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승리호’는 당초 계획했던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 단독 공개를 택했다. 사진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는 당초 계획했던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 단독 공개를 택했다. 사진 넷플릭스

아군의 위기는 적군에는 기회다. 영화관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의 관계가 그렇다. 글로벌 OTT 대표주자 넷플릭스가 위기를 맞은 한국 영화관 업계에 위협이 되고 있다. 본래 영화관 상영을 목표로 제작했던 영화를 공격적으로 대거 구매하면서 영화 산업이 들썩이고 있다. 넷플릭스는 115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영화 ‘사냥의 시간’을 올해 4월 120억원에 사들인 데 이어 배우 박신혜 주연의 영화 ‘콜’, 차인표 주연의 ‘차인표’, ‘신세계’ 박훈정 감독의 신작 ‘낙원의 밤’ 등 영화관 개봉을 포기한 한국 대작들을 잇달아 거금에 구매했다.

왜 영화관 개봉을 목표로 제작한 영화가 넷플릭스와 계약할까. 핵심 이유는 전 세계 약 2억 명에 달하는 가입자를 확보한 넷플릭스가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를 통해 영화 배급·제작사와 계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현재 영화 판권 계약 형태 중 ‘플랫(Flat·단매 또는 정액 판권) 계약’으로 체결해 극장 개봉을 포기한 다수의 영화를 공개할 권리를 얻었다. 플랫 계약은 작품이 실제 발생시키는 매출액과는 무관하게 계약 단계에서 결정된 일정 금액으로 계약 기간 동안 판권을 사 오는 방식이다. 플랫폼에서 흥행 여부와 무관하게 우선 거금을 주고 영화 판권을 사 오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중국, 북한 등 소수 국가를 제외한 전 세계 190여 개국에서 약 1억9500명의 유료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올해 3분기에 증가한 220만 명의 가입자 중 절반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나왔다. 한국 창작자가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 역시 70여 편에 달한다.

넷플릭스는 현재 다수 블록버스터 영화가 그간의 제작비와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기회다. 넷플릭스를 ‘리쿱(recoup·제작비를 모두 회수한다는 업계 용어)의 끝판왕’이라 부르기도 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최근 자사행을 택한 영화 ‘승리호’ 제작사 비단길에 제작비의 약 10~20%를 추가한 금액을 지급했다. 비단길 입장에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최근 영화관 업황이 급속히 나빠지자 대박 흥행은커녕 손익분기점 달성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택한 고육책이었다. 한 문화평론가는 “비단길이 고심 끝에 제작비라도 건지는 쪽을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승리호’의 제작비는 약 240억원으로 알려졌다. 이는 넷플릭스가 지급한 금액이 300억원에 육박한다는 의미다.


업계는 OTT 계약 방식에 불만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영화는 극장행을 택하고 있다. 배우 공유와 박보검이 출연한 ‘서복’, 한지민과 남주혁이 출연한 ‘조제’, 류승룡과 염정아가 출연한 ‘인생은 아름다워’ 등 다수 작품이 12월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제작·배급사들이 극장 개봉을 고수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OTT와 계약이 영화 배급·제작사에 절대적으로 유리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전례 없이 영화 업계가 위축됐고 오프라인 영화 상영이 어려워진 현 상황만 지나가면, 많은 제작비가 동원된 블록버스터 영화일수록 흥행 대박에 대한 추가 수익을 노리며 극장 개봉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들은 넷플릭스에서의 영화 개봉은 투자비 회수는 보장하지만, 추가 수익 가능성은 모조리 사라진다는 점에서 여전히 불만이 있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는 영화 제작·배급사와 플랫 계약을 통해 영화에 대한 지식재산권(IP) 자체를 소유한다. 넷플릭스 측은 영화로 인해 발생한 매출이나 시청자 수도 공개하지 않는다. 반면 영화를 극장에서 개봉할 경우, 영화 매출과 관객 수 가 박스오피스에 비교적 투명하게 공개돼 수익 분배가 가능하다.

영화 배급사 리틀빅픽처스의 권지원 대표는 “넷플릭스행을 택한 영화의 조회 수가 많이 나와 넷플릭스 구독자 수가 두 배 증가한다고 해서 여기에 기여한 영화 제작·배급사 매출도 함께 두 배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재 플랫 계약 형태상 초기 계약금 외 추가 수익을 전혀 낼 수가 없어 보상 체계에 대한 영화 업계의 아쉬움이 많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영화 산업의 속성 자체가 ‘대박 흥행’을 노리는 산업인데, ‘적당한 금액에 넷플릭스로 넘기기’가 한계로 설정된다면 누가 영화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냐”며 OTT와 계약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일부 영화 창작자들도 반발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년간 피땀 흘려 만든 영화를 한 번에 넘기면, 어떠한 참여도 하지 않은 넷플릭스가 이후 모든 흥행 수익을 가져간다는 점이 창작자 입장에서 답답하다”며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참여한 것도 아닌데 부당하다” 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이대로 가면 한국 영화 제작사들은 넷플릭스의 하청 업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IP 자체를 넷플릭스에 넘기게 되면 한국 영화 콘텐츠 산업 자체가 특정 해외 OTT 기업에 종속되고, OTT 계약만을 위해 영화를 만드는 외주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한국 영화 업계가 붕괴될 수 있다는 위험이 포착되면 정부 차원에서 이를 규제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plus point

[Interview] 이희주 웨이브 정책기획실 실장
“단순 유통채널 넘어 영화 제작·투자 참여”

이희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학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미디어 자문위원, 전 콘텐츠연합플랫폼 전략기획실장 / 사진 이소연 기자
이희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학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미디어 자문위원, 전 콘텐츠연합플랫폼 전략기획실장 / 사진 이소연 기자

넷플릭스를 필두로 영화 업계 내 OTT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토종 OTT인 웨이브 역시 적극적으로 영화를 확보하고 있다. 국내외 배급사와 계약할 뿐 아니라 직접 영화 콘텐츠를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11월 30일 이희주 웨이브 정책기획실 실장을 서울시 상암동 웨이브 본사에서 만났다.


영화 산업에서 현재 OTT는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나.

“압도적인 양의 영화를 유통하는 온라인 상영관 역할을 하고 있다. 웨이브 유료 이용자가 시청할 수 있는 국내외 영화만 6300편에 달한다. 그러나 OTT는 단순히 극장 상영 이후에 부수적인 수입을 올리는 DVD나 IPTV(인터넷 텔레비전)에 머무르는 2차 판권 시장이 아니다. 단순 유통채널을 넘어섰다. 보다 적극적으로 영화에 투자하고, 콘텐츠를 직접 만들고, 소비자에게 알리는 종합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최근 부각되는 OTT의 역할은 무엇인가
“영화 산업의 끝단인 상영뿐 아니라 제작과 투자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 단순히 이미 만들어진 영화를 구매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웨이브는 2023년까지 오리지널 콘텐츠에 3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올해 오리지널 독점 콘텐츠 15편을 공개하고, 해외로 수출까지 하고 있다.”

영화 업계 반응은 어떤가.
“긍정적이다. 단순히 만들어진 영화를 구매하고 유통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체 파이를 키우고 기회를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독점 선공개한 오리지널 드라마 ‘SF8’의 경우 웨이브가 한국영화감독조합, 수필름과 함께 기획·제작했으며 이윤정 감독 등 주요 감독 8명이 참여했다. 드라마이긴 하지만 사실상 한 회가 하나의 중편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반응이 좋아 영화 업계와 더 많은 협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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