과 기술 개발을 통한 혁신으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했다. 여당 리쇼어링 TF에 참여한 맹수석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환경 개선 등을 통해 생산비용 절감을 지원하고 대기업 유인책을 강화해 협력사와의 대규모 동반 유턴을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plus point

구미 시장의 절절한 호소…지자체도 유치 경쟁

장세용 구미시장은 5월 24일 ‘LG전자 구미 공장 인도네시아 이전에 따른 입장문’을 내고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문제가 구미시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국가적 큰 방향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근 LG전자가 구미 생산라인 일부를 인도네시아로 이전하겠다고 밝히자 이례적으로 공개 의사를 표한 것이다. 구미시는 현재 인근 김천시와 일부 중견기업에 대한 리쇼어링 입지 쟁탈전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일부 지자체는 시장이 직접 나서 리쇼어링을 고려하는 중견기업 대표들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청한 구미시 관계자는 “대기업 공장이 하나 들어오면 수천 개의 직간접 일자리가 생긴다”라며 “지방 재정을 총동원해서라도 리쇼어링 등 대기업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이유”라고 했다. 그는 이어 “정부의 리쇼어링 지원책이 확정되면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미 각 지방자치단체는 ‘당근’을 제시하며 기업들의 국내 유턴을 유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모비스 리쇼어링을 유치한 울산시는 국내 복귀 기업을 비롯해 수도권 기업의 지방 이전과 신·증설 투자, 국내 복귀 기업에 입지보조금과 설비보조금을 지급한다. 국내 복귀 기업의 경우 최대 100억원에 이르는 국고보조금에 별도의 시비를 매칭해 지원한다. 인천시의 경우, 유턴 기업의 복귀 유형에 따라 최대 7년간 법인세·소득세를 50~100% 감면하고 관세 50~100% 감면, 고용 창출 장려금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한다. 부산시는 신발·섬유 등 기업을 대상으로 대규모 설비투자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문제는 현장의 목소리다. 전북 익산시에서 주얼리 생산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리쇼어링 보조금 요건이 중소기업에는 지나치다”면서 “요건을 맞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환수당하는 업체도 많다”고 비판했다. 장밋빛 청사진 제시보다 지속 가능한 지원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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