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기침과 인후통이 심해지고 고열이 지속된다면 가까운 이비인후과나 내과를 찾아가면 됐었다. 의사를 만나 진찰을 받으면 보통 ‘감기’라는 진단이 나왔고 주사와 약을 처방받고 며칠 푹 쉬면 괜찮아졌다. 지금은 이렇게 하면 내가 찾아간 병원이 폐쇄될 수도 있다. 마스크로 입과 코를 차단하고 선별 진료소로 가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가 격리를 해야 한다.

올해 초부터 유행한 코로나19는 ‘당연했던 일상’을 깨뜨렸다. 불편하고 불안한 비일상 속에서 점차 줄어드는 확진자 수를 위안으로 삼았다. 몇 달쯤 지나면 감염병이 잦아들고 일상을 되찾을 거라 기대했다. 코로나19는 ‘세컨드 웨이브(두 번째 대유행)’를 일으켰다. 백신이 개발되는 속도보다 빠르게 변이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당연해진 비일상이 새로운 일상의 자리를 차지했다.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 진료를 받는다는 ‘당연함’도 무너졌다. 헬스케어 기업인 유비케어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소아청소년과와 이비인후과의 처방 건수는 지난해 4월보다 각각 72%와 63% 감소했다.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20년간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던 비대면 진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6월 25일 ‘민간 규제 샌드박스 1호’로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라이프시맨틱스에 ‘재외국민 대상 비대면 의료 서비스’ 임시허가를 내렸다. 4차산업혁명위원회 등에서는 국내 비대면 진료 도입에 대한 논의도 구체화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선구자인 에릭 토폴 박사는 2018년 ‘네이처 디지털 메디슨’ 창간호에서 “우리의 목표가 성공적으로 달성된다면, ‘디지털 의료’는 머지않아 단지 ‘의료’로 불리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낮은 출산율과 길어지는 수명으로 전 세계는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의사 수의 증가가 환자가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기존 의료 시스템은 과부하에 걸려 정상적인 작동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런 시기가 오면 디지털 헬스케어는 마침내 ‘디지털’이라는 수식어가 필요 없는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는 초고령화 사회가 오기도 전에 기존 의료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냈다. 비대면 의료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줄 알았던 ‘건강함’도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됐다. 온종일 마스크를 쓰고 코로나19에 대항할 면역력을 적극적으로 기르는 ‘건강한 노력’이 당연해졌다. 모든 데이터와 기술을 동원해 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라는 미래가 성큼 다가왔다.


데이터로 구현하는 100% 의료

디지털 헬스케어는 더 많은 데이터를 활용해 더 높은 의료를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IBM에 따르면, 인간의 건강과 관련된 데이터는 의료 데이터, 유전체 데이터, 그 밖의 외부 데이터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한 개인은 일생을 살면서 의료 데이터를 0.4TB(테라바이트), 유전체 데이터를 6TB, 외부 데이터를 1100TB 만들어 내고, 이들 데이터가 각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10%, 30%, 60%순이다.

지금까지의 의료 체계는 의료 데이터에 집중하며, 유전체 데이터를 제한적으로 활용하는 정도였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외부 데이터는 측정하는 것 자체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실현되면 그동안 놓쳤던 모든 데이터를 측정하고, 저장하며, 분석해 활용하는 100%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가 가능해진다.

과거엔 아프면 의료 기관을 찾았지만, 앞으로는 아프지 않기 위해 24시간 의료 모니터링을 받는다. 의사가 결정하는 치료법에 내 몸을 맡기는 대신, 내 유전자가 가장 잘 받아들일 수 있고, 내 생활 양식과 환경에도 딱 맞춘 치료법을 제공받게 된다. 우울증이나 수면장애 등 정신질환을 약 기운으로 억누르는 대신, 데이터로 정신적 문제의 원인을 찾아 디지털 치료제로 뿌리 뽑는다.

이러한 의료가 공상과학 소설에서 나오는 얘기처럼 들리는 이유는 한국의 디지털 헬스케어가 규제에 묶여 발전하지 못한 탓이다. 전 세계에서 원격 의료를 명시적으로,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진료가 아닌 의료다.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환 환자의 건강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원격 모니터링부터, 스마트폰으로 환부(患部)를 찍어 원격 판독을 요청하는 서비스까지 모두 금지돼 있다.

원격 의료는 그나마 대면 진료를 통해 해소할 수 있지만, 유전체 데이터와 관련된 규제는 아예 대체재조차 없다. 미국의 23앤드미(23andMe)와 같은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은 개인의 유전 정보를 분석해 어떤 음식이 잘 맞고 어떤 운동이 적합한지, 개인의 신체 특성은 어떻고 부족한 영양소는 무엇인지, 심지어 주요 질병에 걸릴 확률이 얼마인지까지 알려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몇 가지 항목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민간 유전자 검사가 금지돼 있다.


놓쳐선 안 되는 미래 먹거리

디지털 헬스케어는 개인의 건강을 넘어 차세대 산업 영역으로도 급부상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유입된 투자금은 2015년 74억달러(약 8조8100억원)에서 2019년 160억달러(약 19조원)로 증가했고, 특허 취득 건수는 같은 기간 연 271개에서 617건으로 늘었다. 시장 조사 기관 글로벌 마켓 인사이츠는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규모가 연평균 29.6% 성장해 2025년 5044억달러(약 602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빅테크(big tech) 기업들도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구글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AI) 기술 예측 의학을 선도하는 한편, 60여 개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해 ‘구글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대표적인 개인 유전 정보 분석 기업인 23앤드미도 구글 창립자 세르게이 브린의 전 부인 앤 워치츠키가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애플은 아이폰과 애플워치 등으로 수집한 데이터를 소프트웨어 공급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해서, 헬스케어 버전의 ‘앱스토어’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마존은 클라우드 서비스와 유통에서의 강점을 살려 원격 의료와 의약품 배송에 집중한다.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을 넘어 데카콘(기업 가치 100억달러 이상)으로 성장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중국의 원격 의료 기업 ‘핑안굿닥터’와 미국의 원격 의료 기업 텔라닥은 7월 8일 기준 시가총액이 나란히 170억달러(약 20조2500억원)를 넘겼다. 만성질환자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봉고헬스는 92억달러, 유전체 연구기업 10X지노믹스는 89억달러로 데카콘의 문턱까지 올라왔다.

‘이코노미조선’이 만난 전문가들은 “한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는 더 이상 지체되면 영원히 뒤처질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 사태로 디지털 헬스케어로의 전환은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됐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우리의 건강에 혁신적으로 기여할 거란 사실은 자명하다.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게 해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우리 모두에겐 ‘당연히’ 있다.

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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