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포드가 2019년 12월 LA오토쇼에서 처음 공개한 ‘머스탱’의 전기차 모델 ‘머스탱 마하-E’. 사진 포드
미국 포드가 2019년 12월 LA오토쇼에서 처음 공개한 ‘머스탱’의 전기차 모델 ‘머스탱 마하-E’. 사진 포드

미국 포드가 2018년 스포츠카 ‘머스탱’의 전기차 모델 출시를 결정했을 때다. 디자인이나 전기차 기술력은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 차량의 엔진 소리가 모든 임직원을 고민에 빠지게 했다. 8기통 5000㏄가 넘는 고(高)배기량 엔진에 근육질 보디빌더를 생각나게 하는 차체, 머스탱은 이른바 ‘아메리칸 머슬카’를 대표하는 데다 1964년부터 이어진 역사를 가진 차량이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머스탱 마니아는 이 차가 그동안 지켜왔던 가치가 바뀌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머스탱은 곧 미국 자동차를 상징하는 차량이었다.

이 차의 소리를 담당하기 위해 뭉친 팀은 사운드 감성을 고민하는 데만 1년을 보냈다. 영화 ‘배트맨’에서의 배트카 엔진 소리와 ‘블레이드 러너’에서의 비행 차량 소리를 연구해 차량 내부에 덴마크 오디오 회사인 뱅앤올룹슨의 사운드바와 스피커 10개를 설치했다. 2019년 12월 열린 로스앤젤레스(LA) 오토쇼에서 머스탱의 전기차 모델인 ‘머스탱 마하-E’를 공개하기 2주 전에 엔진 소리를 들은 포드의 전기차 개발 담당 책임자인 대런 파머(Darren Palmer)는 “완전히 새롭고, 자연스럽게 들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글로벌 대표 기업들이 다음 먹거리로 자동차 전자장비(전장) 사업을 택한 건 우연이 아니다. 이동 수단으로서의 정체성을 넘어선 자동차가 앞으로 오감(五感)을 만족하는 수단이 될 것이며, 이는 전장을 통해 구현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자동차에 탑재됐던 전장보다 훨씬 진화한 제품들이 적용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중에서도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은 음향 장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전기차에서 인간의 감성을 충족시키는 데 가장 효율적인 장치가 음향이다.

과거에는 차량에서 소음·진동(NVH)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소리를 인위적으로 집어넣는 시대다. 파머 포드 책임자도 “전기차의 침묵은 새로운 캔버스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자동차의 소리를 담당하는 연구원들이 화가가 돼 빈 캔버스에 회사만의 특색을 갖춘 사운드를 채워 넣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김재평 대림대 방송음향영상학부 교수는 “모든 제품은 차별화해야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데, 소리를 통해 제품의 정체성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머스탱 마하-E’에는 강력한 엔진 소리를 재생하기 위해 뱅앤올룹슨 사운드바와 스피커 10개가 설치됐다. 사진 포드
‘머스탱 마하-E’에는 강력한 엔진 소리를 재생하기 위해 뱅앤올룹슨 사운드바와 스피커 10개가 설치됐다. 사진 포드

현대차, 엔진룸에 스피커 부착…테슬라도 인공소음 옵션 예고

전기차의 소리는 보행자의 안전과도 직결된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19년 7월부터 EU에서 개발·판매되는 모든 전기차에 소리 발생 장치인 ‘AVAS(Acoustic Vehicle Alert System)’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규제했다. 전기차 소음이 작아 보행자가 길을 지날 때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속 20㎞ 이하로 달리거나, 후진하는 경우 반드시 소음을 내야 한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도 올해 9월부터 전동화 차량이 시속 30㎞ 미만 주행 때 가상의 소리를 내도록 의무화한다고 밝혔다.

완성차 업체들도 이에 맞춰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하이브리드 차량이나 전기차의 엔진룸에 스피커를 부착해 전기모터 특유의 구동음을 증폭시키도록 구성하고 있다. ‘코나’ ‘아이오닉’ 등의 전기차가 지나갈 때 나는 ‘윙’ 소리의 고주파 음이다. 최근에는 전면 그릴(흡기구)을 진동판으로 활용해 사운드 전달률을 높인 새로운 방식의 기술을 공개하기도 했다.

미국 테슬라는 2019년 10월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소셜미디어 트위터를 통해 “테슬라 차량의 경적과 저속주행 때 필요한 인공 소음을 운전자가 직접 변경하고 설정할 수 있는 옵션을 조만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차량 문을 열 때 나는 소리, 시동을 켜고 끌 때의 소리, 내비게이션 조작할 때의 소리, 방향 지시등 소리,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엔진 소리 등은 모두 전기차에 맞게 설계되고 있다.

재규어의 전기차인 ‘아이 페이스’의 소리를 담당하는 세계적인 일렉트로닉 음악가 리처드 디바인은 “자동차의 경보음을 개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며 “차를 위한 ‘소리 언어’를 생각해내야 했다”고 말했다. 이 차량의 소리는 영화 ‘스타워즈’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 덕분에 우주선을 타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인위적인 소리가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받는 경우도 있다. ‘포천’에 따르면 엔진 소리를 본뜬 사운드 액추에이터(소리를 발생시키는 장치)를 탑재한 폴크스바겐 2016년 모델은 소비자가 ‘성가신’ 장치를 제거하는가 하면 이 방법을 동영상으로 공유하기까지 했다.


왼쪽부터 렉서스 차량에 탑재된 마크 레빈슨 오디오 시스템, 메르세데스-벤츠의 부메스터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 볼보 바워스앤윌킨스(B&W)의 컨티뉴엄 콘. 사진 각 사
왼쪽부터 렉서스 차량에 탑재된 마크 레빈슨 오디오 시스템, 메르세데스-벤츠의 부메스터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 볼보 바워스앤윌킨스(B&W)의 컨티뉴엄 콘. 사진 각 사

유명 공연장 부럽지 않은 車

차량에서 나오는 소리를 어떻게 아름답게 들리게 할 것인지도 완성차 업계의 꾸준한 관심거리다. 렉서스의 경우 차량에 탑재되는 오디오 시스템을 미국 오디오 회사 마크 레빈슨과 함께 4년에 걸쳐 개발했다. 모형 자동차 안에 앉아 2000여 시간 동안 실험한 결과를 토대로 했다. 렉서스가 자랑하는 시스템은 ‘퀀텀 로직 이멀전 테크놀로지’다. 원본 음악에서 보컬과 악기, 소리, 사운드 위치 정보를 정밀하게 분석해 분리·재구성 후 입체적인 음장을 만들어낸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부메스터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도 유명하다. 메르세데스-벤츠와 부메스터는 2009년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4년간의 협업을 통해 이 시스템을 개발했다. 차량 내부 조건에 맞춰 조정된 앰프와 스피커 시스템은 590W(마이바흐 S650)의 출력을 뿜어낸다.

볼보는 영국 바워스앤윌킨스(B&W)를 탑재했다. 특히 볼보는 기존 중음역을 담당했던 노란색 케블라(Kevlar) 콘을 컨티뉴엄 콘으로 대체했는데, 이를 위해 8년간 70회 이상의 연구·개발을 했다. 재즈클럽 모드의 경우 스웨덴 예테보리 네페르티티 재즈 클럽과 같은 소리를 내기 위해 전문 사운드 디자이너가 개발 단계부터 참여하기도 했다.

이진혁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