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빅의 루비색 골프공들이 코팅 과정을 거친 다음 건조실을 통과하고 있다. 사진 전준범 기자
볼빅의 루비색 골프공들이 코팅 과정을 거친 다음 건조실을 통과하고 있다. 사진 전준범 기자

‘위이잉, 철컹, 슈우웅…’

7월 20일 충북 음성에 있는 골프용품 제조업체 ‘볼빅’ 제2공장은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부터 모든 생산 라인을 가동하며 분주한 모습이었다. 컨베이어벨트가 고무 재질의 골프공 코어를 옆 라인으로 보내면, 기다리고 있던 노즐이 코어 겉면에 우레탄 외피를 입히는 과정을 반복했다. 겉옷을 차려입은 골프공은 로봇팔에 안겨 다음 공정으로 넘어갔다. 기계가 만들어내는 규칙적이고 성실한 소음의 공간에 ‘월요병’ 따위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 보였다. 마스크와 귀마개로 입·코·귀를 막은 공장 직원들이 기계 사이사이에서 로봇이 할 수 없는 인간의 일을 책임지고 있었다.

“저쪽 제1공장에서 고무공(코어)을 만들어 보내주면 이곳(2공장)에서 나머지 작업을 해 우리가 아는 골프공의 모습을 완성하는 겁니다.” 안내를 맡은 홍유석 볼빅 상무가 상자에 가득 담긴 코어를 한 움큼 집어 들며 말했다. 화학공학 박사인 홍 상무는 볼빅 연구소장을 역임하며 이 회사의 최고 히트 상품인 무광(無光) 컬러볼 ‘비비드(VIVID)’ 개발을 주도했다.

1980년 문을 열어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이한 볼빅은 1991년 음성에 연 생산 150만 다스(1다스는 12개) 규모의 골프공 공장(현 제1공장)을 세우고 흰색 공 생산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2009년 현 대표이사인 문경안 회장이 취임한 뒤로는 국내 골프 시장에 형형색색의 컬러볼 열풍을 일으켰다. 홍 상무는 “지금은 거의 모든 업체가 컬러볼을 선보이지만, 당시만 해도 볼빅의 시도는 파격 그 자체였다”라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홍유석 볼빅 상무가 골프공의 엔진 역할을 하는 코어를 소개하고 있다. 골프공 표면에 볼빅 로고를 마킹하는 모습. 볼빅의 스테디셀러 상품인 ‘비비드’. 사진 전준범 기자
왼쪽부터 홍유석 볼빅 상무가 골프공의 엔진 역할을 하는 코어를 소개하고 있다. 골프공 표면에 볼빅 로고를 마킹하는 모습. 볼빅의 스테디셀러 상품인 ‘비비드’. 사진 전준범 기자

2010년 생산 규모를 연 250만 다스로 키운 볼빅은 2016년 스테디셀러 컬러볼 비비드를 출시해 또 한 번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출시 두 달 만에 20만 다스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비비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볼빅의 골프공 수출액은 2016년 600만달러(약 72억원)에서 2017년 1700만달러(약 203억원)로 1년 새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 미국·프랑스·일본 등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볼빅 골프공을 사 간다. “비비드는 기존 유광 컬러볼보다 선명하면서 눈부심 현상은 적어 많은 골퍼가 좋아해요.” 연구소장 시절로 돌아간 홍 상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볼빅의 컬러볼 공략은 미국 타이틀리스트가 장악한 골프공 시장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려는 문 회장의 아이디어였다. 문 회장은 특히 여성 골프 인구가 늘어나는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예감은 적중했다. 대한골프협회(KGA)에 따르면, 2007년 14.2%에 불과하던 여성 골퍼 비중은 2017년 45.4%가 됐다. 컬러볼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2030세대의 골프장 유입 증가도 볼빅에 기회로 작용했다. 볼빅 매출은 2009년 30억원에서 지난해 425억원으로 10년 만에 14배 도약했다. 업계는 볼빅의 국내 골프공 시장 점유율을 타이틀리스트에 이은 2위로 추정한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5~6위권에 올라 있다.

2019년 5월 제1공장 옆 1만4876㎡(4500평) 부지에 제2공장을 준공한 볼빅의 연간 생산 능력은 400만 다스로 커진 상태다. 제2공장 덕에 평균 제조 기간은 6일에서 2일로 단축됐고, 포장 단위는 8·4·3·2구 등으로 다양해졌다. 볼빅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예상하고 생산 역량을 강화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올해 터진 이 악재가 골프 인구 증가 속도를 키운 건 볼빅 성장에 도움이 됐다.

표면 세척을 마친 골프공을 따라 공장 내 다른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컨베이어벨트 위에 가지런히 정돈된 핑크빛 대열이 눈에 띄었다. 프라이머 코팅 후 건조실(drying room)에 들어가는 분홍색 골프공이었다. 색감이 어찌나 좋은지 언뜻 보면 제과점에서 파는 달콤한 알사탕 같았다. 사진 촬영을 위해 건조실 입구에 다가가자 더운 바람이 피부에 와 닿았다. 전통가마 속 도자기처럼 골프공 표면도 뜨거운 열을 만나 단단해지고 있는 듯했다.

골프공 생산의 마지막 관문인 포장·보관 섹터에서는 화학물질 냄새보다 종이 냄새가 더 강하게 밀려왔다. 사람 직원과 로봇 직원이 힘을 합쳐 끝없이 밀려오는 골프공을 여러 형태의 상자에 담아내고 있었다. 이 회사가 비비드의 뒤를 잇는 차세대 대표 상품으로 선보인 골프공 ‘솔리체(Solice)’도 보였다. 솔리체의 특징은 공이 비행할 때 햇빛을 받으면 반짝거리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볼빅이 개발한 3중 나노 코팅 기술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통상 코팅 횟수가 늘어나면, 딤플(dimple·골프공 표면에 난 작은 홈)의 윤곽이 뭉개지거나 깊이가 달라지는 문제점을 낳을 수 있는데, 볼빅은 기술력으로 (문제점을) 해결했어요. 또 컬러볼 비거리가 흰색 공보다 짧다는 편견이 있는데, 전혀 사실무근입니다. 오히려 컬러볼은 흐린 날씨에도 날아가는 걸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고 벙커나 풀숲에서도 금방 찾을 수 있어 편하답니다.” 홍 상무가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강조했다.

음성=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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