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대로부터 재산을 상속받은 재벌이 다수였던 한국의 ‘슈퍼 리치’ 반열에 테크놀로지(이하 테크)와 바이오 기업 창업자 출신의 젊은 부자들이 다수 합류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와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로 전통적인 제조 업체보다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지만,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지금 소유한 ‘부’를 계속 유지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코노미조선’은 급변하는 산업 지형의 미래를 알아보기 위해 국내 산업 전문가 5명과의 전화 인터뷰를 지상 대담 형식으로 정리했다. 산업 환경을 연구하는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임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와 다양한 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진행해 온 이근형 LG CNS 엔트루 컨설팅 담당, 오봉근 아우름 케어 매니지먼트 회사 창업자가 참여했다. 전문가들은 “빠르게 바뀌는 소비자의 수요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사람이 미래의 슈퍼 리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계속 바뀌는 와중에도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춰야 미래 산업 환경에서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 이근형 LG CNS 엔트루 컨설팅 담당 한양대 건축공학 박사 / 오봉근 아우름 케어 매니지먼트 회사 창업자 연세대 국제대학원 석사, 딜로이트 컨설팅 코리아 그룹 생명과학 분야 총괄 리더 /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조지워싱턴대 공학경영 박사, 지식정보화연구원 원장 / 임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경영학 박사 /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워털루대 기계공학 박사, 국회 제4차산업혁명포럼 ICT신기술위원회 위원장
(왼쪽부터)
이근형 LG CNS 엔트루 컨설팅 담당 한양대 건축공학 박사
오봉근 아우름 케어 매니지먼트 회사 창업자 연세대 국제대학원 석사, 딜로이트 컨설팅 코리아 그룹 생명과학 분야 총괄 리더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조지워싱턴대 공학경영 박사, 지식정보화연구원 원장
임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경영학 박사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워털루대 기계공학 박사, 국회 제4차산업혁명포럼 ICT신기술위원회 위원장

과거와 오늘날 한국 슈퍼 리치의 차이점은.

박희준 “오늘날 슈퍼 리치는 제품의 제공자가 아닌 ‘연계자’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나오는 상품은 네이버 창업자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다. 다른 기업에 수수료를 받고 제품을 팔 수 있는 자리만 마련해줄 뿐이다. 과거 제조업의 슈퍼 리치는 많은 자본을 투입해 고정자산을 갖고 사업을 했다. 리스크를 떠안아야 했다. 반면 오늘날 슈퍼 리치는 다른 기업에 이 역할을 맡겨 불확실성을 제거한다. 지금이 과거보다, 슈퍼 리치가 탄생할 기회가 훨씬 많다. 좋은 아이디어와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기술만 있으면 사람을 연결해주면서 돈을 빠르고 안전하게 벌 수 있다.”

임일 “과거 전통적인 슈퍼 리치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리적 제품을 대량으로 제공해 부를 축적했다. 1세대 경영자인 삼성그룹 설립자 이병철,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과거에는 1세대 경영자의 부를 물려받은 2세대 경영자 외에는 새로운 기업을 창업해 상위 10대 기업에 올라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슈퍼 리치는 데이터를 활용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해 부를 축적한다. 컴퓨터의 등장과 데이터의 중요성 부각 등 시장이 중요한 변혁을 겪을 때 과거와 다른 새로운 슈퍼 리치가 등장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슈퍼 리치 모두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남들보다 더 잘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부의 축적 방법이 동일하다. 다만 차이점은 오늘날의 슈퍼 리치가 소비자의 수요 변화와 시장의 요구를 더 빠르게 읽어내고 변화를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다.”


소비자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최재붕 “오늘날 시장에서의 권력은 소비자의 손끝에서 나온다. 스마트폰을 손끝으로 ‘터치’하는 소비자의 디지털 움직임으로 기업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 과거에는 방송 광고, 대기업의 유통망 등 정해진 소비 시스템에서 부가 결정됐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기업이 소비자의 선택을 직접 받아야 한다. 자본과 결탁한 광고에 소비자는 더는 넘어가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스마트폰을 통해 탐색한 정보만을 믿고 소비한다. 이러한 새로운 능동적인 소비자로서의 인류를 ‘포노사피엔스(스마트폰을 신체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디지털 문명 속 신인류)’라고 부른다.”

