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 스탠딩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박사, 전 국제노동기구 프로그램 디렉터
가이 스탠딩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박사, 전 국제노동기구 프로그램 디렉터

“기술이 발전하면 인류를 위한 일자리가 사라질 거란 주장은 바보 같다. 일자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다. 문제는 그 일자리가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되게 불안정할 거란 사실이며 이는 개인이 아닌 정부가 나설 문제다.”

10월 5일 ‘이코노미조선’과 화상 인터뷰에서 가이 스탠딩 런던대학 SOAS 칼리지 경제학과 연구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스탠딩 교수는 세계적인 노동경제학 권위자로 전 세계 고용 시장의 변화를 수년간 연구해왔다. 최근 경제학에서 화두로 떠오른 용어 ‘프레카리아트(precariat·불안정하다는 뜻의 ‘프리캐리어스(precarious)’와 노동자 계급을 뜻하는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를 합성한 용어)’를 학계에 처음 내놓은 인물이기도 하다.

스탠딩 교수는 일자리 문제와 관련해 4차 산업혁명 시대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물결 속에서 커리어를 위한 개인의 자기 계발과 의지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일자리의 ‘양’보다는 ‘질’에 집중하며 프레카리아트 양산을 막는 경제·복지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프레카리아트’ 개념이 더 주목받고 있다. 왜 그런가.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요가 늘어나면서 거대 테크(기술) 기업의 주가가 일제히 급격하게 반등했었다. 이들은 빠른 속도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들이 양산하고 있는 일자리 중 상당수는 비정규직에게 외주, 하청, 파견의 개념으로 값싸게 떠넘겨지는 비숙련 일자리다.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 중 안정적인 급여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자리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이러한 고숙련, 고임금 일자리와 나머지 프레카리아트 사이의 격차는 계속 커지고 있다. ”

고부가가치 산업이 크게 성장하며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고 있으나, 그 많은 일자리 중 상당수가 단순 반복 작업이 많은 저숙련, 저임금 일자리다. 예컨대 최근 기업뿐 아니라 정부까지 공공 일자리로 내놓고 있는 일은 데이터 라벨링이다. 그러나 이는 인공지능(AI)이 영상과 이미지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학습용 데이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사람 얼굴을 보고 ‘오른쪽 눈’ ‘코’ ‘입’이라고 이름표(라벨)를 붙이는 단순 반복 작업이라, 누구나 큰 커리어 개발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비판이 많다.

일자리를 가진 사람은 많지만, 그 일자리의 질이 좋지 않다는 말인가.
“그렇다. 있으나 마나 한 위태로운 일자리다. 그렇기 때문에 ‘실업’의 정의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에서 나오고 있다. 단순히 일자리가 없는 것을 실업 상태로 정의하면 놓치게 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고용이 보장되는 일자리가 없는 상태를 ‘실업’이라고 더 구체화해야 하는 것이다.”

불안정한 일자리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정부가 나서서 경제·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프레카리아트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보호해주고, 부족한 급여를 보전해주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거대 테크 기업이 소수의 사람만을 고용하고 나머지를 외주로 돌리는 현 상황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기본소득 정책 역시 살펴보도록 해야 한다. 단순히 일자리가 있다고 해서 충분한 급여를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은 계속 줄어들 것이며,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계속 커질 것이다.”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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