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시장에서 이과계열 직무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전문성 있는 커리어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고용 시장에서 이과계열 직무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전문성 있는 커리어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흑점이 폭발해 플라스마 입자가 방출되는 현상으로 자연재해, 금융 쇼크, 테러에 이어 인류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히는 ‘이 현상’은 무엇일까요?”

“문과라 죄송해요.”

2016년 6월 26일 KBS TV 프로그램 ‘도전 골든벨’에서 끝내 정답을 찾지 못한 한 학생이 써올린 문구는 곧 문과계열 대학 재학·졸업생들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자조적인 ‘문송합니다’가 됐다. 점점 문과계열 전공자에게 가혹해지는 취업 시장 때문이다. 이 시기에 이미 삼성, LG, 현대 등 대기업의 신입사원 공채는 이과계열 직무 비율이 80%를 넘겼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경제 활동의 중심축을 비대면 공간으로 이동시켰다.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소비가 실행되고 데이터를 통해 고객과 소통하는 비대면 공간의 언어는 ‘말’이 아닌 ‘기술’이기에 이과계열 직무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졌다. 반면 인사·총무·사무와 같은 대표적인 문과계열 직무들은 소프트웨어로 대체되거나 그 비중이 작아졌다. 문과 직장인들이 ‘앞으로 어떻게 커리어를 이어나가야 하냐’는 위기감을 느끼는 이유다.

전문성에 목마른 문과 직장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명확한 해답을 찾기는 어렵다. 해운물류 회사에 근무하는 정모(26)씨는 최근 사이버 대학에 입학했다. 원래 대학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했던 정씨는 “현업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고 싶어 국제무역학 전공을 추가로 획득하고자 한다”며 “물류관리사 등 관련 자격증도 꾸준히 취득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자격증이나 추가 학위가 커리어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솔직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직장인 박모(30)씨는 주말마다 경제·기술서적 독서 모임에 참여한다. 박씨는 “요즘에는 ‘기술적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면 영업도 못 한다’며 영업팀 신입도 이과 출신을 주로 뽑더라”며 “이대로 뒤처질까봐 열심히 공부하고는 있는데, 사실 수박 겉핥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도 한다”고 했다. 출판사에 근무하는 김모(29)씨는 정보기술(IT) 회사 이직을 목표로 최근 코딩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가장 기본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라는 ‘C++’를 배우기로 마음먹고 두꺼운 입문서를 구매했다”며 “그런데 간단한 프로그램 하나 만드는 것도 너무 어렵고, 이걸 어느 세월에 다 배워 써먹나 싶은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조선’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흔들리지 않을 커리어로의 전환을 시도한 세 명을 인터뷰하고 그 사례를 정리했다. 이런 고민을 공유하고 있을 문과 출신 직장인들에게 작은 나침반이 되길 바란다.


사례 1│‘야 너두’ 개발자 될 수 있어

경영학과 출신 A씨는 최근 국내 대표적인 IT 기업에 개발자로 입사하는 데 성공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코딩 까막눈’이었던 그는 스타트업 창업을 계기로 개발에 눈을 떴다고 했다. “‘문돌이’들만 모인 스타트업이다 보니 개발자 구하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겼다. 프로토타입(prototype) 하나 만드는 데도 한 세월이 걸렸다. 기술적인 창업을 하려는 사람이 기술을 모르면 되겠나 싶어서 미국까지 가서 개발을 배웠다.”

A씨는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이 보장되는 교육기관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부트캠프’라고 불리는 이러한 교육기관은 단기간에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을 정도의 개발 능력을 배양해준다. 한국의 부트캠프로는 패스트캠퍼스, 팀노바, 코드스쿼드, 바닐라코딩 코드스테이츠 등이 있다.

기본적인 개발 능력이 갖춰지고 나면 그때부터는 ‘포트폴리오 쌓기’에 주력해야 한다고 A씨는 조언했다. “개발자는 그동안 어떤 프로젝트를 해왔는지가 곧 명함이다. 좋은 회사에 들어갈 능력이 갖춰질 때까지 무작정 공부에 매달리기보다는 작은 에이전시(외주 개발사)라도 들어가 실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훨씬 쉽고 빠른 길입니다.” A씨는 개발자의 매력으로 ‘아이디어를 가시적인 작업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사례 2│뜬구름 잡는 기획 말고 진짜 기획해야 통해

IT 회사에서 기획자로 일하고 있는 B씨는 컴퓨터와 무관한 문과 출신이다. 그 역시 스타트업 창업이 입문 계기가 됐는데, 프로그래머와 팀을 짜고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프로젝트 경험을 쌓았다. 어깨 너머로 프로그래밍도 배웠다. B씨는 “기획자는 문서로 말하는 사람”이라며 “자신이 만들어 온 문서와 그 결과물이 중요한 포트폴리오가 된다”고 강조했다.

B씨가 말하는 ‘문서’는 ‘개발자와 디자이너 등 다른 팀원들에게 이런 식으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는 일종의 규격서’다. 이 규격서를 어떻게 실제 프로그램으로 구현 가능한지에 대해 기술적 이해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했다.

“기획자는 문서를 보면 그 실력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아예 모르는 사람은 그냥 로그인 화면만 덜렁 그려놓지만, 좀 아는 사람은 그 뒷장에 로그인이 실패했을 때 회원가입을 유도하거나 비밀번호 찾기를 제공하는 다음 단계를 그려놓는다. 정말 잘하는 기획자의 문서를 보면 겉으로 보이는 화면뿐만 아니라 그 뒤에서 서버가 데이터를 어떻게 주고받는지 등 백엔드(back-end)도 전부 만들어져 있는 완성도다.”

B씨는 “기획자는 특히 처음 취업하기가 어려운 직종”이라며 “중대한 프로젝트를 맡길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라고 했다. 기획자 커리어를 처음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가상의 문서라도 계속 작성하는 것이 좋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또 “다른 IT 직군과 마찬가지로 자기 포트폴리오 관리를 정말 철저히 해야 한다”며 “현업 직장인이라면 최대한 IT와 연계된 프로젝트를 하는 직무로 인사 이동을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외주 개발사와 함께 만든 소프트웨어가 기획자 직무 이직 시 훌륭한 포트폴리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례 3│임상심리 대학원 진학 이유는  ‘흔들리지 않는 전문성’

상경계열 출신 C씨는 자동차 회사에서 조사분석 및 전략 직무로 2년간 근무하다가 돌연 직장을 그만뒀다.

“반복적인 업무에서 의미를 찾기 힘들었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는데 회사원 생활에서 그런 걸 찾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사내 빅데이터 분석실이 생기면서, 내가 하는 업무도 언젠가 필요한 인원이 크게 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흔들리지 않는 전문성과 ‘나만의 커리어’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졌다.”

그가 선택한 것은 임상심리학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박사 과정을 마치고 병원에서 수련까지 마치고 나면 임상심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사람의 정신 건강을 상담하는 일이다 보니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다른 영역에 비해 희석될 우려가 적은 전문성이라고 느꼈다.”

C씨는 “자동차 회사에서 직무 경험을 쌓으면서도 그 회사를 나오게 되면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부분이 싫었다”며 “반면 임상 심리 전문가는 기업에 취업하든, 병원에서 일하든, 직접 상담소를 차리든 그 경력이 온전히 ‘내 것’으로 귀속되는 것이 매력인 것 같다”고 했다.

최상현·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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