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5일 오후 서울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열린 ‘전 국민 조세 저항운동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7월 25일 오후 서울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열린 ‘전 국민 조세 저항운동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임대인도 국민이다. 임대 3법 철회하라.”

“징벌 세금 위헌이다. 미친 세금 그만하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한산했던 주말 서울 청계천에 요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예금보험공사에서부터 DGB금융센터까지 약 200m의 거리는 사람들로 꽉 찼다. 7월 25일 오후 7시 ‘부동산 규제 정책 반대, 조세저항운동 촛불집회’ 행사가 열린 자리로, 이날 주최 측 추산 5000명(경찰 추산 1500명)이 모였다.

무대 앞 사회자가 “국민은 불로소득”이라고 선창하자 참가자들은 “너희들은 땀 흘렸냐”라고 답했다. ‘돌아온 건 세금폭탄!’ ‘소급적용 위헌’ 등의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든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데 열을 올렸다. 생전 처음 본 사람이라도 ‘공동의 적(敵)’을 가지니 한뜻을 품은 동지가 됐다.

“정부가 세금 걷는 데만 혈안이 됐어요. 이런 정부가 대체 어디 있어요.” “악랄하기 그지없어. 자기네들(정부·여당 인사)은 강남에 집 몇 채나 가지고 있으면서 서민이 집 사는 건 눈 뜨고 못 보는 게 이 정부야.” “집 한 채 가진 우리가 투기꾼이면 정부·여당은 투기왕입니까?”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온 젊은 부부와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 등 30대 참가자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무주택자라 당장 세금을 더 내는 것도 아니지만,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고 싶어 집회에 참석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내 집 마련과 중산층의 꿈을 짓밟았다”고 입을 모았다.

집회에 참석한 30대 직장인 김창섭씨는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뤄줄 것으로 믿고 표를 던졌지만, 계속되는 부동산 실책에 배신감을 느껴 이번 집회에 나오게 됐다”며 “한 채에 10억원, 20억원 하는 집값이 계속 오르는 걸 보면 정부가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주택 소유자는 투기꾼 낙인”

평범한 직장인이나 주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날 집회에 참석한 이유는 억울함과 분노 때문이다. 주택 소유자는 집 한 채 가진 ‘죄’로 ‘투기꾼’이라는 낙인이 찍힌 게 억울하고, 무주택자는 차곡차곡 돈 모으면 집을 살 수 있다는 기대감이 꺾인 것에 분노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아래서 행복한 주택 수요자는 아무도 없다.

부동산 정책 실패의 영향은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30대는 ‘내 집 마련’을 포기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분양가 규제로, 요즘 가장 싸게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는 방법은 청약이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이들은 청약 당첨권에 들 만한 가점을 만들 수 없다. 최근 서울 웬만한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기 위해선 가점이 60점은 돼야 한다. 만 30세부터 산정하는 무주택 기간이 9년 이상~10년 미만에다 부양가족 수가 2명, 청약저축 가입 기간이 15년 이상이라도 청약가점은 50점에 불과하다. 가점 만점은 84점이다.

‘4050’도 불만이 많다. 정부가 주요 지지층인 30대 신혼부부와 청년만 챙긴다고 불평한다. 이들은 가점이 높아도 청약 경쟁이 워낙 치열해 사실상 당첨이 어려운 데다 그나마 가점제 물량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는 7·10 대책을 통해 국민주택(전용면적 85㎡ 이하 공공분양)의 생애 최초 특별공급 물량을 20%에서 25%까지 확대하고, 민영주택 중 공공택지는 분양 물량의 15%, 민간택지는 7%를 배정한다고 밝혔다. 가점이 높아 4050이 유리한 일반분양 비율이 줄어든 것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행복주택도 신혼부부와 청년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유동성이 넘실대고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는 건 정부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잘못된 정책으로 주택 시장의 ‘불씨’를 더 키워놓고 “주택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는 얘기만 반복하는 모습에 국민은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다.


심리전서 완패, 뒤늦은 공급 정책

서울 집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KB국민은행 부동산에 따르면 문재인 정권이 취임한 2017년 5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25.6% 상승했다. 상승률 자체도 높지만, 서민과 중산층이 살 만한 집이 올랐다는 게 더 문제다. 서울의 모든 아파트를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집을 말하는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는 52.7% 상승했다. 2017년 5월 6억2116만원 하던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는 올해 6월 9억2582만원으로 치솟았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3억5000만원이면 살 수 있었던 서울 중계동 한 아파트를 최근 7억원대에 판 집주인은 “기다리면 더 오를 텐데, 왜 그렇게 서둘렀나”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수요자들 사이에선 “집값이 내린다고 생각하는 건 정부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7·10 대책까지 임기 동안 22번의 부동산 정책을 쏟아부었지만, 한 지역을 누르면 다른 곳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효과’가 나타나며 서울과 수도권, 지방으로 집값 열풍이 번진 것을 보고 하는 말이다. 유동성 과잉과 저금리가 만든 판을 정책이 제어하는 데 실패하다 보니 주택 수요자와 심리전에서도 정부는 완패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학습효과로 단련된 수요자들은 주택 시장을 죄겠다는 정부의 규제 의지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수도권 2기 신도시 정책을 발표하며 주택 시장을 안정시킨 노무현 정부 때처럼 대규모 공급 정책 없인 시장이 진정되지 않는다고 봤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문재인 정부는 수요를 죄는 데만 집중해 공급 정책을 소홀히 했고, 주택 시장이 극심하게 과열되고 나서야 결국 수도권 3기 신도시 정책을 꺼내 들었다. 문제는 이마저 수요자가 원하는 ‘정답’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번 커버 스토리에서 ‘이코노미조선’은 ‘백약이 무효’인 부동산 시장의 현재를 진단했다. 세제·대출·청약·공급 정책을 통해 부동산 시장이 왜곡된 원인을 분석하고, 주택 시장이 안정화하기 위해선 어떤 ‘묘수’가 필요한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어봤다. 주택 수요자와 현장에서 뛰는 전문가들의 생생한 얘기도 담았다. ‘혼돈의 주택 시장’을 경험하는 독자들이 공감하고, 앞으로의 대안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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