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을 이끄는 3세 경영인들이 선보이는 전략의 핵심은 ‘진화’다. 그동안 안정적인 실적을 냈던 사업을 유지하거나 일부 정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더는 회사의 성장을 담보하지 못하도록 글로벌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서다. 가장 잘하는 사업을 찾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진화시켜야 글로벌 업체들과 경쟁할 수 있다. 요즘 기업의 성공 비결을 얘기할 때 꼭 언급되는 ‘혁신’과도 연결되는 키워드다.

단순히 제품을 만들던 제조업은 통하지 않는다. 생산·판매·서비스를 모두 포괄하는 플랫폼 중심으로 산업 생태계가 바뀌었다. 웬만해선 신규 진입이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전통 제조업 시장에도 전기차를 앞세운 미국 테슬라 같은 혁신적인 기업이 나타나 그동안의 상식을 뒤바꾸고 있다. ‘게임 체인저’가 아니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의 3세 경영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실적을 내야 한다. 한국 경제의 최전선에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이들이 어떤 장·단기적인 비전을 갖고 회사를 이끌지 관심이 쏠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뉴 삼성’은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을 키워왔던 방식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정보통신(IT)이라는 확고한 영역을 구축하긴 했지만, 그동안의 삼성은 화학·방산·패션 등의 사업까지 손을 대며 사세를 키워오는 데 주력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2014년 이건희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삼성그룹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부회장의 경영 철학인 ‘실용·실리’가 녹아들면서 사업구조 개편과 인수·합병(M&A)이 급속하게 진행됐다. 잘하는 건 더 잘하고, 못하는 건 과감히 접겠다는 의지가 삼성그룹에 반영되고 있다.

앞으로도 삼성그룹의 ‘실용·실리’는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2018년에 발표한 4대 성장 동력인 인공지능(AI), 5세대 이동통신(5G), 바이오, 전장 부품을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모두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 수준을 확보한 IT를 기반으로 진화시켜나갈 수 있는 사업이다.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와 국정 농단 사건 재판 등의 리스크(위험 요인)가 있지만, 이 부회장은 M&A와 사업 재편을 통해 회사의 성장 보폭을 넓힐 가능성이 크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쉴 새 없이 달린 2세…3세는 ‘사람과 삶’에 초점

현대차그룹은 이제 자동차라는 카테고리로만 단순히 묶을 수 없는 회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명예회장의 비전과 추진력 아래 ‘쇳물에서부터 자동차까지’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 같은 알짜 회사를 품으며 그룹의 외형을 키워왔다. 하지만 정의선 회장은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현대차그룹의 사업 영역과 정체성을 다시 한번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대차그룹의 바탕은 자동차지만, 정 회장은 모든 움직이는 수단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 회장은 10월 14일 취임사에서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과 평화로운 삶’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도심항공모빌리티(UAM)와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 모빌리티 환승 거점(Hub) 등의 개념을 통해 단순히 도로 위를 다니는 자동차가 아니라 하늘과 지상에서 모두 이동하는 장치와 이들을 연결하는 거점을 미래 핵심 사업으로 보고 있다. 이른바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회사로의 변신을 가속하는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SK그룹 역시 최태원 회장의 최근 발언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짐작할 수 있다. 최 회장은 최근 ‘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ESG)’를 연일 강조하고 있다. ESG가 기업 경영의 새로운 규칙이며, 이를 측정·표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단순히 경제적 가치만 따지는 게 아니라 사회와 더불어 성장할 수 있도록 기업이 경영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SK텔레콤이 통신업을 벗어나 플랫폼 미디어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하는 것도 이런 최 회장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10월 23일 제주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도 “매력적인 목표와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담긴 파이낸셜 스토리가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기업 가치가 높아지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매출액이나 영업이익 등 전통적인 재무 수치보다는 성장 전략과 비전, CEO의 경영 철학 같은 얘깃거리가 소비자와 투자자의 핵심 가치를 관통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근본적 변화가 기업을 생존시킨다는 최 회장의 경영 철학인 ‘딥체인지(근본적 변화)’와도 일맥상통한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구광모 회장의 LG그룹은 고 구본무 회장이 마련한 단단한 토양 아래 전장과 배터리 사업이라는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LG전자는 2018년 오스트리아 전장 조명 업체 ZKW를 11억유로(약 1조4600억원)에 인수하며 전장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LG화학은 최근 배터리 사업을 분사하겠다고 밝히며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돈 안 되는 사업은 과감히 접고 있다. 구 회장 취임 이후 LG전자는 연료전지와 수처리 사업을 청산했다. LG화학은 액정표시장치(LCD) 편광판 사업을 중국 기업에 1조3000억원에 매각했고, LG유플러스는 전자결제(PG) 사업을 3560억원에 토스 운영사인 비바리퍼블리카에 팔았다. 구 회장은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과감하게 내치며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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