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1년 차인 김신입(가명)씨는 취업난 속 서류 난사(무차별적으로 여러 회사에 채용 원서를 넣는다는 뜻의 신조어)를 한 결과 합격한 식품 회사 영업팀에 들어갔다. 그러나 영업 일이 재미가 없어 그는 매일 수십 번씩 ‘퇴사할까, 몇 년만 참고 이직할까’를 고민한다.

입사 6년 차 한대리(가명)씨는 6년 동안 화장품 기업의 오프라인 지점 관리를 하고 있다. 손에 익은 일 자체는 즐겁지만, 앞으로는 수요가 거의 없을 직무를 하고 있다는 불안감에 이직 생각을 하게 됐다.

입사 20년 차 임원인 황이사(가명)씨는 한 조선 회사의 임원이다. 자기 일에 자부심은 크지만, 혹시 내가 사양산업에서 평생을 보낸 것은 아닌지, 은퇴 후에 내가 갈 곳은 있을지 걱정이 많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고용 시장에 한파를 몰고 왔다. 평생직장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고,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가속화한 일자리 지형의 변화는 직장인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다양한 연차의 직장인은 발전 가능성이 큰 일자리를 찾고자 하지만, 어떻게 커리어를 관리해야 할지 고민은 매일 깊어만 간다. 특히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 이직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다.

‘이코노미조선’은 10년 넘게 이직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직 헤드헌터 네 명을 10월 12일 만나 직장인을 위한 커리어 관리 방법에 대해 들었다. 엔터웨이파트너스에서 전기·전자 업종을 담당하는 유윤동 대표이사, 유니코써치에서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담당하는 권용주 이사와 소비재를 담당하는 문선경 상무, 벤처피플에서 제조업과 건설을 담당하는 김동원 이사와 인터뷰를 토대로 신입(경력 1~3년 차), 주니어(4~10년 차), 시니어(11년 차 이상)를 위한 일자리 시장 가이드라인을 엮었다.

직장인을 대표하는 김신입, 한대리, 황이사씨의 커리어 고민에 대한 처방을 받았고, 헤드헌터들이 매칭을 성공시킨 직장인 이직 사례도 담았다.


유윤동 아주대 전자공학
유윤동
아주대 전자공학

키워드 1│업종은 바꿔도 직무는 평생 간다

헤드헌터들은 신입의 경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하고, 반드시 원하는 직무에서 오래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이들은 “업종은 나중에 충분히 바꿀 수 있지만, 직무를 바꾸는 일은 훨씬 어렵다”며 신중하게 첫 커리어를 시작하라고 강조했다. 직무가 전혀 맞지 않는 김신입씨의 경우, 회사 내에서 부서를 바꾸거나 다른 회사에 다른 직무 신입사원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명 ‘중고신입(직장 생활 경험이 있는 구직자가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고 다른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는 것)’을 뜻한다.

유윤동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 직무를 억지로 1~3년 하면, 주니어급이 됐을 때 그 경력을 거스르고 커리어를 전환하기가 매우 어렵다. ‘타이틀’을 중시하는 문화 때문에 자신의 업무에 대한 큰 고민 없이 기업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렇게 취업한 많은 젊은 직장인이 이후 주니어급이 되어 직무를 바꾸려고 시도하나,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한 직무를 5년 이상 하면 그 이후 갑자기 다른 직무를 하기 어렵다. 처음부터 자신과 잘 맞는, 오래 하고 싶은 업무를 맡아서 일관성 있게 커리어를 관리해야 한다.”


키워드 2│직무 안에서 빅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반면 원하는 직무를 하고 있는 신입의 경우, 같은 직무의 대기업에 가기 위해 계속 취업을 준비하는 것보다 약 3~4년 동안 한 가지 직무의 전문성을 키우며 이직의 기회를 엿보라고 했다. 특히 모든 직무를 막론하고 반드시 데이터 관련 지식을 익혀 차후 커리어를 다각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라고 조언했다. 당장 코딩 지식이 없더라도 일반적으로 6주 정도의 훈련을 받으면 데이터 분석 플랫폼인 ‘나임(KNIME)’을 사용할 수 있다. 헤드헌터들은 탈잉 등 온라인 수업을 통해 이러한 툴 사용법을 익혀 자신의 실무 데이터를 직접 분석해 보고, 도출한 결과를 반영해 성과를 내는 경험은 훌륭한 이직 포트폴리오가 된다고 조언했다.

