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진 조선일보 DB
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진 조선일보 DB

취임 3년 차인 구광모 회장이 이끄는 LG그룹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 경제가 휘청인 2020년을 오히려 LG의 해로 만들고 있다. 주요 계열사가 녹록지 않은 사업 환경 속에서도 우수한 실적을 잇달아 발표한 덕분이다. 심지어 그룹의 ‘아픈 손가락’으로 불리는 LG디스플레이마저 올해 3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업계를 놀라게 했다.

고객 가치를 최우선에 둔 40대 젊은 총수의 실용주의와 과감한 투자, 인재 영입이 구체적인 숫자로 화답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 회장은 지금의 상승세를 지속하는 동시에 그룹을 먹여 살릴 강력한 미래 먹거리 발굴에 매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LG그룹 계열사 가운데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은 LG화학이다. LG화학은 올해 3분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8% 늘어난 7조5073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58.7% 증가한 9021억원으로 집계됐다. 모두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다. 고부가가치합성수지(ABS)·폴리염화비닐(PVC) 등의 수요 호조를 앞세운 석유화학 부문이 분기 사상 최대 영업이익률(20.1%)을 달성하고, 흑자 사업으로 거듭난 전기차 배터리 부문의 성장세가 이어진 덕을 봤다.

그룹의 대표 계열사인 LG전자도 활짝 웃었다. LG전자의 3분기 실적은 매출액 16조9197억원, 영업이익 9590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7.8%, 22.7% 늘어난 수치이자 3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다. 구 회장의 지휘하에 정수기·공기청정기 등의 건강 가전 시장을 꾸준히 개척하고, 세탁기·냉장고 등의 고급화로 수익성을 높여온 것이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리면서 폭발적인 가전 수요 증가를 낳았다. 이 추세라면 LG전자는 올해 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 3조원 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된다.

2019년 1분기부터 적자 행진을 이어 오던 LG디스플레이도 7분기 만에 마이너스 고리를 끊었다. 애플의 ‘아이폰12’ 출시로 늘어난 플라스틱 OLED(POLED) 공급과 글로벌 TV 판매 확대 덕에 17%나 오른 LCD TV 패널 가격 등이 LG디스플레이의 3분기 실적 선방에 기여했다.


“미래만 보자” 선택과 집중

LG그룹 계열사의 실적 개선의 중심에는 4세 오너 구 회장이 있다. 구 회장은 2018년 6월 그룹 수장 자리에 오른 뒤 “LG가 기존 관성을 깨고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업과 경영 전반에서 과감한 변화를 감내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주의 경영과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선택과 집중, 적극적인 인재 영입과 오픈 이노베이션 활성화 등을 강조했다.

구광모식 선택과 집중은 LG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흐름을 보면 알 수 있다. 미래 유망 시장으로 점찍은 자동차 전장 사업 강화를 위해 LG전자는 오스트리아의 차량용 조명 회사 ZKW를 인수했고, LG화학은 미국 자동차 접착제 전문 기업 유니실을 사들였다. LG전자의 산업용 로봇 전문 업체 로보스타 경영권 인수는 로봇 사업 경쟁력 확보의 일환이었다. LG유플러스는 5세대 이동통신(5G) 시대의 방송·통신 융복합 역량 강화를 위해 CJ헬로(현 LG헬로비전)를 식구로 맞았다.

구 회장은 비핵심 사업에 대해서는 과감하고 신속한 정리를 주문했다. 연료전지 사업 청산과 수처리 사업 매각(LG전자), 전자 결제 사업 매각(LG유플러스)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구 회장이 LG CNS 지분 35%를 맥쿼리PE에 넘긴 것도 인공지능(AI)·블록체인·클라우드 등 신기술 분야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동시에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선제적으로 해결하려는 차원이었다.

파격적인 인사도 LG를 고여 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구 회장은 LG화학 최고경영자(CEO)로 창립 이래 첫 외부 인사인 신학철 3M 부회장을 영입한 데 이어 ㈜LG에는 사업 포트폴리오 전략을 담당하는 경영전략팀 사장으로 홍범식 베인&컴퍼니 대표를 데려왔다. 외부의 시각에서 LG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살피고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달라는 취지였다. 34세 임원으로 화제를 모은 임미진 LG생활건강 상무 등 젊은 인재를 대거 발탁해 기회를 부여한 것도 기존 관성을 깨려는 구 회장의 의도다. 올해 실적은 혁신 인사가 성공적이었다는 증거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성공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 노력도 젊은 오너 구 회장이 신경 쓰는 부분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소재 벤처캐피털(VC) ‘LG 테크놀로지 벤처스’가 20여 개 스타트업에 3400만달러(약 386억원)를 투자해 신기술을 확보하고, 유망 스타트업 발굴을 위해 ‘스타트업 테크페어’를 매년 개최하는 것도 혁신의 열쇠를 외부에서 찾으려는 시도다.

LG그룹이 장자(長子) 승계 원칙으로 경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족 간 다툼을 없애고 일찍이 지배구조 안정화를 추구했다는 점도 경영에만 집중해야 하는 구 회장에게는 좋은 환경이다. LG는 대기업 중 국내 최초로 그룹 지배구조를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구 회장은 2018년 5월 타계한 부친 고(故) 구본무 회장으로부터 주식을 상속받은 후 7000억원 이상의 상속세를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납부하고 있다. 연부연납은 신고 시 6분의 1을 낸 뒤 나머지는 5년간 분할 납부하는 제도다.


전장 사업 본궤도 오를까

LG그룹이 순항 중이라고 해서 구 회장에게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LG디스플레이의 경우 3분기에 흑자를 내긴 했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지 미지수다. 코로나19 사태로 LCD 패널 가격이 급등한 덕을 봤지만, 중국 업체들의 공급 과잉이 지속되는 한 LCD 업계는 또다시 치킨게임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애플 아이폰과 삼성 갤럭시 브랜드에 밀려 존재감을 상실한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도 구 회장 입장에서는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다.

미래 성장 동력으로 육성 중인 자동차 전장 사업이 여전히 적자에 허덕이며 미지근한 성장 속도를 보인다는 점도 풀어야 할 과제다. KB증권은 올해 2분기 2025억원에 이르던 LG전자의 전장 부품 적자가 4분기 184억원으로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전략 고객인 GM이 전기차 출시를 확대하고, 4분기 이후 저가 수주 프로젝트 관련 비용이 없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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