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사옥.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사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5월 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사옥 다목적홀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과거 경영권 승계 의혹, 노조 문제 등에 관해 사과했다. 이날 가장 관심을 끈 발언은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였다. 한국 대표 기업의 총수가 던진 이 말은 재계 안팎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이는 앞으로 4세 경영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다른 기업들은 4·5세 경영이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우 어렵다. 막대한 상속세 및 정부의 규제 강화로 재벌 등 가족 기업의 자식 승계는 점차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일부에선 상속세를 ‘사망세(death tax)’라고 부르며 비판한다. 당장 10월 25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에 따른 막대한 상속세가 과연 온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불붙고 있다. 이 부회장 등 이건희 회장의 재산을 물려받을 상속인들이 내야 할 상속세가 천문학적인 규모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현재 50% 수준의 상속세율이 부당하다는 주장과 정당하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10월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 회장이 보유한 주식 재산은 10월 23일 종가 기준 18조2200억원에 달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증여액이 30억원을 넘으면 최고세율(50%)을 적용받는다. 최대 주주 지분에 적용하는 할증세율(20%)까지 더하면 세율은 더 오른다. 이에 따라 약 10조6000억원의 상속세를 내야 할 전망이다.

상속세 인하를 지지하는 이들은 한국의 상속세 법정 최고 세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이는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방해한다고 지적한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상속세 최고 세율을 보면, 한국의 최고 세율(50%)은 미국(40%), 영국(40%), 프랑스(45%) 등 주요 국가를 웃돈다. 독일(30%), 이탈리아(4%)에 비하면 현저하게 높다. 아울러 영국이나 프랑스는 배우자가 상속받을 경우 비과세하지만, 한국은 상속인 구별 없이 무조건 최고 50% 세율을 적용한다. 원윤희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경영자총협회 주최 토론회에서 “기업 영속성과 국제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상속세를 폐지하고 소득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올해 상속세를 없애면 2034년까지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약 0.31% 증가할 것으로 추산됐다”라고 덧붙였다.

주요 연구기관에서도 과도한 상속세가 문제라는 지적이 줄을 잇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5월 ‘21대 국회 주요 입법·정책 현안’ 보고서에서 “21대 국회에서 명목 상속세율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지나치게 높은 상속세율이 탈세 및 편법 증여를 조장하고 가업 승계를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도 지난해 7월 ‘원활한 기업 승계를 위한 상속세제 개편 방향’ 보고서에서 “과도한 상속세는 기업을 사라지게 하고 국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했다. 중소기업연구원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상속세는 미실현 이득에 대한 과세”라며 부당함을 지적했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상속세율 조정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세정 당국인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상속세율 조정 대신 가업상속공제제도 등을 통해 현 제도를 보완해나가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가업상속공제제도란 중소·중견기업 대표가 주식 이전 등으로 경영권을 물려줄 때 200억~500억원의 상속 공제 혜택을 주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부의 재분배 차원에서 현재 수준의 과세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20대 국회 때 발의된 상속세율 관련 의원 입법만 봐도 해당 사안에 대한 시각이 얼마나 첨예하게 엇갈리는지 드러난다. 제윤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속·증여세 과세표준 50억원 초과 구간 신설 및 최고 세율을 60%로 인상하는 안을 발의했다. 상속세를 현재보다 더 많이 걷겠다는 게 골자다. 반면 이현재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상속·증여세 과표 구간별 세율을 5~25%로 인하하는 안을 발의했다.

아울러 기업 승계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도 4·5세 경영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추진 중인 공정거래법 시행령 및 기업집단 현황공시 개정안은 지배구조 개편에 필요한 ‘공동 손자회사’ 설립이 금지되며, 지주회사가 계열사로부터 받은 부동산 임대·컨설팅료 명세를 공시하도록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최근 정부가 입법 예고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철회해 달라는 의견을 정부에 제출했는데, 현행법은 단순 투자 목적으로 5% 이상 지분을 가진 주주가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반면, 시행령 개정안은 공적 연기금의 경영 참여를 완화하고 있다.

이 밖에도 법률을 위반한 기업인을 전 직장으로 복귀하지 못하도록 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시행령의 경우도 기업 승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규제로 꼽힌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의 최근 6년간 하위 법령 개정 가운데 규제 강화가 81건, 규제 완화는 32건으로 과도한 규제로 기업들은 신음하고 있다.


미완의 지배구조 재편도 문제

상속세 논란과 관련해 LG그룹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2018년 취임할 당시 시가 총액 150조원에 달하는 LG그룹을 상속받는 데 약 9000억원의 상속세만 내면 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세무 전문가들은 LG그룹이 2000년대 초 한국 재벌 기업 중 처음으로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한 덕이라고 분석한다. 기업 지배구조를 사전에 정리한 덕에 승계 부담을 덜 수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당시에는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현재의 삼성처럼 10조원대 상속세로 지배구조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지는 않았다.

2000년대 초 LG그룹은 우선 LG화학을 인적 분할해서 LGCI와 LG화학, LG생활건강으로 나누고 LG전자를 LGEI와 LG전자로 나눴다. 또 LGEI는 LG전자 지분을 취득해서 각각 지주회사로 자리 잡았다. 주식 교환에 의한 공개 매수라는 방법을 활용해 자회사에 대한 보유 지분율을 높이고, 이를 통해 경영권을 강화하는 효과도 얻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의 상속세 지급 방법에 대한 다양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10월 26일 보고서에서 “10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속세 마련 차원에서 삼성의 지배주주 지분 일부 처분 및 지분 보유 계열사에 대한 배당 정책 강화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삼성이 상속세 재원 마련 과정에서 삼성생명 지분을 처분할 경우 금융 지주회사 체제 전환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면서 “다만 삼성물산의 지주 비율을 낮춰야 하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이며, 비금융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 환경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다양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아이디어가 거론되지만, 지주회사 전환 등은 조기에 가시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아직 진행 중인 재판 문제도 있어 당장 대대적인 개편은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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