권용주 “빅데이터는 모든 산업·직무에서 가장 활용도가 높은 수단이다. 최근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 인력에 대한 수요가 매우 많으나, 아직 숙련된 전문가 공급이 거의 없다. 자기 계발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몸값을 높일 좋은 기회다. 과거에는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에 국한됐던 데이터 분석 능력이 이젠 소비재·금융·제조 등 모든 산업군에서 요구된다. 신입의 경우 데이터 관련 고등교육을 더 받아 선택지를 넓힐 수도 있다. 심리학과 졸업 후 기업 리서치 센터에서 소비자 조사 업무를 하던 신입이 뇌공학, 인지심리학 석사를 마친 후 연봉을 높여 외국계 기업의 UX(소비자 경험) 기획 직무로 이직한 사례도 있다.”

유윤동 “최근 주요 스타트업은 통계학과나 수학과 출신처럼 및 빅데이터 관련 지식이 있는 인재를 많이 채용하고 있다. 기술은 바로 직전에 등장한 기술을 토대로 발전하기 때문에 앞으로 수년 후에 등장하는 미래 기술들도 모두 수학적인 지식이 있어야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권용주 펜실베이니아대 행정학 석사, 전 지식재산 연구원 연구원
권용주
펜실베이니아대 행정학 석사, 전 지식재산 연구원 연구원

키워드 3│희미해진 업종 간 경계, 산업군을 뛰어넘으라

주니어급은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전문성을 기반으로 가장 이직을 많이 하는 직급이다. 헤드헌터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들의 이직은 업종 간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제조업·소비재 등 전통 산업군도 정보기술(IT)을 접목시키고 쿠팡, 아마존처럼 한 기업이 제조·유통·서비스 등 여러 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가운데 산업 분류에 따른 기업의 희망 인재상과 역량 구분이 희미해졌다고 설명했다. 관련 지식과 경험이 있는 경력자를 최우선으로 선발해 온 과거에는 동종 업종 경험이 없으면 이력서 검토 단계도 통과하기 어려웠으나, 이젠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뜨는 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IT 업계로 연봉 등 조건을 낮춰서 이직하는 것보다는 기존 산업에서 혁신적인 업무를 맡는 것이 커리어를 더 안전하게 관리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조언도 있었다.

6년간 화장품 기업의 오프라인 지점을 관리했던 한대리의 경우, 의류 업체와 컬래버레이션(협업)하면서 꾸몄던 매장 관리 경험을 포트폴리오 삼아 의류 업계 영업 관리로 이직할 수 있다. 또는 회사 TF팀에 들어가 기존 매장에서 진행하던 행사를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를 주도해보고 이를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종으로 이직 시 디지털 역량으로 내세울 수 있다.

권용주 “산업이 고도화하고 IT 기술이 발전하면서, 한 기업이 만나게 되는 고객군의 범위가 넓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양도 늘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이 때문에 자신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이종(異種) 산업에서 해당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실무자를 데려와 벤치마킹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예컨대 명품 브랜드에서 기획을 담당하던 실무자가 IT 관련 제조 기업으로 이직한 사례가 있다. 이 회사에서 프리미엄 제품을 만들어 마케팅하려다 보니, VIP 고객 관리에 일가견이 있는 실무자를 발굴해 스카우트한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이직하고자 하는 업종의 기업이 최근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와 관련된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찾아내, 이력서와 면접에서 강조해야 한다.”


키워드 4│일관된 경력으로 스페셜리스트가 되라

주니어급에게 헤드헌터들은 ‘멀티플레이어가 아닌 스페셜리스트가 되라’고 조언했다. 이들은 주니어급이 자신의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회사에 단호하게 ‘노(No)’라고 외치는 용기를 길러야 한다고 했다. ‘나의 전체 커리어와 연관성이 없는 직무에 쏟는 시간은 경력 단절이나 마찬가지’이므로 회사의 부서 변경 제안을 거절하거나 최악의 경우 퇴사도 불사하며 커리어의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 특히 개발자처럼 상대적으로 은퇴 시기가 빠른 직군의 경우, 주니어급은 내가 이 회사에 남아서 제너럴리스트로서 관리자급으로 승진할지, 실무를 계속할 수 있는 회사로 옮겨 계속 개발자의 길로 갈지 결정해야 한다.

김동원 “대다수의 기업은 한 분야의 전문가인 스페셜리스트를 원한다. 과거 제너럴리스트는 한 회사 내에서 여러 부서를 경험하며 회사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임원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이들은 회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기반으로 사내에서는 승진이 쉽지만, 회사 밖에서는 커리어의 매력도가 떨어진다. 이 때문에 회사 내 관리자급 승진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주니어급 때부터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해 커리어 계획을 촘촘히 짜 회사에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유윤동 “10년을 기준으로 직무가 최소한 세 번 이상 바뀌지 않게, 7~8년을 하나의 직무로 채워야 이직 시장에서 경쟁력이 생긴다. 회사에서 내 커리어 연속성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능동적으로 업무를 대해야 한다. 변해가는 트렌드에 맞춰서 내 직무를 내 목표에 맞춰 수정해야 한다.”