임일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소비자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저렴한 가격에 사서 소비하려는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크게 바뀐 것은 소비자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지다. 예컨대 과거 물자가 부족했던 시절에 소비자는 브랜드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좋은 브랜드라고 해서 몇 배 높은 가격을 지불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물자가 풍부해지고 브랜드가 부여하는 사회적 가치가 높아지면서 브랜드에 따른 가격 차이도 벌어졌다. 이처럼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소비자의 욕구에 맞춰 성공하는 산업과 기업가도 바뀐다.”


코로나19 이후 바이오와 정보기술(IT) 산업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오봉근 “문제가 닥치면 급하게 대응하곤 했던 ‘단순 반응형(reactive)’ 바이오 산업계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앞서서 ‘사전 대책을 강구하는(proactive)’ 방향으로 길을 틀었다. 기존 바이오 업계는 이상 증상을 느끼는 환자가 찾아오면 이미 발생한 질병을 검사해서 치료해주는 방식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혁신이나 선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단순히 지금 당장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사업방식(sick care)’에서 ‘모든 사람의 건강을 책임지는 장기적인 사업방식(health care)’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근형 “기존에도 있었던 ‘언택트(비대면)’로의 변화가 가속화됐다. 사람이 하던 일을 리스크(위험)를 줄이기 위해 인공지능(AI) 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수백 명이 한 공간에 모이는 콜센터를 인공지능이 상담원을 대신하는 ‘컨택 센터’로 바꿔 근로자를 분산시키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정해진 응답 규칙을 통해 소비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챗봇 개발 역시 활기를 띠고 있다.”


오늘날 소비자는 자신이 스마트폰으로 직접 취합한 정보를 통해 가치를 판단해 소비한다. 사진 조선일보 DB
오늘날 소비자는 자신이 스마트폰으로 직접 취합한 정보를 통해 가치를 판단해 소비한다. 사진 조선일보 DB

변화하는 환경에서 기업은 어떤 전략을 수립해야 하나.

오봉근 “다가올 위기를 예측하고 전략을 선제적으로 세워야 한다. 현재 바이오 업계는 질병의 진단과 약 처방, 직접적인 의료 단계에만 과도하게 매몰되어 있다. 이렇게 새로운 바이러스가 생겨날 때마다 치료하는 형식에만 머무른다면 13세기 유럽 흑사병 때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인간이 당장의 질병이 없더라도 건강한 삶을 유지하도록 돕는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중증의 질병에 걸릴 때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초기에 미리 질환을 찾아 주는 유전자 검사 서비스 개발에 힘써야 한다. 소변 소리의 음파를 통해 유속을 계산해 전립선에 문제가 생길 확률을 진단해주는 애플리케이션(앱)도 미래 바이오 기업이 눈여겨봐야 하는 사례다. 한국의 진단, 처방 기술은 ‘K바이오’라고 칭송받을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국내에는 해외처럼 평소에 꾸준히 운동하고 건강 관리를 하는 문화가 자리 잡지 않았다. 미래 바이오 산업은 이러한 일상의 장기적인 건강 관리를 새로운 전략으로 선택해야 한다.”

이근형 “앞으로는 단순히 유무형의 제품과 서비스를 다른 회사보다 어떻게 월등하게 만들지만 생각해선 안 된다. 더 나아가 소비자가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하는 과정을 만족스럽게 설계해야 한다. 소비자가 당장 자사의 물건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좋은 인상을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에서 다양한 디지털 채널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즉, ‘디지털 환경에서의 소비자 경험(DCX)’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안전하게 관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신속하게 제품을 출시해 소비자에게 전달할지가 핵심이다.”


현재 좋은 성과를 거두는 기업의 공통점은.

