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오 연세대 전기전자공학 박사, 전 LG전자 Digital TV 연구소 오디오팀장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오현오
연세대 전기전자공학 박사, 전 LG전자 Digital TV 연구소 오디오팀장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소리는 음향 기기 시장에서처럼 기업 성패를 좌지우지하는 주인공인 동시에 광고 속 배경음악처럼 마케팅의 성공을 돕는 조력자이기도 하다. 오랜 역사의 대기업부터 이제 막 문을 연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회사가 팔색조 매력의 소리 비즈니스 영역에서 성공 기회를 찾는 이유일 것이다.

10월 23일 방문한 서울 역삼동의 ‘가우디오랩’은 소리에 인생을 건 음향 전문가 20여 명이 모여 있는 6년 차 오디오 기술 스타트업이다. 소프트뱅크벤처스, 캡스톤파트너스, 한국투자파트너스, LB인베스트먼트 등 유명 벤처캐피털(VC) 여러 곳이 이 회사의 음향 기술에 감탄해 수십억원을 투자했다.

가우디오랩을 이끄는 오현오 대표는 명함을 교환하자마자 헤드폰부터 내밀었다. 대화에 앞서 자신들의 음향 기술력을 체험해보라는 의도였다. “말과 글로 아무리 설명해도 직접 듣고 느끼는 것만 못 하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의 오 대표가 테스트룸에 놓인 스피커 방향을 조정하며 말했다.

첫 번째 연주는 헤드폰을 쓰지 않은 상태에서 스피커로 들었다. 책가방 크기의 스피커를 탈출한 전자기타 선율이 스쿼시 선수가 때린 공처럼 사방의 벽에 튕겨 날아왔다. 동시에 베이스기타 음은 바닥에 묵직한 진동을 일으켰다. 바닥을 딛고 있는 발바닥이 ‘둥둥둥’ 베이스기타 리듬에 맞춰 미세하게 떨렸다. 음향 기기 판매점 내 청음실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음악이 끝난 뒤 오 대표가 “이제 헤드폰을 착용해달라”고 주문했다. 양쪽 귀에 헤드폰을 얹었다. 그런데 그는 두 번째 음악도 스피커에서 틀었다. 경쾌한 기타 연주가 다시 한 번 방을 가득 메웠다. 귀를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생생한 멜로디가 헤드폰 너머로부터 다가왔다. 청음실에 재입장한 기분이 들었다.

오 대표에게 “음악이 또 스피커에서 나온다”고 외쳤다. 그러자 그는 “아니다. 이번 연주는 헤드폰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깜짝 놀라 장비를 벗었다. 방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멜로디가 정말로 헤드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 파악이 안 돼 헤드폰을 도로 착용하니 연주가 이어졌다. 물론 이번에도 헤드폰이 아닌 바깥쪽 스피커가 음악을 뱉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헤드폰을 착용했는데 맨 귀로 듣는 것처럼 주변 곳곳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이 낯선 경험의 비밀은 가우디오랩이 개발한 ‘스페이셜 업믹스(Spatial Upmix)’ 기술에 있다. 통상 음악에 쓰이는 사운드는 스테레오 스피커 환경에 맞춰 제작되기 때문에 헤드폰으로 그냥 들으면 왜곡이 생길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음상(音像·Sound Image)을 귓속이 아닌 바깥으로 끄집어내는 3차원(3D) 오디오 기술이다.

문제는 기존 3D 오디오 기술은 제작 과정에서 원본 신호를 망가뜨려 음질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가우디오랩 연구진은 국내외 시장에서 인정받은 고도의 렌더링(공간화) 기술력을 바탕으로 조작된 느낌 없이 자연스러운 3D 오디오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스페이셜 업믹스 기술은 LG전자가 올해 출시한 스마트폰 ‘LG 벨벳’과 ‘LG윙’에 탑재됐다. 베트남 최대 민간 기업인 빈그룹도 스마트폰  ‘아리스’에 가우디오랩 기술을 녹였다. 오 대표는 “밴드가 한 점에 뭉쳐 연주하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던 사람은 (스페이셜 업믹스 기술을 통해) 음악이 내 주변을 에워싸는 듯한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다”라고 했다.


