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후예’ 송중기, ‘아가씨’ 김태리, ‘극한직업’ 전선규가 출연하는 한국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마블의 블록버스터)’로 불리는 영화 ‘승리호’. 약 24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이 영화는 올해 한국 영화계의 ‘텐트폴(tentpole·영화사의 한 해 현금 흐름의 지지대 역할을 하는 핵심 상업 영화)’로 꼽혔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예고편을 통해 극장 개봉 기대감을 자아냈으나, 하반기에 접어들자 광고가 싹 사라졌다. 그러다 결국 영화관 개봉을 포기하고 최근 판권을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 넷플릭스에 팔았다. 이르면 연내 공개된다. 배우 차인표가 전성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은 코미디 영화 ‘차인표’도 내년 1월 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하기로 했다.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박훈정 감독의 신작 ‘낙원의 밤’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이는 단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올해 디즈니의 대작으로 손꼽힌 실사 영화 ‘뮬란’은 극장 개봉을 여러 차례 늦추다가 결국 OTT 디즈니 플러스에서 9월 공개됐다. 프랑스에선 한 극장주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야구 방망이로 뮬란 광고판을 부수고 짓밟는 영상이 소셜미디어(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반면 올해 워너브라더스 블록버스터 기대작 ‘원더 우먼 1984’는 12월 23일 극장 개봉을 강행하기로 했다. 워너브라더스 측은 이 영화를 35㎜ 필름 카메라와 65㎜ IMAX 카메라로 촬영해 박진감 넘치는 화면으로 완성했다고 강조한다. 황금빛 날개를 단 원더 우먼이 번개를 타고 하늘을 가로질러 두 명의 강력한 적을 추격하는 장면이 마케팅 포인트다.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 화면으로는 실감하기 어려운, 대형 스크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을 담고 있다.

두 가지 상반되는 사례는 극한 위기에 몰린 국내외 영화관 업계의 최근 풍경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더해 이미 급격한 속도로 성장하던 OTT와 IPTV(인터넷 텔레비전) 등 대체재의 득세로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전통적인 박스오피스 티켓 파워의 몰락은 영화 투자·제작·배급·마케팅사 등 실타래처럼 얽힌 영화 산업의 악순환을 야기해 산업 생태계를 뒤흔들고 있다. 올해 국내 극장 관객 수는 지난해의 10% 수준으로 감소했다. 주요 멀티플렉스 업체들은 국내외 지점 폐쇄를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영화 산업은 그 탄생부터 영화관의 발전과 궤를 같이했다. 영화라는 새 예술 장르를 만든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라시오타역에 도착하는 기차’를 상영한 세계 최초의 영화관 ‘에덴 극장’이 1889년 문을 연 지 무려 131년이 지났다. 한국 최초 상설 영화관 단성사가 1907년 개관한 지도 113년이 흘렀다. 1998년 서울 구의동에 국내 첫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 강변 11이 오픈한 후 한국 영화는 본격적인 1000만 관객 시대에 돌입했다.

영화관은 올해 미증유(未曾有)의 위기를 맞았다. 앞으로 영화관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올해 초 발표한 ‘2019 영화 산업 합산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다섯 편의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동원했고, 2019년 1년간 극장을 찾은 관객이 처음으로 2억20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역대 최다 관객 수다. OTT와 IPTV 등 새로운 매체가 득세한다고 해도 여전히 영화관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는 의미다.

여전히 영화 산업 전체에서 영화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2019년 한국 영화 산업 전체 매출에서 극장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76.3%에 달했다. 2019년 전국 극장은 513개로, 전년보다 30개 늘었다. 스크린 수는 142개 늘어난 3079개였다. 한마디로 OTT의 등장에도 영화 산업은 ‘잘나가고’ 있었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영화관에서는 단지 영화 내용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 안에서 허락되는 다른 재미를 즐기면서 영화를 내 삶 속에 아로새기는 경험을 한다. 여기엔 그 관람 경험만이 주는 대체 불가능한 ‘시간의 특별함’도 포함된다”고 했다.


온·오프라인 ‘제로섬 게임’은 아냐

‘이코노미조선’이 만난 국내외 전문가들은 애초 예측과 달리 지난해 연간 극장 관객이 전년 대비 1000만 명이나 늘어난 사실은 전통적인 영화 유통 플랫폼인 영화관의 성장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OTT는 극장과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대상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박성순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는 “기존 오프라인 영화관의 영역을 OTT가 침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OTT가 만족시킬 수 있는 소비자의 시청 형태와 콘텐츠가 다르므로 충돌하지 않는다”라며 “코로나19가 해소되면 오프라인 영화관은 주된 문화생활 채널로 다시 활성화할 것”이라고 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OTT와 영화관은 절대 경쟁 관계가 될 수 없다”라며 “블록버스터 장르는 영화관에서 계속 상영될 것이고, 로맨스나 코미디 등 스토리 위주의 장르는 OTT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다.

특히 OTT와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의 득세는 새로운 영화 관객 창출을 기대하게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고무적인 현상이라는 평가도 많았다. 장대련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OTT의 등장은 영화 산업 전반을 다채롭게 해 줄 것”이라며 “제도권의 지원을 받지 못한 독립 영화나 단편 영화도 OTT의 투자와 온·오프라인 유통을 통해 기존에 없던 기회를 잡을 수 있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장기적으로 영화 업계 내 콘텐츠가 더욱 풍족해지고 산업 내 현금 흐름 규모가 확보된다면, 영화 산업 자체가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코노미조선’은 이번 커버 스토리에서 위기의 영화관 산업과 득세하는 OTT 업계의 현상을 진단하고, 위기 속에서 변신을 꾀하는 영화관의 노력도 살펴봤다. 온라인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체험과 콘텐츠를 제공하는 등 변신하는 영화관도 찾아가 봤다. 국내외 전문가 제언을 통해 기회와 해법을 모색하고 영화계 원로와 배우의 목소리도 들었다.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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