김동원 단국대 정치외교학
김동원
단국대 정치외교학

시니어급은 한 업계와 회사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충분히 쌓은 사람이다. 그러나 시니어급 역시 두 집단으로 나눌 수 있으며, 헤드헌터의 커리어 처방 역시 다르다.

먼저 차장·부장 등 중간 관리자급 직장인은 이직보다는 자신의 회사에 머무르며 임원급의 전문성과 경험을 더 확보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들은 실무자를 지휘·관리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이직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포트폴리오를 쌓기 어렵고, 따라서 이직도 상대적으로 쉽지 않아 회사를 나오면 계약직 혹은 파견 형태의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 헤드헌터들은 중간 관리자는 ‘실무자도 임원도 아니라 애매하고, 연차도 높아 회사가 데려가기 부담스러운 사람’이라고 입 모아 말했다.

그러나 이사·부사장 등 임원의 경우 특정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인정받은 만큼 헤드헌터를 통한 일명 ‘C(Chief) 레벨’ 이직을 노려볼 수 있다.

헤드헌터들은 조선 회사의 20년 차 임원인 황이사의 경우 외국어 공부에 전력을 다해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을 준비할 것을 권했다. 국내 기업보단 여전히 채용 수요가 있는 외국계로 넘어가고자 하는 임원들은 외국어 역량을 키우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조언이었다. 또한 납품 업체 등 협력사와의 네트워킹을 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금 회사보다 규모가 작은 협력사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지인 추천 등을 통한 이직도 생각하라는 것이다.


문선경 뉴욕대 호텔경영학
문선경
뉴욕대 호텔경영학

키워드 5│외국계 기업 잡으려면 ‘프리토킹’ 필수

김동원 “임원급은 국내 기업보다 외국계 기업에서 상대적으로 이직 수요가 활발하다. 이런 이직 기회를 잡으려면 영어 등 외국어 실력을 배양해야 한다. 최근 학벌 등 스펙이 매우 뛰어난 한 제조업 대기업 임원이 외국계 회사 이직 면접에서 떨어져 의아했던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영어 실력이 부족해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힌 경우였다. 반면 한 조선 업계 영업 직무 임원은 영어 실력을 살려 유럽계 회사의 세일스 디렉터로 성공적으로 이직했다.”

문선경 “‘영어 못하는 임원’은 기업 입장에서 비용이다. 이직하는 임원을 위해 따로 통역을 붙여주는 것은 큰 부담이다. 특히 비대면 업무가 일상화한 상황에서 외국인과 화상회의를 할 일이 많은데, 영어로 의사소통이 어려우면 기업 입장에서 합격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개발자·기자 등 영어 실력이 좋지 않은 직군으로 갈수록 영어를 잘하면 이직 메리트가 크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영어 실력은 특정 어학 시험 점수가 아니라, 내 업무를 무리 없이 영어로 진행할 수 있는지다.”


키워드 6│옮기고 싶은 업종 관련 경력이 없다면 온라인을 활용하라

문선경 “시니어급의 경우 갑자기 새로운 업종의 일을 하는 기회를 잡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이러한 경우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전문성과 관심을 알리는 방법이 있다. 예컨대 패션 업계 임원이었던 분은 식품 업계로 이직을 희망했으나 관련 실무 경험이 전무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기획 직무에서의 전문성을 살려 브런치나 퍼블리 등 글을 공유하는 플랫폼에 식품 업계 관련 보고서를 꾸준히 업로드했고, 이러한 경험을 이력서에 기재해 이직에 성공했다.”

권용주 “최근 시니어급의 채용이 늘고 있는 스타트업의 경우, 온라인 활동을 지원자의 전문성과 디지털 역량을 일환으로 평가하고 좋은 점수를 주기도 한다. 실제 한 고객은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업무 관련 글을 꾸준히 올렸고, 스타트업에서 여기에 큰 가산점을 준 사례도 있었다.”


키워드 7│오늘의 고객사, 협력업체가 미래의 동료

문선경 “은퇴 후 고객사, 협력업체 등 함께 일했던 회사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일자리를 얻는 시니어급도 많다. 식품관련 대기업에서 일하던 임원급이 함께 오랜 기간 관계를 맺었던 식품 관련 중견회사로 이직한 경우가 있다. 평소 협력사 직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좋은 인상을 남긴 덕택이다. 내가 지금 몸 담은 업계 사람들은 다 내 미래 회사 사람들이라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좋겠다.”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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