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기 서울대 경제학과, 미 아이오와대 노동경제학 박사, 전 한국노동경제학회 회장,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 / 사진 김태기
김태기
서울대 경제학과, 미 아이오와대 노동경제학 박사, 전 한국노동경제학회 회장,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 / 사진 김태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앞당긴 원격·자동화 사회에서 ‘내 일자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이미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저숙련 노동자뿐만 아니라, 사무·관리·제조직 등 중숙련 노동자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지 못하면 도태되고 말 겁니다.”

10월 8일 경기 용인시 죽전동 단국대 연구실에서 ‘이코노미조선’과 만난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김 교수는 “이미 기술 전문직은 서로 데려가려고 난리인데, 중간 관리직은 구조조정 대상이 될까 전전긍긍 눈칫밥을 먹고, 서비스업 종사자는 실직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상황 아니냐”며 “코로나19 이후에는 더더욱 ‘각자도생’의 고용 시장이 펼쳐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감염병 위협으로 영업이 위축된 대면 서비스업이나 외식업, 항공업, 관광업 등에서 나타난 저숙련 노동자의 대량 실직을 ‘경기 변동에 대한 일시적 실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코로나19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경제 구조가 재편된 결과, 이들 일자리 중 상당 부분은 ‘영원히 사라진 일자리’가 될 거라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기술이 ‘시대 변화에 뒤떨어진 것’으로 전락한 중숙련 노동자 다수도 소득이 많이 감소하거나 커리어 위기에 몰릴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여파는 일자리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바꿨나.
“일단 원격 근무의 효용성을 근로자와 사업주 모두에게 경험적으로 증명했다는 점이다. 근로자는 출퇴근 러시아워에서 해방돼 가용 시간이 늘어났다. 매일 1시간씩이라고 하면 연간 260시간이 더 생긴 셈이다. 남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해도 되고 여가를 즐겨도 된다. 자율적인 업무 환경이 마련되면서 만족도도 높아졌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원격 근무가 비생산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근태 관리 시스템의 발전 덕분에 업무 성과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고, 원격 회의도 별문제 없이 잘 돌아간다. 그러면 이제 주판알을 튕겨보는 거다. ‘원격 근무를 계속 유지하면 비싼 임대료에 전기세, 관리비까지 내면서 도심에 큰 규모의 사무 공간을 유지할 필요가 없겠구나.’ 여기까지만 보면 ‘윈윈(win-win)’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빌딩 청소부나 보안 요원 등이 일자리를 잃는다. 오피스 상권 주변의 자영업자도 장사를 접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는 ‘중간 관리직이 존재할 필요가 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근태 관리는 소프트웨어가 알아서 하고, 업무 자체도 개체화되고 개별적으로 변하는데 차장이 왜 필요하고 부장이 왜 필요하겠나. 인사·총무나 경영지원 같은 부서를 둘 필요가 없어진다. 원격 근무에서는 팀원과 팀장, 즉 실무자와 책임자만 있으면 된다. 소비의 중심축이 비대면으로 옮겨지는 것도 관리직이 무용해지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유통 업계는 온라인 쇼핑몰을 확대하고 마트를 폐업하는 추세인데, 그러면 해당 마트의 매장 운영, 재고 관리, 영업 판촉 등의 관리 부서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는 얘기다. 사업주와 근로자 사이,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의 ‘중간 과정’이 사라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쓸모를 다한’ 중간 관리직은 어떻게 되나.
“당장 해고되진 않고 기회를 줄 거다. 오프라인 시장이 줄어든 만큼 온라인 시장이 커졌기 때문에 일거리 자체는 줄지 않았다. 마트 영업 판촉을 했던 사람이라면 온라인 쇼핑몰 이용자 데이터 관리를 맡기는 식으로, 조직 개편을 통해 기존 중간 관리직에게 새로운 직무를 부여할 거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연차만 높은 저숙련 노동자로 전락하는 셈이다. 새로 배워서 적응하지 못하면 자연 도태 수순이다.”

도태되지 않으려면 어떤 역량이 필요하나.
“직무와 산업에 따라 제각각 다르겠지만, 대체로 소프트웨어나 인공지능(AI), 로봇 등의 정보통신기술(ICT) 툴을 다루는 능력을 습득해야 한다. ‘정보화 시대에 디지털 리터러시(literacy·문해력)가 핵심 역량’이라는 말이 진부할 수도 있는데,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없었다면 디지털 전환이 점진적으로 진행됐을 테지만, 지금은 일순간에 경제 구조가 뒤바뀐 상황이기 때문이다.”

어디서 어떻게 그런 기술을 습득해야 할지도 막막한데.
“‘새로운 직업 능력을 배울 데가 마땅치 않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직업훈련 시스템이 그만큼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앞서 말했듯 원격·자동화로 인해 기존의 중숙련 노동자가 저숙련 인력으로 절하되고, 저숙련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고 빈곤층이 되는 현실이다. 직업훈련은 원래 이러한 저숙련 노동자가 고숙련, 혹은 새로운 중숙련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엉터리일 수가 있나 싶다. 정보기술(IT) 직업훈련이라며 가르치는 것들이 대부분 MS 오피스이고, 포토샵이다. 교육 종목이 시대 변화에 뒤떨어질뿐더러 훈련생의 수준도 기업이 요구하는 정도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직업훈련을 마쳐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거나, 저임금 비정규직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직업훈련이 제 역할을 못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직업훈련의 근본적인 문제는 철저히 공공기관 주도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적 채우기’를 위해 어떻게든 훈련생을 많이 받고, 어떤 일자리든 상관없이 취업만 시키면 장땡이다. 훈련생이 높은 수준의 기술을 숙달해서 얼마나 좋은 일자리로 가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렇게 해도 강사나 훈련기관에 돌아가는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독일이나 스웨덴 등에서는 직업훈련의 주체가 민간 기업이다. 쉽게 배울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 엉성한 훈련생을 양산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자사에서 채용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기술력을 갖춘 인적 자원 창출에 초점을 맞춘다. 민간 기업에 의한 직업훈련을 아예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좋은 성과가 나온다.”

근로자가 새로운 기술을 배워 새로운 일자리로 이동하도록 촉진하려면, 어떤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가.
“기술 혁신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월 300만원의 일자리를 얻게 해 준 기술이, 내년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기술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직업훈련, 그리고 재직자 재교육은 이제 국민의 사회적 권리다. 국비 지원금만 몇 푼 뿌리고 끝나는 제도가 아니라, 어떤 기술을 익혀야 산업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지 안내해주는 컨설팅부터 시작해 고급 기술을 획득하고 일자리로 연계까지 되는 ‘토털 서비스’로 거듭나야 한다. 또 파견 업체에 대한 규제도 풀어야 한다. 지금 정부는 파견 업체를 ‘일용직 노동자 임금을 착취하는 인력 알선소’로 치부하고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파견 업체가 기업의 요구에 따라 신기술을 교육하고 일자리까지 매칭하는 고용 안전망 역할을 한다. 그러지 못하면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 고용 시장에서 우리의 생존법은 ‘각자도생’밖에 없다.”

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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