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조선일보 DB
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조선일보 DB

10월 28일 오전 검은색 리무진에 몸을 누인 한 남자의 ‘마지막 출근길’은 리움미술관, 승지원(承志園) 그리고 반도체 사업장이었다. 각각 서울 이태원동과 한남동 그리고 경기도 화성으로 생전 그 남자의 숨결이 깊게 배어 있는 장소였다.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끈 영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이날 수원 가족 선영에 영원히 잠들면서 재계에 본격적인 3세 경영 시대를 예고했다.

달이 차면 지고 반드시 새 달이 뜬다. 이 회장이 10월 25일 향년 78세로 타계하며 장남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이 조만간 회장직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 부회장은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기업집단 동일인(총수)에 지정되면서 공식적인 삼성그룹 총수가 됐지만, 아직 회장 타이틀은 달지 않았다. 그가 회장이 되면 할아버지 이병철 창업주와 아버지 고(故) 이 회장에 이어 삼성그룹의 3대 회장이 된다.

앞서 2018년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별세하면서 같은 해 6월 그의 양자인 구광모(42) 상무가 젊은 나이에 LG그룹 회장직에 오르고, 올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명예회장직으로 물러나면서 그의 아들 정의선(50)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1998년 아버지 최종현 전 회장이 별세하자 뒤를 이은 최태원(60) SK그룹 회장까지 포함하면 4대 그룹 모두 본격적으로 3세 또는 4세 경영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이들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한국의 초고령화, 글로벌 보호무역 기조 강화,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 등 날로 척박해지는 국내외 경영 환경을 헤치고 각각의 기업을 키우는 것은 물론, 한국 경제를 재건할 막중한 임무를 지니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센 물결에도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

대략 4050세대에 속하는 이들 네 사람의 공통점은 수십 년간 경영수업을 착실히 받았다는 것이다. 또한,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기업 문화가 아닌 유연하고 개방적이며 창의적인 사고를 지향한다. 올해 차세대 친환경 이동수단 및 이에 필요한 2차 전지(배터리) 공동 개발을 위해 손을 맞잡은 이들의 모습이 대대적으로 공개된 건 선대보다 유연한 이들의 생각을 반영한다.

이 부회장은 1991년 12월 삼성전자에 공채 32기로 입사했다. 당시 나이는 23세. 바로 유학길에 올라 회사 생활을 하지는 않았다. 그가 경영에 참여한 건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가 되면서다. 2003년에는 상무, 2007년에는 최고고객책임자(CCO) 겸 전무가 됐다. 2009년에는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부사장, 2010년 사장으로 각각 승진했다. 2012년 말에는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현장에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20년간 받은 것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 조선일보 DB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 조선일보 DB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올해 10월 14일 회장직에 올랐다. 그룹 수석부회장직에 오른 지 2년 1개월 만이다. 그의 아버지 정몽구 전 회장은 2000년부터 회장을 맡다가 20년 만에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정 회장은 1999년 현대차 구매실장, 영업지원사업부장을 시작으로 다양한 보직을 역임했다.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 현대자동차그룹 기획총괄본부 사장, 현대모비스 사장도 역임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2018년 6월 회장이 돼 LG그룹의 4세 경영을 이끌고 있다. 그는 2006년 LG전자 재경 부문 대리로 입사했다. 이듬해 과장으로 승진한 후 미 스탠퍼드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입학하며 유학을 떠났지만, 졸업은 하지 않았다. 잠시 실리콘밸리로 옮겨 스타트업에서 경험을 쌓았다. 이어 LG전자에서 여러 사업 부문을 경험하고 생산 현장도 거쳤다. 이후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후계자로 경영수업을 받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부친 최종현 전 회장이 1998년 세상을 떠나자 38세의 나이에 SK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1992년 입사해 경영기획실 사업개발팀장, SK상사와 SK그룹 상무 등을 거쳤다.

과거 한국이 개발도상국이었던 시절, 즉 개발 경제 시대에는 사실상 경제 성장의 주역은 정부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보좌한 오원철 경제수석이 대표적인 사례다. 오 수석은 전국에 국가산업단지를 개발하고, 기업을 유치함과 동시에 성장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이 같은 정부 정책에 호응한 건 바로 1세 경영인 즉, 창업주들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대거 등장한 창업 2세들은 빠른 의사 결정과 과감한 투자로 기업 가치를 크게 높였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초일류’ 기업이 탄생한 것도 2세 경영인들의 성과였다.


최태원(왼쪽 첫 번째) SK그룹 회장. 사진 조선일보 DB
최태원(왼쪽 첫 번째) SK그룹 회장. 사진 조선일보 DB
구광모(오른쪽) LG그룹 회장. 사진 조선일보 DB
구광모(오른쪽) LG그룹 회장. 사진 조선일보 DB

한국 경제 성장 주역, 정부에서 기업으로

3세 경영에 접어드는 현재 상황은 과거와는 다르다. 국가 산업 정책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한 전직 고위 관계자는 “정부 주도로 신사업을 발굴하는 건 20세기 때의 얘기”라며 “이제는 기업이 주인공이다”라고 했다. 고 이건희 회장이 단기적인 경영은 임원들에게 위임하고, 5~10년 뒤 미래 먹거리를 고민해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현재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리고 있는 중요한 신사업을 발굴하고 개척한 사실을 후대는 상기해야 한다. 또 한국식 재벌 성장에 따른 복잡한 지배구조 등을 해소하는 체질 개선도 3세들의 임무다.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 발굴은 가장 중요한 과제다. 삼성전자는 바이오, 인공지능(AI), 5·6세대 이동통신(5G·6G), 비메모리 반도체와 전장을 키울 전망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친환경차·모빌리티·수소경제를, SK그룹은 반도체·배터리·바이오를 정조준하고 있다. LG그룹은 배터리·전장·로봇 등을 개척할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미조선’은 커버 스토리에서 4대 그룹을 중심으로 한 주요 대기업의 3세 경영 현안과 그들이 주목하는 분야에 대해 살펴봤다. 과도한 규제와 높은 상속세 등 가업 승계를 어렵게 하는 정책 리스크에도 주목했다. 해외 모범 지배구조 사례와 국내 전문 경영인들의 실패 사례도 돌아봤다. 경영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3세 경영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조언도 들었다.

마침 고 이건희 회장의 영결식에선 ‘승어부(勝於父)’라는 말이 나왔다. 고 이 회장의 고교 동창인 김필규 전 KPK 회장이 고인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다가 나온 말로, 아버지를 능가한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는 “평생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고 이 회장보다 승어부를 한 인물을 본 적이 없다”면서 “부친의 어깨너머로 사업을 배운 고인이 부친을 능가하는 업적을 이뤘듯, 이재용 부회장도 삼성을 더욱 탄탄하게 키워나가며 새로운 역사를 쓸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이는 앞으로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갈 모든 3세 경영인들에게 전한 덕담이자 생전 영웅의 가장 큰 바람이 아니었을까.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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