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여성편집숍 핸섬우먼의 김성은(33) 대표는 매주 월요일~목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쇼핑몰 업무를 한다. 하지만, 오후 4시부터는 서울 잠원동에 있는 한 수영장의 수영강사로 변신한다. 다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가급적 쇼핑몰 업무에 집중한다. 김 대표는 대학에서 사회체육학을 전공했지만, 관심은 늘 패션 쪽이었다. 투잡(two-job·두 개의 직업)족인 김 대표에게 쇼핑몰 사장이 자아실현 욕구가 충족되는 일이라면, 수영 강습은 스트레스가 풀리는 일이다. 김 대표는 “20대 초반부터 10년간 패션계에서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경력을 쌓다 보니 이제 나만의 쇼핑몰을 창업하고 싶었다”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부업인 수영 강습이 자본금과 투자금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부업의 수익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본업인 쇼핑몰에 소홀하게 돼 강습을 일정 시간 이상 잡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구라도 들으면 아는 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39)씨. 그는 일주일에 두 번은 회사 퇴근 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서울 대치동으로 향한다. 오후 7시가 되면 그는 다시 학원강사로 변신해 온 에너지를 쏟으며 학생들을 3시간가량 가르친 후 집으로 향한다. 수업이 많을 때는 회사를 쉬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학원에서 일한다. 통상 회사 월급이 더 많지만, 학원 성수기에는 수입 비중이 뒤집히기도 한다. 김씨는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임금이 크게 안 늘었다”며 “커가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회사만 믿고 있기보다 추가 수입을 위해 투잡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연차를 써가면서까지 투잡인 학원에 매진하지도, 본업에 지장을 줄 만큼 육체노동을 하지도 않는다는 원칙하에 앞으로도 투잡을 계속 할 것”이라며 “오히려 욕먹지 않기 위해 두 가지 일 모두 책임감 있게 잘하려 한다”고 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지고 있다. 직장인들은 더 이상 직장을 뼈를 묻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0대 전문 연구기관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주 52시간 근무제 등의 영향으로 직장인의 근무시간은 줄었지만, 모두가 그 시간에 마냥 놀지는 않는다”며 “고용불안이 심화되고 퇴직과 퇴사가 빨라지면서 그 이후의 삶에 대비하기 위해 직장인들이 N잡러를 자처하고 있다”고 했다. 한 개 이상의 직업을 갖는 직장인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N잡러는 직업의 수 N에 직업을 뜻하는 ‘잡(job)’, 사람을 뜻하는 ‘~er’이 합쳐진 신조어다. 영어로는 투잡족을 달빛이 떠오를 때 일하는 사람이라는 말로 ‘문라이터(moonlighter)’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거에는 투잡족이 경제적 이유만으로 여러 직업을 병행하는 경향이 짙었다. 다만, 최근에는 부업의 개념을 넘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자기계발·자아실현 투잡족을 자처하는 사람이 많다. 이 경우 오히려 투잡하는 시간을 즐기고 이익도 얻는다. 또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기도 한다.

신한은행이 최근 발표한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 2020’에 따르면 2019년 투잡족은 10.2%로 2018년(8.1%)보다 1.3배 늘어났다. 경제활동자 10명 중 1명은 투잡족인 셈이다. 투잡을 하다가 오히려 본업보다 큰 수익을 낸다면 진로를 변경하는 사람도 있다. 일단 회사에 다니면서 투잡을 시도하고 두 번째 직업이 잘되면 그때 갈아타는 방식이다. 사람들이 복수의 일을 하는 이유는 뭘까. 네 가지 관점에서 분석했다.


