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 코로나19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 연합뉴스
11월 23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 코로나19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 연합뉴스

‘8만7715명.’ 영화 업계의 대목인 연말, 게다가 일요일이었던 11월 30일 국내 박스오피스 ‘톱 5’ 영화의 총관객 수다. 1위 ‘이웃사촌’이 4만5604명, 이를 이은 ‘도굴’은 1만8339명, ‘런’은 1만3234명, ‘프리키 데스데이’는 7094명,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3444명이라는 초라한 스코어였다. 지난해 같은 날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 한 편이 117만1429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던 사실에 비춰 보면 매우 저조한 성적표다. 관련 업계에서는 유례없는 최악의 상황이라는 한탄이 나온다.

저조한 박스오피스 스코어는 영화 산업 악순환을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 산업은 영화관→배급사→제작사순으로 위기가 줄줄이 이어지는 구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관객의 발길이 뜸해지자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위기에 처한 제작·배급사들은 개봉을 미루거나 취소하고, 이에 따라 영화관은 콘텐츠 빈곤에 시달리며 관객은 영화관을 외면한다. 이어 제작·배급사들의 수익이 줄어 콘텐츠는 더 빈곤해지고 관객은 영화관을 아예 찾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영화관 업계 1위 CJ CGV(이하 CGV)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불안감도 있지만, 볼만한 영화가 없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라며 “관객이 준 상황에서 대작들이 개봉을 미뤄 볼만한 영화가 없으니, 더더욱 관객이 주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런 현상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코로나19 위기가 확산한 올해 3월 이후 영화관 관객 수와 영화관 업체 매출은 감소세를 이어 가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 등에 따르면, CGV의 3분기 연결 기준 누적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9.5% 감소한 4401억원에 머물렀다. 롯데시네마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의 3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67.2% 감소한 660억원이었다. 또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국내 영화 관객 수는 637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428만 명보다 88.3%나 급감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11월 30일 CGV의 장기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A(부정적)’에서 ‘A-(부정적)’로 낮추기도 했다.

반면, 영화관의 대체재인 넷플릭스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장은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 와이즈앱·와이즈리테일에 따르면 올해 9월 만 20세 이상 한국인이 넷플릭스에서 신용·체크카드로 결제한 금액을 표본 조사한 결과 역대 최고인 462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월의 241억원에 비해 91.7% 증가한 액수다.

최악의 위기를 맞은 전국 영화관 지점은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CGV는 10월 26일 서울 대학로·명동역씨네라이브러리, 광주 금남로·연수역·등촌, 대구 아카데미·홍성군 등 지점 7곳을 폐업했다. 이 회사는 3년 안에 전국 직영점 119곳 가운데 30~40%를 줄이기로 했다. 해외 시장 사정도 좋지 않다. 롯데시네마는 12월 말로 예정된 재계약을 포기하고 홍콩 현지 사업 진출 5년 만에 철수하기로 했다. CGV와 롯데시네마 등 주요 영화관 업체들은 10월 매출 급감과 극장 임차료 및 관리비 등 고정비 상승, 그리고 코로나19 방역비 부담을 근거로 영화 관람료를 올렸지만, 근본적인 관객 실종에 따른 실적 악화에 대응하기는 역부족이다.

영화 산업은 시장 참여자들이 수익 구조상 촘촘히 얽혀 있어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도미노처럼 손해가 이어진다. 영화가 손익분기점(영화 순 제작비와 유통비를 합한 금액)을 넘지 못하면 제작·투자·배급사가 매출로 임금을 지급하는 감독·배우·스태프 등이 모두 타격을 입는다.


“OTT·IPTV에도 영화발전기금 부과해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영화 티켓값은 10%의 부가가치세와 3%의 영화발전기금을 제외한 부분 중 45%를 영화관이 가져가는 구조다. 그 나머지는 투자·배급·제작사가 나눠 가진다. 이처럼 영화관 관객 감소는 영화관은 물론 투자·배급사의 수익성에 직격탄을 날린다. 투자·배급사가 개봉을 미룬다고 탓할 수도 없다. 실패가 뻔하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 업계는 대부분이 수직계열화한 상황이라 CJ의 경우 CJ ENM이 자체 제작·배급한 영화를 CGV에서 상영하고, 롯데는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자체 제작·배급한 영화를 롯데시네마에서 상영한다. 문제는 이런 대기업과 관계없는 중소 제작·배급사들은 더 큰 위험에 봉착한다는 사실이다. 의지할 돈줄이 없어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탓이다. 이에 따라 최소한의 제작비라도 보전하기 위해 영화관 개봉을 포기하고 OTT로 직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런 악순환을 타개할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현재 관객 1명당 배급사와 제작사에 돌아가는 객단가는 4000원이 채 안 되는 실정으로, 관객이 적으면 개봉해봤자 손해가 뻔하다”라며 “영화 티켓당 수익 분배 비율을 조정해 제작사와 배급사에 돌아가는 비중을 현재보다 높여 개봉을 촉진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한 영화관 업계 관계자는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일시적으로 티켓 수익 분배 비율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는 있다”면서도 “이런 제안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또 영화관 업계에서는 IPTV(인터넷 텔레비전)를 운영하는 통신사에 대한 영화 판권 판매(2차 부가판권 판매) 수익 배분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대형 영화관 업체 관계자는 “2차 부가판권 판매 수익이 커지면 손익분기점 자체를 낮출 수 있다”라며 “현재 통신사가 가져가는 비중을 일정 부분 줄이고 영화 업계가 가져가는 비중을 키워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더욱 근본적인 해법으로 OTT와 IPTV에도 영화발전기금을 부과해 늘어난 기금 재원을 영화 업계의 핵심 유통 경로인 영화관 위기 극복에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영화 업체 관계자는 “OTT 등도 위상이 커지는 만큼 영화 산업 생태계를 함께 키워나가겠다는 목적의식하에 영화발전기금을 납부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넷플릭스 등 OTT 업계의 반발로 현실화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2017~2018년 유럽에서도 비슷한 논쟁이 일었다. 법정 공방 끝에 유럽연합 일반법원이 넷플릭스는 독일에 지사가 없지만,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독일 영화진흥법에 따라 영화분담금을 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plus point

“개봉해야 용역료 받는데”…벼랑 끝 위기 몰린 업계 밑단

더 큰 문제는 영화 투자·배급·제작사뿐 아니라 마케팅·디자인 등 업계 밑단의 업체들이다. 신규 개봉작 계약을 할 때 전체 용역료 중 절반을 받고, 개봉 후 나머지 대금을 정산받는 방식으로 계약이 이뤄지기 때문에 개봉이 안 되면 고스란히 타격을 떠안게 되는 구조다.

영화 홍보사 퍼스트룩의 강효미 대표는 “영화 홍보사는 인적 자원 중심의 조직이기 때문에 인건비 베이스로 운영된다”라며 “최근 일감이 줄어 업계가 위기에 처했지만, 돌파구를 찾을 방법이 없다”라고 토로했다.

특히 영화계에 대한 정부 지원도 배급·제작사, 해외 영화 수입사 등을 위주로 이뤄져 밑단에 있는 업체들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일례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4월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영화 산업에 170억원의 예산을 지원했지만, 마케팅 등 업계 밑단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었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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