오봉근 “과거부터 꾸준히 미래를 위해 장기적으로 투자해 온 기업들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들은 리스크 관리에 적극적이었다. 예컨대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만났던 한 기업은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수년 전부터 대규모 감염 사태, 지진, 해일 등 재난 상황에 맞춰 어떻게 경영을 지속할 수 있을지를 준비해 왔다. 코로나19 이전부터 미리 대규모 질병 확산을 대비해 직원 수칙을 정해뒀던 것이다. 더불어 이전부터 전문성을 가진 분야에 꾸준히 투자해왔던 기업도 지금 투자의 결실을 맛보고 있다.”

이근형 “오늘날 성공하는 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오늘날 소비자는 가치의 이동을 겪고 있다. 소비자는 가격뿐 아니라 경험에 매우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과거에는 웹툰이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며칠 후 무료로 제공된다는 걸 알고 있다면 그냥 기다렸다. 그러나 이들은 그냥 3000원을 지불하고 미리 콘텐츠를 소비해버린다. 3000원의 가치가 현물이 아닌 미디어에도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더 개인화되고 타인을 만날 시간이 부족해지면서 나 자신에게 소비하는 시간 그리고 타인과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기회에 부여되는 가치가 높아졌다. 일반 소비자는 과거처럼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 고가 사치품을 구매할 요인이 적어졌다.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자마자 사업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기업은 ‘클라우드(인터넷상에 각종 데이터 정보를 저장하는 시스템)’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박희준 “플랫폼 사업이 발달할수록 기업이 사회적 자본, 즉 신뢰를 관리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앞으로 플랫폼에 제공되는 제품과 서비스는 산업이 발전하면서 모두 상향 평준화될 것이다. 결국 미래 소비자에게 선택의 기준은 기업의 브랜드와 플랫폼 기업이 주는 신뢰다. 더불어 소비자의 욕구는 더욱더 다양화·파편화될 것이며 완제품 형태의 대중 소비는 사라질 것이다. 그 때문에 구독 경제 시스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미래 기업은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이다. 전문성 있는 상품을 플랫폼에 올려서 소비자에게 선택을 받고 생존할 것이냐, 아니면 많은 소비자가 집합할 수 있는 플랫폼을 운영할 것이냐. 둘 중 하나다.”


제조업 등 전통 산업은 변화하는 환경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이근형 “제조업은 앞으로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경영에 반영해야 한다. 제조업 생산 관련 데이터, 소비자 경험 데이터를 취합해 이를 다시 제품에 반영해야 한다. 즉, 데이터의 생성, 수집, 분석, 활용까지 전 과정에서의 ‘데이터 통합 관리 체계(데이터 거버넌스)’를 잘 구축해 경영 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제는 사람이 만든 데이터뿐 아니라 기계에서 실시간으로 자동 취합되는 데이터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실세계와 유사한 시뮬레이션도 데이터로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디지털 트윈(현실세계의 기계나 장비, 사물 등을 컴퓨터 속 가상세계에 구현한 것)’을 제조업이 활용해 제조 현장을 효율화할 수 있다.”

최재붕 “기존 산업도 IT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자사의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제품을 아마존 등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제공하지 않고 자신의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나이키가 좋은 예다. 자사 플랫폼에서 제품의 정기구독 서비스뿐만 아니라 최신 패션으로 옷을 추천해주는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소비자의 취향에 대한 데이터를 모아 제조 생산 과정에 반영한다.”

임일 “전통 산업이 반드시 쇠락한다고 생각하기보단 어느 시장에서 지금 이를 필요로 하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당장 한국에서는 쇠락하는 산업처럼 보여도 전 세계적으로 보면 쇠락하지 않는다. 즉, 다른 나라로 수요가 옮겨갈 뿐이다. 상황이 바뀌면 한국에서도 이들 산업이 다시 부흥할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코로나19로 글로벌 식품 공급망이 끊어지고 사람들이 안전한 먹거리와 생활환경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게 되면, 소비자들은 건강을 위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것이고 농업이 부흥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관건은 시장이 어떤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가를 산업이 면밀히 관찰해 대응하는 것이다.”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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