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 학·석사, 미네소타대 응용경제학 박사, 농림축산식품부 통상 자문위원, 국회 입법지원 위원, 기획재정부 재정사업 평가위원,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 사진최상현 기자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 학·석사, 미네소타대 응용경제학 박사, 농림축산식품부 통상 자문위원, 국회 입법지원 위원, 기획재정부 재정사업 평가위원,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 사진 최상현 기자

식량 안보는 체감하기 어려운 위기감이다. 한쪽에서는 “대한민국의 식량 안보는 취약하다”며 “식량자급률을 높일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우리 쌀이 남아돈다”라며 정부 수매를 요구한다. 식량 안보를 둘러싼 상반된 관점은 팬데믹(pendemic·감염병 대유행) 국면에서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50년 만에 최악의 식량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세계 식량 가격은 수요 위축으로 오히려 하락했다.

‘이코노미조선’은 농산물 무역과 세계 식량 산업 분야의 전문가인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를 8월 13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나 ‘우리 식량 안보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그에 맞는 해법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교수는 “쌀이라는 곡물에 한해서는 공급 과잉 수준으로 자급률이 높은 게 맞다”면서도 “쌀을 제외한 대부분의 식량에 대해서는 취약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 우리 식량 안보의 실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한 식량 위기는 주로 개발도상국에 국한될 가능성이 크지만, 만에 하나 그 여파가 우리나라에까지 미칠 경우 우리에게 마땅히 대응할 수단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덧붙였다.


우리의 ‘식량 안보’는 실제로 어떤 상황에 놓여있나.
“식량 안보를 구성하는 요소는 크게 가용성과 접근성, 이용성, 안정성 네 가지로 나뉜다. 가용성은 식량의 총량이 충분해야 한다는 것이고 접근성은 소득이나 가격, 시장 등이 식량에 접근하기 위한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용성은 그 식량의 품질이나 영양 성분 등이 적절한가를 따지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안정성은 자연재해나 경기 변동 등에도 안정적으로 공급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식량의 가용성 부족을 국제 시장에 대한 높은 접근성으로 해소하고 있는 구조다. 농업 구조가 벼농사에 치중돼 있어 쌀의 가용성은 거의 100%에 가깝지만, 좁은 농지 면적 탓에 콩이나 밀, 옥수수 등의 다른 곡물은 가용성이 매우 부족해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사료용 곡물을 포함하면 매년 수입량이 1500만~2000만t에 달한다. 농축산물 관리 체계나 수입 통관 절차 등이 잘 정비돼 있어 이용성도 충분하다. 국가적으로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노력도 하는 편이다. 지금까지 우리 식량 안보는 크게 위협받은 적도 없고, 현재의 체계가 유지되는 한 앞으로도 그럴 우려는 적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상황이 우리 식량 안보에 위협을 가하게 될 것인가.
“주요 곡물 수출국이 코로나19로 생산에 타격을 입으면 곡물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식량 안보는 흔들릴 수 있다. 다행히도 미국이나 남미, 동유럽 등 주요 곡물 수출국 대부분이 농업 기계화가 잘되어 있어 코로나19 영향을 적게 받는다. 팬데믹으로 농업 생산이 위축되는 건 주로 노동집약적 농업을 하는 개발도상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과일과 채소 등 원예작물도 생산이 불안정할 수 있다. 원예 작물은 곡물에 비해 인력 비중이 높아 농번기에는 주로 인근 개발도상국에서 계절 노동자를 고용해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코로나19 감염 위험으로 국경을 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식량의 가용성을 높일 방법은 없나.
“그런 목적에서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사업이 ‘해외 농업 진출’이다. 개발도상국의 땅을 사서 우리 자본과 농업 기술로 식량을 생산하고, 유사시 국내로 수급하겠다는 구상에 따른 것이다. 그렇지만 국제적인 식량 위기가 실제로 닥치면, 해외에서 생산한 식량을 국내로 운송하는 것이 가능할까. 최근 베트남과 인도가 그랬던 것처럼 식량 수출 규제가 발동되면, 해외 농업 진출은 무용지물이 될 위험이 있다. 좀 더 진일보된 대비책이 국제 곡물 유통 시장에 참여하는 것이다. 국제적인 유통망을 쥐고 있으면 식량 위기가 와도 어떻게든 자국 물량은 수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지 면적이 부족한 약점을 다양한 식량 생태계 조성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도 국제 곡물 유통 시장에 진출하려는 시도를 여러 번 했지만, 우크라이나의 곡물 터미널을 인수한 포스코 인터내셔널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그만큼 어려운 사업이다. 결국 메이저 곡물 회사에 수급을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데, ‘식량자주권’이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국제 곡물 유통 사업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초기 투자 비용이 막대하다. 대량의 곡물을 유통하려면 곡물 엘리베이터라는 인프라를 건립해야 하고, 곡물 운송용 선박도 따로 확보해야 한다. 이런 초기 투자를 한 번이 아니라 주요 곡물 생산지마다 해야 한다. 또 농사는 작황에 따른 변동이 심해 호황기에는 이윤을 내지만, 불황기에는 지속적인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은 불황기를 못 버틴다.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도 필수적이다. 곡물 거래는 기본적으로 선물 시장을 통하기 때문이다. ABCD(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 벙기, 카길, 루이드레퓌스)로 통칭되는 메이저 곡물 회사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하는데, 일본에도 마루베니, 미쓰비시 등 세계적인 곡물 회사가 많다. 1960년대부터 해외 진출을 위해 노력한 성과다. 일본 농협이 먼저 해외 곡물 유통 시장에 진출해, 정부 자금 지원을 바탕으로 버텨내면서 성공사례를 만들었고, 이후 민간 기업이 합류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근래에는 식량 산업이 신(新)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의 농업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까.
“쉽지 않다. 농업 기술의 수준은 높은 편이지만, 농업인의 수가 너무 많고, 또 고령화한 상황이라 신기술을 접목하거나 유통 혁신을 일으키기 어렵다. 농업 경쟁력 차원에서 조금 뒤처지는 부분이 있다. 농작물을 직접 수출하는 방향보다는 작물 보호제나 스마트팜 같은 기술 비중이 높은 분야에서 농업 경쟁력을 향상시켜 나가야 한다. 특히 시급한 분야가 농업의 반도체라고 할 수 있는 종자다. 자급률이 부끄러울 정도로 낮다. 민간 기업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재배 면적이 가장 넓은 벼 종자의 가격을 정부가 농업 안정화를 이유로 낮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면 먼저 국내 시장이 충분히 성장해야 하는데, 그런 전제 조건의 이행이 가로막힌 환경이다.”

식량 안보와 농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정책 제언을 한다면.
“곡류와 비곡류를 나눈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비곡류는 첨단 기술을 접목해 생산성은 높이고, 변동성은 줄이는 전략이 유효할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 작물에 대해 기존 농업과 스마트팜을 병행하면, 기존 농업이 아무리 작황이 안 좋아도 스마트팜은 작황과 생산비가 일정하기 때문에 가격과 수급에 있어 일종의 완충지가 생긴다. 곡류에 대해서는 농지 여건상 벼를 제외한 곡물은 자급자족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국제 유통 사업에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 민관이 협력해 다시금 유통망 자국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

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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