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블룸버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 블룸버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체적인 미래 사업 방향은 아직은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다. 삼성그룹은 10월 25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로 10조원이 넘는 상속세 부담이 당면 과제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 등에 대한 재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같은 지배구조 관련 문제가 잘 해결되면 이 부회장이 키를 잡고 비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전장, 바이오, 인공지능(AI), 6세대 이동통신(6G) 등 신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여나갈 것으로 재계는 전망한다.

우선 이 회장의 별세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이 부회장이 키를 잡게 됐지만, 지배구조 개편과 승계 마무리까지는 과제가 적지 않다.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상 삼성그룹 총수는 이미 이 부회장이다. 2018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삼성그룹의 동일인(총수)을 이 부회장으로 변경했다. 공정위는 이 회장 와병 후 이 부회장의 결정에 따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미래전략실 해체 같은 중대한 조직 변화가 있었고, 2018년 2월 고등법원 판결에서 이 부회장을 삼성그룹의 총수라고 규정했으며, 삼성그룹 지배구조상 최상위에 있는 삼성물산 지분을 이 부회장이 가장 많이(17.3%)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공정위 판단처럼 삼성그룹 지배구조 최상위에 있는 회사는 삼성물산이다. 현재 삼성물산은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이 구조는 더욱더 공고해졌다. 삼성물산 지분은 이 부회장에 이어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5.55%,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5.55%, 고 이 회장이 2.88% 등으로 가족 주식까지 합치면 이 부회장 일가 소유의 삼성물산 지분은 33.4%다.

문제는 지배구조 고리마다 큰 변수가 있다는 점이다. 우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법 위반 여부를 가릴 재판이 현재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삼성물산 주식은 없었고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던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도록 합병 비율이 산정됐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있을 법원의 결정에 따라 합병에 따른 지배구조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삼성생명에서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고리에도 변수가 있다. 일명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 때문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험사의 자산 비율을 산정할 때 주식 취득 당시 가격이 아닌 현재 시장 가격으로 바꾸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를 통과하면 삼성생명은 총자산 3% 이내로만 대주주나 계열사의 주식을 보유하도록 하는 ‘3%룰’에 걸린다.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8.5% 가운데 상당 부분을 매각해야만 한다. 이럴 경우 이 부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현 지배구조가 끊어질 수도 있다. 이 구도를 이 부회장→삼성물산→삼성전자로 바꾸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구조 개편이 불가피하다. 이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3.4%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삼성전자에 매각하고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2016년 삼성이 추진했다가 접었던 지주회사 전환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가장 큰 관건인 재원은 물론, 법령 검토, 관련 조직 재편, 다른 주주들의 반발 가능성 등 따져야 할 변수들이 산적해 있다.

이에 더해 천문학적인 상속세 문제도 있다. 고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삼성SDS,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의 현재 주식 가치는 18조2000억원으로,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과 자녀들이 내야 하는 상속세가 1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 부회장이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삼성 계열사 중 지분을 처분해야 할 수 있다. 지분 매각 대상으로는 삼성생명이 거론된다. 삼성생명 지분을 고 이 회장이 20.76%를 보유했고, 이를 포함해 삼성 특수 관계인 지분이 47.02%에 달하기 때문에 일부 매각은 이 부회장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또한, 당장은 이 부회장 중심의 지배구조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삼 남매가 계열 분리를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가 호텔·레저 부문을, 삼성물산 패션 부문 사장을 역임했던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패션 부문을 맡아 따로 독립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새로운 미래 비전 제시 숙제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 여부도 관심사다. 최근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공식 회장으로 취임하며 LG그룹과 SK그룹을 포함한 4대 그룹 중 이 부회장만 회장 타이틀을 달지 못해 격을 맞추는 차원에서라도 머지않아 회장에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중론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임기 만료로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상태라, 회장 승진과 함께 등기이사 복귀를 추진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의 더욱 중요한 숙제는 미래 먹거리 발굴이다. 삼성전자는 2018년 AI, 5세대 이동 통신(5G), 바이오, 비메모리 반도체 중심 전장부품을 4대 미래 성장 사업으로 선정하고 25조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반도체, 모바일, 배터리, 사물인터넷(IoT), AI 등 첨단 기술을 보유한 삼성은 AI 관련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고 5G 관련 이동통신사와 교류하며 네트워킹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전장 기업 하만을 인수했던 삼성이 향후 대규모 ‘빅딜’을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올해 말 인사를 ‘뉴 삼성’으로의 변화 가속을 알리는 상징적인 내용으로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이 부회장 체제에서 삼성이 다시 인수·합병(M&A) ‘빅딜’에 뛰어들 것으로 재계는 예상한다. 삼성은 2014년 말과 2015년 석유·방산, 화학 사업을 각각 한화그룹과 롯데그룹에 매각했고 2016년에는 미국 하만을 인수했다. 이 부회장이 수사·재판을 받게 되면서부터는 굵직한 M&A가 끊긴 상태지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차원에서 AI와 6세대 이동통신(6G) 등 미래 신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M&A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사법 리스크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기 때문에 이 부회장이 우선 자신의 리더십과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중장기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것도 숙제”라고 했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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