VR 음향 기술 준비도

헤드폰을 수거해간 오 대표가 안경처럼 생긴 장비를 갖고 돌아왔다. 얼굴에 착용하자 양쪽 귀에 걸친 안경다리 부분에서 음악이 재생됐다. 오 대표가 “고개를 좌우로 돌려 보라”고 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음악이 왼쪽 귀에서 크게 들렸고, 왼쪽으로 돌리면 오른쪽 귀에서 잘 들렸다.

“친구와 마주 보고 대화하는 장면을 떠올려 봐라. 상대방이 말할 때 내가 오른쪽을 쳐다보면 친구 입과 가까워진 왼쪽 귀가 잘 듣게 되고, 반대로 왼쪽을 쳐다보면 오른쪽 귀가 잘 듣겠지. 그걸 구현한 기술이다.”

오 대표는 가상현실(VR) 관련 음향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가우디오랩을 창업하기 전 이 기술을 개발했다. VR 분야에서는 영상과 소리의 방향이 현실에서처럼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영상을 보는데 정작 소리는 시선 방향과 무관하게 평면적으로 들리면 사용자가 VR 환경에 몰두할 수 없기 때문이다.

VR 시장 성장 속도가 생각보다 더뎌 빛을 보지 못했던 이 기술이 최근 대형 IT 기업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애플이 무선 이어폰 ‘에어팟 프로’에 유사한 기능을 장착하면서부터다. 애플은 자이로 센서가 머리 위치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사운드가 에어팟 프로 사용자의 시선을 따라갈 수 있도록 했다. 고급 음질에 공간감까지 더한 것으로, 가우디오랩 기술과 같은 원리다.


오현오(오른쪽) 대표와 직원이 가우디오랩에서 개발한 음향 기술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오현오(오른쪽) 대표와 직원이 가우디오랩에서 개발한 음향 기술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OTT 콘텐츠 간 볼륨 차이도 해결

오 대표는 이날 시연한 가우디오랩의 음향 기술들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대를 풍요롭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가우디오랩은 네이버와 함께 사용자가 네이버에 올라온 공연물을 볼 때,  공연장에 직접 가서 듣는 것 같은 현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네이버가 지난해 6월 동영상 플랫폼 ‘브이 라이브(V LIVE)’로 방탄소년단(BTS)의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을 독점 중계했을 때 동시 접속자가 14만 명에 육박했다. 이들이 낸 접속료가 1인당 3만원 이상이다. 적지 않은 금액인데, 온라인이라고 평범한 사운드를 내보냈다면 어땠을까. 더욱이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 온라인 공연이 점점 더 늘어날 텐데 말이다.”

가우디오랩은 채널과 채널 또는 프로그램과 광고 사이의 큰 볼륨 차이로 사용자가 불편을 겪는 ‘라우드니스’ 문제 해결에서도 탁월한 기량을 보인다. 오 대표는 “OTT 사용자라면 한 콘텐츠에서 소리가 작게 들려 음량을 키웠는데 다음 콘텐츠에서는 소리가 너무 커 귀가 아팠던 경험이 한 번씩 있을 것”이라며 “이런 라우드니스 문제를 자동으로 조정해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OTT 기업에 제공하고 있다”라고 했다.

네이버와 SK텔레콤(플로)·NHN(벅스) 등의 온라인 스트리밍 업체가 가우디오랩의 라우드니스 조정 기술을 택했다. 오 대표는 “음향 시장 내 다른 어떤 기업과 겨뤄도 밀리지 않는다”며 “많은 사람이 ‘돌비’ 로고를 보고 해당 콘텐츠의 음질을 신뢰하듯 가우디오랩 로고를 보고도 같은 신뢰감을 느끼게끔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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