온라인 여성편집숍 핸섬우먼의 김성은 대표는 수영강사를 투잡으로 하고 있다. 사진 안상희 기자
온라인 여성편집숍 핸섬우먼의 김성은 대표는 수영강사를 투잡으로 하고 있다. 사진 안상희 기자

이유 1│주 52시간, 경기 부진, 코로나19로 임금 줄어

직장인들은 ‘회사는 절대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언제든 상황이 안 좋으면 내쳐지는 게 냉정한 현실’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다수의 직장인은 위기상황에서 희망퇴직, 구조조정, 무급휴직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로 비자발적으로 쉬게 된 일부 승무원은 회사 내 겸직 금지 규정이 있음에도 승무원 준비생을 대상으로 한 과외 일자리, 유튜브 방송, 인스타그램을 통한 물건 판매에 나서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임금이 줄어든 상황에서 회사가 이 같은 투잡을 적극적으로 막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운영하는 알바콜이 코로나19 이후 아르바이트 구직 경험이 있는 응답자 15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3.5%는 이미 투잡을 뛰고 있고 35.7%는 투잡을 고려하고 있었다. 특히 자영업자의 47.4%, 직장인의 22.1%가 ‘이미 투잡을 뛰고 있다’고 밝혔다. 자영업자와 직장인이 ‘투잡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각각 21.1%, 44.7%였다.

한 대기업에 다니는 장모(34)씨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여유 시간이 생긴 것은 좋지만, 오히려 야근 수당이 줄어 월급이 줄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까지 겪으니 정말 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회사 몰래 동생 이름으로 인스타그램 판매를 시작했다”고 했다.

불안한 고용환경에서 직장인들은 미래를 위한 보험으로 이직할 때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재무위험관리사(RFM), 국제공인신용장전문가(CDCS), 공인중개사 등의 자격증을 따기도 한다. 공부하는 직장인을 직장인(salaryman)과 학생(student)의 합성어인 ‘샐러던트(Saladent)’로 부르기도 한다.


이유 2│임금보다 높은 부동산 가격

학자금 대출을 떠안은 채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도 버거운데, 임금도 생각만큼 안 오르니 직장인들은 답답하다. 대학가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직장인 한모(41)씨는 “서울 집값을 봐라. 마흔 살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월세와 전세를 왔다 갔다 하고 있어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 투잡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퇴근 후 해보고 싶었던 호프집을 운영하면서 추가 수입을 올리고 있다.

종합부동산포털 부동산114 집계에 따르면 2013년 서울 아파트는 3.3㎡(1평)당 평균 1624만원이었다. 하지만 올해 6월 19일 기준으로는 3017만원으로 85.7%, 1393만원 올랐다. 같은 기간 대기업 4년제 대졸 신입사원 연봉은 3712만원에서 4118만원으로 10.9%, 406만원 올랐다. 단순히 계산하면 2013년에는 대기업 신입사원이 1년 연봉을 모두 모으면 아파트 약 7.5㎡(2.26평)를 살 정도였지만, 올해는 연봉으로 사들일 수 있는 규모가 4.5㎡(1.36평)로 줄었다. 본업의 월급만으로는 도움 없이 집 장만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다.


서울 잠실동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 연합뉴스
서울 잠실동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 연합뉴스

이유 3│자아실현, 바뀐 일자리 개념

자신의 적성과 무관한 회사에 취업한 젊은이들이 자아실현을 위해 투잡을 하는 경우도 있다. 취업이 어려워지자 대학생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보다는 회사가 좋아할 스펙(경력) 쌓기에 몰두하며 대학 생활을 한다. 졸업할 때쯤에는 수십 장의 자기소개서를 낸 후 자신의 적성은 고려하지 않고 붙은 곳을 다니는 사람이 대다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막상 사회생활을 하며 재미를 못 느끼는 사람이 많다.

공기업에 재직 중인 권모(36)씨는 2년 전 약 1년간 퇴근 후 한 중소기업으로 다시 출근해 회계 일을 보는 말단 직원으로 투잡을 뛰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계 실무를 배우고 싶었다”고 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일자리의 개념도 바뀌고 있다. 비정규 임시·계약직의 프리랜서 근로 형태가 확산되는 경제, 긱 이코노미(gig economy)가 부상하고 있다.

