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 서강대 경제학 학·석사,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 박사, 전 미국 조지아공과대 경제학부 교수, 전 한국무역협회 수석 이코노미스트,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부회장 / 사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정철
서강대 경제학 학·석사,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 박사, 전 미국 조지아공과대 경제학부 교수, 전 한국무역협회 수석 이코노미스트, 한국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KOPEC) 부회장 / 사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모리스 옵스펠트 UC 버클리 교수는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미국 대통령이 돼야 한국 경제에 파란불이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국내 전문가도 같은 생각일까.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에게 만남을 청했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딴 정 연구위원은 조지아공과대 경제학부 교수, 한국무역협회 수석 이코노미스트 등을 거친 경제 전문가다.

10월 21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정 연구위원은 무너진 글로벌 다자 협력 시스템을 재건하겠다는 바이든 공약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 경제에 득이 될 것이라는 시각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거래에 능한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의 궁합이 오히려 더 잘 맞을 수 있다는 게 정 연구위원의 판단이다. 우리 사회가 4년간 트럼프식 정치를 학습하며 익숙해졌다는 점도 그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배경이다.


미국에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중국에 대한 견제는 이어 갈 것이라고 한다. 한국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전략적 모호성,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등의 표현을 종종 듣는다. 다 말도 안 된다. 특히 ‘안미경중’은 요즘 같은 세상에선 쓸 수 없는 용어다. 생각해 보라. 지난 5월 미국이 수입 변압기에 대한 국가 안보 위협 조사를 시작하면서 내세운 근거가 무역확장법 232조(미국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수입 제한 또는 고율 관세 부과)다. 또 미·중 분쟁의 한 축인 지식재산권 침해, 화웨이 제재 등도 통상 이슈인 동시에 안보 이슈다. 경제와 안보는 그냥 한 몸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미국 아니면 중국’으로 양자택일하라니. 다른 나라도 이러는지 잘 모르겠는데, 한국은 유독 선택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심하다.”

미국이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니까 그런 것 같다.
“100개 이상 국가의 제1 교역 상대국이 중국이다. 중국을 압박하는 미국조차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건 불가능하다. 경제적으로 얽힌 게 너무 많지 않나. 한국도 마찬가지다. 분야나 사안별로 협력할 부문, 거리 둘 부문 등을 구분한 뒤 그에 맞는 전략을 짜고 행동하면 된다. 양쪽 모두 한국 경제에 중요한 국가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맞다. 그래서 한국처럼 덩치가 작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도사리는 국가에는 다자 협력 체제가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간 우리는 다자주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한국도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나라와 갈등을 빚을 수 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사태처럼 말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뒤 글로벌 다자 협력 체제가 무너졌다. 현재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에 도전 중인데, 좋은 결과를 내면 좋겠다. 다자 협력 시스템이 복구되면 미·중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질문의 해법을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다른 나라와 손잡을 수 있으니까.”

이 관점에서는 다자 협력 체제 복원을 들고나온 바이든이 더 반갑겠다.
“그렇긴 하나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이 한국에 더 유리하다고 보진 않는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과 비교해 바이든과 민주당이 더 강압적인 태도로 한국을 대할 수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트럼프 대통령은 타고난 사업가다. 어디로 튈지 모르긴 해도 내줄 건 내주고 취할 건 취하는 거래에 능하다. 이 점을 잘 이용하면 의외로 얻을 수 있는 게 많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떠올려 보라. 트럼프 대통령이 으름장을 놓을 때만 해도 미국이 모든 걸 빼앗아 갈 것 같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한국이 엄청나게 손해 본 협상은 아니었다. 트럼프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 생각보다 쉬운 상대다. 물론 트럼프의 예상치 못한 발상과 발언·실행은 글로벌 무역 질서를 망가뜨렸다. 그는 국제 통상 룰을 어기고, 사문화된 관세법을 끄집어내 다른 나라를 겁박했다. 그런데 이런 트럼프도 4년 동안 만나니까 이제 좀 적응이 됐다.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과 언론 플레이 패턴도 서서히 알 것 같다. 트럼프가 마음에 든다는 게 아니라, 예측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대응책 수립이 한결 용이해졌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문재인(왼쪽)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9월 24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롯데 뉴욕팰리스 호텔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한 후 인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왼쪽)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9월 24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롯데 뉴욕팰리스 호텔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한 후 인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그렇다면 바이든은.
“깡패처럼 굴다가 상인으로 돌변하는 트럼프보다는 훨씬 점잖겠지만, 원칙을 강조하면서 더 까다로운 걸 들이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바이든은 환경과 노동을 중시한다. 지속 가능한 미래 구현에 꼭 필요한 가치이긴 하나 경제 활동의 효율성 측면에서는 한국 정부와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바이든의 탄소조정세 도입 공약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통상 갈등으로 확대할 소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오지 않나. 그리고 ‘동맹 중시’가 겉으로 볼 땐 굉장히 좋은 표현이지만 다른 나라가 한국을 위해 희생하는 개념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한국이 동맹 안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 건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 미국은 자국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내가 꼭 ‘트럼프주의자’ 같은데, 그렇지는 않다. 단지 바이든 당선이 한국에 이득이라는 막연한 기대 여론에는 공감하기 힘들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대선은 누가 이길 것으로 관측하나.
“여론 조사 결과는 바이든이지만, 속단할 수 없다. 지난 대선 때를 생각해 보라. 대부분 힐러리 클린턴이 이긴다고 했다. 그런데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였다. 대의원 확보가 관건인 미국 대선 방식을 고려할 때 전반적인 지지율은 별 의미가 없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급증한 우편투표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미 대선을 지켜보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포인트가 있다면.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도 중요한 이슈이지만, 두 후보 모두 중국에 대한 압박을 지속할 방침이라는 점에 주목해 보길 권한다. 어떤 국가적 다급함이 숨어 있길래 양측 공약의 큰 줄기가 일치하는지 말이다. 지금 세계 경제는 첨단 기술 기반의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이했다. 선두에는 미국이 서 있다. 그 뒤를 중국이 맹렬한 속도로 쫓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을 확실히 밟아야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세계 최강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치열한 기술 패권 경쟁의 다른 표현이다. 한국도 이 레이스에서 밀리지 말아야 한다. 생존 문제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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