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정복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과학계 연구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탈모 정복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과학계 연구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탈모 정복의 순간은 언제쯤 다가올까. 부작용을 걱정하며 매일 약을 삼켜야 하는, 복용을 중단하면 정수리가 다시 휑해지는 그런 반쪽짜리 해결책 말고 한 번의 치료로 평생 안심할 수 있는 ‘진짜’ 정복의 순간 말이다. 당장은 꿈같은 이야기지만 꿈이 현실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과학기술의 진일보는 더딜지언정 멈춘 적은 없으니까.

‘이코노미조선’은 이번 커버 스토리의 마지막 장을 ‘탈모 정복을 향한 연구’ 소개로 채우려 한다. 국내외 과학자들의 피나는 탈모 연구 현황을 모았다. 꿈은 이뤄질 것이다.

지난해 8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항암 치료를 받은 암 환자 중 일부가 겪는 영구 탈모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서울대 의대 권오상 교수팀은 실험용 쥐에 인간의 모낭을 이식한 뒤 모낭에 있는 줄기세포가 항암 치료제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봤다. 관찰 과정에서 권 교수는 항암 치료제가 모낭 줄기세포를 공격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항암 치료를 하면 약물 독성 때문에 환자의 머리카락이 빠지고, 이때 모낭 줄기세포는 머리카락을 보충하기 위해 재빨리 세포 분열을 한다. 문제는 항암제가 정상 세포보다 빠르게 분열하는 모낭 줄기세포를 암세포로 오인해 공격한다는 점이다. 세포 분열 속도로 정상 세포와 암세포를 구별하는 항암 약물의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치료제 공격으로 모낭 줄기세포 DNA에 손상을 입은 인체는 망가진 DNA를 다음 세대로 넘기지 않기 위해 모낭 자체를 없앤다. 항암 치료를 받은 후 영구 탈모가 찾아오는 이유다.

권 교수는 “상당수 암 환자가 방사선 치료와 화학적 항암 요법을 받는다”며 “이 연구 결과를 활용하면 항암 치료로 정상 조직이 손상되는 걸 최소화하거나 모낭을 재생시키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세대 탈모 치료제에 쓰일 후보 물질도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고려대 의과대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의 박길홍 교수팀은 5월 초 고사리에서 탈모 치료제 후보 물질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팀은 고사리 뿌리줄기 추출액에서 독성이 있는 프테로신(pterosin) 유도체를 분리·정제한 다음 모근의 털을 제거한 실험용 동물에게 2주간 도포했다.

대조군의 모발은 10% 정도만 자랐지만, 프테로신 유도체 용액을 바른 실험군의 모발은 80~100% 자랐다. 이는 대표적인 바르는 탈모 치료제 ‘미녹시딜’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연구팀은 전했다. 박 교수는 “프테로신 화합물은 천연 추출물이라서 탈모 치료제로 개발될 경우 부작용을 걱정하는 탈모 환자에게 주목받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8월 충북대 의대 최재운 교수팀은 의약품 연구·개발(R&D) 기업 바이오인터체인지와 공동 연구를 통해 마두카 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천연 계면활성제가 탈모 완화에 효능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인도 북동부에는 피부병을 고치거나 머리카락에 윤기를 내려고 마두카 즙을 바르는 풍습이 있다.

연구팀은 마두카 열매에서 뽑아낸 계면활성제 ‘소포로리피드(sophorolipid)’가 탈모 치료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고 이 물질이 들어간 샴푸를 만들었다. 탈모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이 샴푸를 6개월 동안 쓴 24명은 두피 1㎠당 모발 수가 평균 176개에서 183개로 증가했다. 반면 대조군 27명의 모발은 173개에서 171개로 감소했다.


연구자들은 인도 마두카 나무 열매(왼쪽)와 고사리 등에서 탈모 치료에 쓰일 후보물질을 찾아내고 있다.
연구자들은 인도 마두카 나무 열매(왼쪽)와 고사리 등에서 탈모 치료에 쓰일 후보물질을 찾아내고 있다.

모낭 있는 인공 피부 개발도

외국에서는, 미국 연구진이 동물의 줄기세포로 머리카락이 자랄 수 있는 인공 피부를 만들어 화제를 모았다. 미국 인디애나대 의대 칼 쾰러 교수팀은 2018년 쥐의 내이(內耳) 줄기세포를 이용해 모낭까지 갖춘 피부세포를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이 결과는 국제 학술지 ‘셀 리포트’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실험용 쥐의 귀 안쪽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를 배양해 오가노이드(organoid·세포 배양으로 만든 미니 인공 장기)를 만들었다. 연구팀은 이 과정에서 줄기세포가 피부 표피 4종과 진피 4종으로 분화하고 모낭까지 형성한 사실을 확인했다. 모낭은 머리카락 생성의 필수 조건이다.

흥미로운 점은 연구진이 이미 만들어진 오가노이드의 형태를 흩트려 발생 과정을 반복했더니 그때는 모낭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줄기세포로부터 피부가 형성되는 초기 과정이 모낭 생성에 특히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모낭 발생 메커니즘을 완벽히 이해하면 탈모 치료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미국과 중국 공동 연구진은 미세한 전기 자극으로 모낭을 활성화하는 방법을 고안해 지난해 9월 국제 학술지 ‘ACS 나노’에 공개했다.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대와 중국 청두 국립전자과학기술대, 중국 선전대 등이 참여한 이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걷거나 뛰는 동작으로 에너지를 모으는 압전 장치로 두피 바깥쪽에 잠든 모낭을 자극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 장치는 모자처럼 머리에 쓰는 형태다.

연구팀은 탈모 증상을 유발한 실험용 생쥐에 7주 동안 하루에 12~30분씩 저전류를 흘렸다. 그 결과 이 장치가 프로페시아 같은 경구용 탈모 치료제와 유사한 효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단 모낭이 아예 사라진 경우에는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즉 초기 탈모 환자에게 유용한 치료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야근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필요한 연구 성과를 소개한다. 강북삼성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연구팀이 국내 성인 남성 근로자 1만3000명을 대상으로 근로 시간과 탈모 치료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주 52시간 초과 근무를 자주 하는 그룹이 근무 시간이 적은 그룹보다 탈모 치료 경험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오늘은 꼭 ‘칼퇴근’하시길.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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