필요할 때마다 계약직·임시직 등을 섭외해 일을 맡기는 ‘긱잡(gig job)’을 하는 근로자는 고용 불안, 임금 정체를 겪기도 하지만,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쉰다는 자유와 유연성을 보장받는다. 자신의 차를 이용해 택배 배송 일을 하는 ‘쿠팡플렉스’가 대표적인 예다. ‘긱(gig)’은 1920년대 미국 재즈 클럽들이 섭외한 단기 연주자를 부르는 데서 유래됐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2025년 긱 이코노미가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에 해당하는 2조7000억달러(약 3246조원)에 달하고, 약 5억4000만 명이 혜택을 입을 것으로 봤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활동인구 중 긱 이코노미에 종사하는 인력은 20~30%로 추산된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해 6월 자국 내 긱 이코노미 근로자가 470만 명으로 집계된다고 보도했다. 최근 3년간 두배로 늘어난 수치다. 가디언은 “긱 이코노미는 조직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젊은층에서 선호되고 있다”고 했다.


이유 4│이른 은퇴 꿈꾸는 파이어족

은퇴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파이어(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의 등장도 투잡 현상에 불을 지피고 있다. 파이어는 ‘재무적으로 독립해 일찍 은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들은 극단적인 절약으로 부를 축적해 일반적인 은퇴 나이인 50~60대가 아닌 30대 말이나 늦어도 40대 초반까지는 은퇴를 목표로 한다.

파이어족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젊은 고학력, 고소득 계층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부모 세대인 베이비붐 세대가 금융 위기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며 자라 온 밀레니얼 세대(1981~96년 출생)가 주축이다. 자산운용사 티로프라이스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 노동자 중 65세 전에 은퇴를 기대하는 응답자 비율은 43%에 달한다. 이는 그 전 세대인 X세대(1970~80년 출생)의 35%보다 훨씬 높은 숫자다.


투잡에 관심이 커진 것은 플랫폼의 발전이 한몫했다. 플랫폼을 통해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몇 분 안에 투잡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투잡 현상은 곧 일반화될 것”이라며 “평생직장은 더 이상 없는 프리랜서 이코노미(freelance economy)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나준호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온라인 인재 플랫폼이 직업 세계를 변화시킨다’는 보고서에서 “앞으로 직업의 기회는 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직하지 않더라도 더 다양하고 유연하게 넓어질 수 있다”며 “점점 좁아지는 취업 문을 뚫는 대신 자기 고용을 시도하는 기회가 많아지고, 시간제 근무나 프로젝트 형태로 여러 기업과 동시에 일을 하는 프리랜서나 멀티잡(multi-job) 직업인들이 많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투잡이 늘 성공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투잡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혹은 재미만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투잡을 시작할 때 진지하게 자신의 미래도 함께 고민해 자신만의 길을 디자인하지 않으면 오히려 본업까지 망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다 두 마리 토끼 이상을 놓치는 식이다. 직장인 안모(36)씨는 대출금을 갚기 위해 투잡을 시작했다. 그는 회사를 칼퇴근하기 위해 이직까지 했다. 안씨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때문이 아닌 추가 수입을 위한 투잡을 위해 이직을 했는데, 몸도 마음도 지쳐 새로운 직장에 몰두하기가 어려웠고 인간관계와 건강도 나빠졌다”고 했다.

투잡을 하기 전 확인해야 할 사항도 많다. 본업을 하는 회사가 사규로 겸업을 금지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특히 현직 공무원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투잡이 금지다. 세금도 따져봐야 한다. 본업 외 발생하는 수입은 반드시 소득을 합산해 신고해야 한다.

‘이코노미조선’은 투잡족이 늘어난 현상에 주목해 실제로 복수의 일로 시너지를 극대화한 김준익 건국대 교수를 만나 비결을 들어봤다. 또 재능 공유 플랫폼 ‘탈잉’ 김윤환 대표 인터뷰를 통해 이전보다 투잡을 시도하기 쉬워진 상황을 알아봤다. 다만, 투잡이 늘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임직원이 투잡을 하는 게 반가울 수만은 없다. 이번 커버 스토리에서 투잡을 할 때 유의해야 할 상황과 기업 입장에서 어느 정도 선까지 투잡을 받아들여야 할지 니콜라스 블룸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 등의 의견을 들어봤다.

안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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