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지호가 11월 30일 오후 서울 정동 조선일보 미술관 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배우 오지호가 11월 30일 오후 서울 정동 조선일보 미술관 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배우들도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한다.” 배우 오지호(44)는 11월 30일 오후 서울 정동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 직전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98년 영화 ‘까(정지영 감독)’의 단역으로 데뷔했고 2000년 영화 ‘미인(여균동 감독)’에서 주연을 맡아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가리지 않고 활약했다.

그는 올해 여름 ‘태백권(최상훈 감독)’과 ‘프리즈너(양길영 감독)’ 등 초저예산 영화에 연달아 출연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들의 편당 제작비는 불과 1억5000만~3억원 수준. 유명 배우 한 명의 개런티(출연료)에도 못 미치는 금액으로 영화를 만든 것이다. 중견 배우로서는 흔치 않은 선택이었다. 이 영화들은 잠시 극장에서 개봉한 후 IPTV(인터넷 텔레비전) 시장에서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다.

영화 업계에서는 오프라인 수요 감소와 온라인 수요 증가 등 급변하는 영화 산업 환경에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평가한다. 일각에서는 적은 비용에 낮은 퀄리티로 영화를 만들어 유명 배우의 인지도를 이용해 돈을 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같은 초저예산이지만 신선하고 과감한 독립영화들과는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 배우에게 초저예산 영화 출연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그는 “최근 영화관의 위기는 초대형 영화와 초저예산 영화만 살아남는 일종의 양극화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급변하는 영화 산업 환경 속에서 다양한 영화에 대한 저변 확대를 위한 배우들의 노력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오지호가 주연한 초저예산 영화 ‘태백권’ 스틸 컷. 사진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오지호가 주연한 초저예산 영화 ‘태백권’ 스틸 컷. 사진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초저예산 영화에 계속 출연하는 이유는.
“제작사 측에서 대본을 건네면서 ‘설마 오지호가 이런 영화를 수락할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투자·배급사 관계자들이 많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총제작비가 1억5000만~3억원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출연료 등 돈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배우로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하지 못했던 다양한 장르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작은 규모의 영화는 대본이 좋고 감독과 ‘합’이 맞으면 짧은 시간 안에 만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제작비가 적었던 덕에 제작비의 약 10배에 달하는 수익을 내 업계 관계자들도 놀랐다. ‘태백권’의 경우 동남아시아에 수출도 했고, 미국 하와이 국제영화제에도 출품했다.”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계에 몸담은 지 20년이 넘었는데 급변하는 산업 환경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무관하게 수년 전부터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와 IPTV가 활성화되면서 영화관은 상대적으로 죽어가고 있다. 대기업 멀티플렉스 체인은 이미 30~40% 규모 축소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작은 규모의 영화에도 얼굴이 알려진 배우들이 나오면 더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투자사와 배급사는 미래를 보고 작품을 만드는데 아무래도 관객의 시선을 끌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수년간 실화 바탕 영화와 정치 영화 등이 많았다. 코믹 액션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나와야 한다. 초저예산 영화도 조금씩 투자를 늘리면 새로운 기회와 시장이 열릴 수 있다고 확신한다.”

영화관의 위기가 초래한 업계 변화는.
“극장 개봉 영화는 티켓 파워를 위해 아무래도 톱 배우들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위기가 심화하면서 그런 영화조차도 점차 개봉작이 줄어들고 있다. 약 20억~70억원 제작비가 들어가는 중간 규모 영화는 아예 자취를 감추고 있다. 현재도 대형 제작사들이 이미 만들어둔 영화들은 많다. 그런데 지금 개봉하면 리스크가 크니까 극장을 피하고 OTT 등으로 직행한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초대형 영화와 아주 작은 영화만 남게 될 수 있다. 이는 결국 다양성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배우에게 영화관이 갖는 의미는.
“영화관의 대형 스크린은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공간’으로 여겨진다. IPTV나 OTT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가볍게 볼 수 있지만, 극장은 한두 시간 컴컴한 큰 방에서 대형 화면에 나오는 배우들의 움직임 하나하나, 목소리 하나하나에 관객이 오롯이 집중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배우들도 스크린에 걸리는 영화에 대해서는 마음가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 데이트할 때 5만원은 있어야 영화관에 가지 않나. 관객들이 돈과 시간을 투자했는데 재미가 없으면 배신감이 크다. 그만큼 엄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작품에 임하게 된다.”

OTT로 주도권이 넘어가면 좋은 영화 만들기가 어려워질까.
“그렇지는 않다. 미래의 판도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얼마 전 친한 제작사 선배랑 진지하게 얘기한 적이 있다. 그는 극장용 영화를 고집하면서 5년째 영화를 만들지 않고 있었다. 나는 ‘진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각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정통 영화로 가기 위해서는 현재 성장하는 시장에서도 긴밀히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대기업들이 OTT 플랫폼 웨이브 등에 자금을 대거 투자한다. 시장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분리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

왜 영화관이 살아남아야 하나.
“어릴 적 작은 꿈이 실현돼 배우가 됐다. 커다란 스크린에 비친 홍콩 배우 류더화(劉德華·유덕화)의 얼굴을 보고 꿈을 키웠다. 나처럼 배우를 보면서 꿈을 키우는 사람은 지금도 있을 것이다. 또 나는 그저 일한 건데 관객은 다른 생각을 가질 때도 있었다. 한 일본 장애인분이 목숨을 끊으려다가 내 연기를 보고 삶의 의지를 다시 찾았다고 했다. 이처럼 영화관은 일종의 동경의 대상이 나오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중과 배우가 소통하는 가장 소중한 수단이다. 스크린이 주는 감동은 대체가 불가능하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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