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일하는 트레이더들. 9월 14일(현지시각) 뉴욕 증시 주요 지수는 상승 마감했다. 사진 AP연합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일하는 트레이더들. 9월 14일(현지시각) 뉴욕 증시 주요 지수는 상승 마감했다. 사진 AP연합

‘-31.7%’, 올해 2분기(4~6월)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다. 연율 기준 환산으로 전 분기와 비교했을 때 수치다. 통계를 집계한 1947년 이후 73년 만에 최악의 기록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생산과 소비 등 경제 환경이 망가진 탓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은 나라다.

경제는 망가졌지만, 9월 초(이하 현지시각)까지만 해도 미국 주식시장은 이런 상황과 동떨어졌다. 3월 23일 6860.7까지 내린 기술주(株)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이하 나스닥지수)는 돌연 반등하며 6월 10일 1만 선을 돌파했다. 9월 2일에는 1만2056.4로, 사상 처음 1만2000선을 넘어섰다.

주식시장은 ‘꿈’을 먹고산다는 말로 표현된다. 기업의 현재 실적도 중요하지만,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주가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장기화하며 경기가 가라앉는 상황에서 주식시장이 널뛴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금까지의 상식이 깨졌다”고 말한다.

주식시장에 온기가 돈 건 각국이 코로나19로 침체한 경기를 살리기 위해 쏟아부은 ‘돈’, 이른바 유동성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는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까지 내리면서 이를 2023년까지 유지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고, 시중에 무제한으로 자금을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물가 상승률이 2%를 넘더라도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밝히며 평균물가목표제(AIT) 도입을 공식화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지난 4월 기준금리 0% 동결을 결정했고, 지난 7월 보조금 3900억유로(약 547조원)와 대출금 3600억유로(약 505조원)로 구성된 유럽연합(EU) 회복기금에 합의하며 경기 침체에 대비하고 있다. 중국은 8월 인민은행을 통해 7000억위안(약 121조원)을 추가 공급했다.

막대한 유동성은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투자자들은 코로나19가 언젠가는 끝날 이슈라고 판단했다. 경제 활동이 재개되면 밀렸던 생산, 투자, 소비가 이뤄지며 이전보다 기업의 실적과 경제 상황이 더욱 좋아질 것으로 본 것이다. 주식시장에 투자자들이 몰리는 이유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덕분에 이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한 회사들이 실제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며 “이는 경기가 둔화할 때 시장이 반등하는 이유를 설명한다”고 보도했다. 일례로 애플은 2분기에 전년 2분기보다 13.4% 증가한 131억달러(약 15조4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믿음도 작용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더라도 각국 정부가 계속 유동성을 풀 것이라고 투자자들은 내다봤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6월 15일 회사채 직접 매입과 기업 대출 프로그램을 내놨을 때부터 금융시장에는 ‘유동성 도취(유포리아)’ 현상이 만연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계속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연준의 신호에 투자자들은 우량 자산 매입에 나섰다.

전 세계 통화량(M2·광의통화)을 나타내는 블룸버그 글로벌 통화공급지수는 지난 7월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3.2% 상승해 5개월째 올랐다. 유동성이 주식시장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것이다.


거품 꺼질까…美 대선·코로나19 변수 부각

코로나19 위협이 없는 것처럼 치솟던 미 주식시장이었지만, 9월 3일 이후 나스닥지수는 주춤하는 분위기다. 특히 그동안 주식시장을 이끌던 기술주의 부진이 심각하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버블(거품)’이 꺼지는 전조라는 불안감이 나타나고 있다. 나스닥지수는 9월 3일부터 9월 11일까지 10% 넘게 내렸다. 14일과 15일 각각 1.9%와 1.2% 오르긴 했지만, 상승장으로 돌아섰다고 보기엔 이른 분위기다.

마이크 베일리 FBB 캐피털 파트너스 리서치 디렉터는 최근 주식시장 급등락을 “군중심리(The Herd Mentality)”라고 진단하며 “물건이 오를 땐 계속 사들였지만, 지금은 공포로 전환점을 맞게 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주식시장을 뒤흔들 변수로 두 달도 남지 않은 미국 대선(11월 3일)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경기 침체 등이 언급된다. 미국 투자 전문 매체 모틀리풀은 9월 13일 △코로나19 재확산 △과대 평가된 코로나19 백신 △대선 불확실성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에 대한 투자자 심리 변화 등을 주식시장 하락 원인으로 꼽았다. 실제로 미국에선 대선에 따른 주식시장 영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및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 수혜주 등이 계속 언급되고 있다. CNN 비즈니스는 최근 “최근 재생에너지, 친세계화, 헬스케어 등 이른바 ‘바이든 리스트’라고 불리는 주식이 6월 초 이후 10% 이상 상승했고, 트럼프 수혜주인 석유·화석 연료 생산 업체, 대형 방산 업체, 은행주 등은 지난 3개월간 9% 하락했다”고 보도했다.

WSJ는 “주식시장은 경기 침체,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 대선이라는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며 “투자자들은 이미 미국 대선을 전후로 더 많은 변동에 베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WSJ는 알타프 카삼 스테이트스트리트 글로벌 자문 유럽·중동·아프리카 투자전략책임자의 말을 인용해 “투자자들은 변동에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韓 증시는 “견고”

연초부터 9월 15일까지 코스피지수는 11% 넘게 올랐고 코스닥지수는 무려 34.3% 상승했다. 코스피지수의 경우 9월 초부터 15일까지 내린 날이 이틀, 코스닥지수는 사흘에 불과하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7월 기준으로 한국의 M2는 전년보다 10% 증가했다. 금융위기 이후 평균치를 3%포인트가량 웃도는 수치다. 이 속도가 유지되면 올해 화폐 유통 속도는 사상 최저치인 0.6배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코스피지수는 대체로 화폐 유통 속도와 반대 방향을 나타낸다.

최유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풍부한 유동성은 증시 하단을 견고하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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