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수도인 베를린의 고층 아파트 개발 현장. 사진 블룸버그
독일 수도인 베를린의 고층 아파트 개발 현장. 사진 블룸버그

전 세계에서 한국만 집값이 오른 건 아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각국이 푼 유동성이 자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면서 세계 주요 도시의 집값이 치솟고 있다. 보통 경제가 나빠지면 부동산 시장도 악영향을 받지만, 최근에는 이런 상식이 무너졌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7월 4일(현지시각) “미국 집값이 내릴 것이라는 경제학자들의 전망이 흔들리고 있다”면서 “유례없는 국내총생산(GDP) 하락과 실업률 상승에도 미국 주택 시장이 침체할 것이라는 징후는 미미하다”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 5월 미국 집값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 상승했다.

글로벌 종합 부동산 서비스 기업 CBRE가 전 세계 39개 도시를 조사해 발표한 ‘글로벌 리빙(Global Living) 2020’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도시는 독일 뮌헨이었다. 무려 11%가 상승했는데, 평균 집값은 100만달러(약 12억원)에 달했다. 이집트 카이로와 독일 베를린이 같은 기간 10% 상승해, 그 뒤를 이었다.

사회 안전망이 탄탄하고 공적 주택 서비스가 잘 갖춰진 독일이지만, 사실 집값 폭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독일연방은행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이어진 부동산 상승기에 7개 주요 도시와 127개 도시의 주택 가격이 각각 118.4%, 93.7% 상승했다. 이민자가 유입되고 경기 호조로 노동자 소득이 늘어나 도시 주택 수요가 불어났지만, 공급 증가가 더디게 진행된 영향이다. 한국과 유사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독일의 주택 시장 정책은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하 건산연)의 보고서를 보면, 독일 연방정부는 2015년 11월 주 정부, 지자체, 산업계가 공동으로 협력하는 주택 공급 정책을 발표했다. 신규 공급 확대를 위해 최대 80% 내린 가격으로 공공 토지를 공급하고, 도심에 신규 용도 지역을 신설해 개발·고밀화를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베를린 시는 올해 1월, 임대료를 5년간 동결하는 법안까지 내놨다. 현재 집권 여당인 기독민주당(CDU)이 위헌 소송을 제기했고, 임대주택 공급 감소와 향후 임대료 급등 우려 등 현지에서도 찬반 논쟁이 격렬하다. 허윤경 건산연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안정된 시장으로 평가됐던 독일 주택 시장의 변화는 수요에 비탄력적인 공급 시장은 장기적인 안정을 약속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집값 비싸기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도 집값 급등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파리의 평균 집값은 65만555달러(약 7억7900만원)에 이른다. 코로나19로 경기 침체 우려에 시달리고 있지만, 오히려 집값은 이상 과열 현상을 보이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 파리 아파트 1㎡당 평균 가격은 1만1460유로(약 1600만원)로, 전년보다 7.95% 상승했다. 프랑스 통계청(INSEE)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만 프랑스 집값이 5% 올라 전년 같은 기간 상승률(2.95%)을 웃돌았다. 이는 2011년 3분기 이후 기록한 최대 상승 폭이기도 하다.

프랑스 집값은 주택 시장 과열기인 1997년부터 2007년까지 무려 150% 상승했다. 2008년부터 상승세가 꺾이면서 2012~2015년에는 연평균 1.7% 하락했다. 하지만 2016년 들어 주택 시장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럼에도 프랑스 정부는 최근 부동산 세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내놨다. 1주택 거주자의 거주세를 2023년까지 전면 폐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보유세를 강화하는 한국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셈이다. 프랑스 정부는 이 정책이 중산층의 구매력을 끌어올려 경기 활성화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프랑스 일간지 르 파리지앵은 7월 19일 “마크롱 대통령이 소득 상위 20%에 대한 거주세 철폐는 연기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세계 각국도 부동산과 전쟁 중

영국 런던의 경우 중장기적인 ‘공급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평균 집값이 62만4225달러(약 7억4700만원)에 이르는 런던은 2015년 한 해에 집값이 12.2% 치솟는 등 주택 가격 급등이 사회적인 문제가 됐다. 결국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은 ‘임기 내 100만 가구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여전히 공급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2017년 총선에서 2022년까지 추가로 50만 가구를 짓겠다고 약속했다. 2017년에는 공급 확대 방안에 방점을 둔 종합 주택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태희 건산연 연구원은 “무엇보다 학자와 기관이 연구와 논의를 거쳐 공급 부족이 주택 가격 상승의 핵심 원인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며 “목표 주택 공급량과 표준화한 소요 추정 산정 공식을 제시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고 말했다.

2018년 집값 상승률이 7.86%에 달했던 싱가포르의 경우 정부 정책이 먹혀들면서 주택 시장이 냉각된 사례다. 지난해 싱가포르 집값 상승률은 2.67%에 그쳤다.

싱가포르 도시재개발청(URA)과 글로벌 부동산 시장 조사업체 글로벌 프로퍼티 가이드에 따르면, 2017년 3월 싱가포르 정부는 부동산 시장 규제를 일부 완화했다. 그러자 곧바로 주택 시장이 과열되기 시작했다. 2017년 한 해 주택 판매량이 2만5010가구를 기록해 전년보다 52.7% 증가했다. 2009년 이후 최대 상승 폭이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2018년 7월 싱가포르 시민(SC)과 영주권자(PRs)가 첫 주택을 사는 경우를 제외하고, 주택 구매자에 대해 한국의 취득세에 해당하는 추가 인지세를 5%포인트 올렸다. 주택 개발을 위해 주거용 부동산을 사들이는 개발업자에 대한 추가 인지세도 5%포인트 인상했다. 주거용 부동산에 대한 담보인정비율(LTV)은 80%에서 75%로 강화했다.

싱가포르의 경우 여전히 규제로 주택 시장을 죄고 있다. 헝 스위 키트 (Heng Swee Keat) 부총리는 지난 2월 “부진한 경제와 코로나19에도 부동산 규제를 완화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싱가포르의 경우 정부가 토지의 85% 이상을 소유하고 있고, 주택 자가율이 95%에 이르는 시장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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