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련 하버드 경영학 박사, 전 한국마케팅회 회장, 전 연세대 국제학 대학원장
장대련
하버드 경영학 박사, 전 한국마케팅회 회장, 전 연세대 국제학 대학원장

필자는 지난해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인근의 작은 도시 벤티카노(Venticano)에서 개최되는 영화제 코르토 에 아 카포(Corto e a capo)에서 사회 부문 영화 금상을 받았다. 낭만적인 여름밤, 야외에 마련된 커다란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필자의 영화를 달빛 아래 이탈리아 관객들과 함께 봤다. 마치 명화 ‘시네마 천국(1988)’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할 정도로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하기 이전,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관의 모습이다.

코로나19 이전에도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오프라인 영화관 위기설은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여름밤의 따뜻한 추억을 회상하면 오프라인 영화관은 항상 우리 곁에 있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선다. 그 이유는 오프라인 영화관은 오뚝이처럼 쓰러질 듯 말 듯 하지만 항상 제자리를 되찾는 특별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학을 말로만 하는 교수였던 필자는 영화를 만들고 상영에 참여하며, 몸소 실전 경영학을 배웠다. 이를 통해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영화 비즈니스에서 오프라인 영화관은 대체 불가능한 유통 채널이라는 점이다. 역사상 전례 없는 감염병으로 식당·카페·콘서트 등 모든 오프라인 채널이 마비된 현 상황에서 오프라인 플랫폼인 영화관이 주춤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시기만을 지난다면 영화관 수요는 분명 반등할 것이다.

먼저 경영학자의 관점에서 오프라인 영화관은 영화라는 콘텐츠 재화의 효용을 최대치로 높일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영화의 핵심은 도피다. 일상을 벗어나 영화 속으로 도피하는 것이 영화 산업의 핵심이며,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선 반드시 이를 돕는 환경이 완벽하게 준비된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

집에서 작은 스크린으로 보는 영화는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의 몰입도를 절대 영화관만큼 제공할 수 없다. 이를 전문적으로 표현하면, 집에서의 영화 시청은 영화관에서보다 ‘서술 전달(narrative transportation)’ 효과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즉, 집에서는 소비자가 현실을 모두 잊고 영화 세계에 들어가 강하게 몰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집이라는 내 생계·일상과 직결되는 공간에서 영화에 몰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몰입성’이라는 재화의 특성 덕분에 영화관 사업은 경기 순환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항상 잘되는 업계, 즉 ‘경기 비순행적(acyclical)’ 비즈니스다. 화장품처럼 경기를 잘 타지 않는다. 돈이 많으면 사람들이 돈을 쓰기 위해 영화관에 가고, 돈이 없으면 현실을 잊으려고 간다. 1920년대 대공황 때 미국 국민은 슬픈 일상을 잊기 위해 극장을 찾았고, 인도인은 현실 도피를 위해 발리우드(인도의 영화 산업을 일컫는 말) 영화관을 찾아 영화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앞으로도 영화관은 경기가 나쁘든 좋든 간에 많은 소비자가 현실과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서 방문하는 곳이 될 것이다. 소비자를 현실과 충분히 분리하지 못하는 작은 화면의 넷플릭스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이 제공할 수 없는 가치다. 백신 등이 개발돼 영화관이 안전해지면, 영화관 수요는 반등할 수밖에 없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2017)’에는 드넓은 프랑스 해변으로 떨어지는 수백 발의 총알을 피하는 영국군의 모습이 첫 장면으로 등장한다. 이 장면을 어두컴컴한 영화관에서 초대형 스크린을 앞에 두고, 사방에서 들리는 스피커 소리에 묻혀 감상하면 마치 전장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장면을 집에서 혼자 스마트폰 화면으로 본다면 감동은 분명 다를 것이다. HDTV의 화질이 아무리 좋아지고 화면이 커져도 영화관이 주는 오감의 희열을 절대 대체할 수 없다.

단편 영화를 여러 편 만들면서 감독 입장에서 같은 장면을 작은 화면으로 수십 번 반복해서 봤지만, 영화를 대형 스크린에서 처음 상영할 때는 마치 이 영화를 태어나 처음 보는 듯한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감독으로서 의도한 화면의 미장센(Mise-en-Scène·영화 프레임 내에서 배우와 세트 디자인 등 시각적 요소를 배열하는 작업)은 큰 화면에서만 제대로 온전히 전달될 수 있다. 영화를 직접 만들면서 배운 것은 디테일의 중요성이다. 영화 제작자는 관객 반응을 염두에 두며 배우의 몸짓, 샷의 프레이밍, 의상, 소품, 소리 등 모든 것을 계획한다. 우연히 넣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요소가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곳은 오직 영화관의 큰 스크린뿐이다.


한 공간에 여러 사람이 모여 영화에만 오롯이 집중하는 환경은 오프라인 영화관의 장점이다.
한 공간에 여러 사람이 모여 영화에만 오롯이 집중하는 환경은 오프라인 영화관의 장점이다.

영화는 제로섬 게임 아니다

경영학에서 경쟁이나 위협은 양날의 칼이라고 한다. OTT 등 온라인 영화 플랫폼의 등장은 오히려 영화 산업 전체의 파이를 키워서 영화관 비즈니스에도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방향으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직접 영화 업계에 몸담아 본 결과, 영화 업계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제조부터 배급, 상영까지 다양한 종사자가 모두 거미줄처럼 촘촘히 얽혀 있고, 자명한 것은 영화 흥행은 모두에게 이득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OTT 플랫폼이 지금 당장은 영화관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영화관, 더 나아가 영화 산업 전반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도 있다. 상업 영화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는 많은 홍보(AP·Advertising and Promotion) 비용과 흥행하는 일부 작품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꼽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흥행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는 유명한 감독, 배우 또는 장르만이 투자받게 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안전빵’ 격인 마블 등 히어로 영화, 제임스 본드 등 액션 영화, 디즈니 리메이크 시리즈 같은 대중적인 영화만 선호된다. 이 때문에 보다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지기 다소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다.

영화 투자가 특정 영화 콘텐츠에만 쏠린 현 상황에서 ‘로마(2018)’ ‘아이리시맨(2019)’ 등 다양한 영화 제작에 많은 투자를 하는 넷플릭스 등 OTT의 등장은 영화 산업 전반을 다채롭게 해 줄 것이다. 제도권의 지원을 받지 못한 독립 영화도 OTT의 투자와 온·오프라인 유통을 통해 종전에 없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장기적으로 영화 업계 내 콘텐츠가 더욱 풍족하고 다양해지고 산업 내 현금흐름 규모가 확보된다면, 영화 산업 자체가 커질 수 있다. 그리고 영화관 역시, 보다 다양한 관객을 만날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OTT에서 먼저 본 영화를 영화관에 가서 보고 싶어 하는 관람객도 생길 것이다.

다만 영화관이 이러한 디지털로의 전환 속에서 오프라인만의 강점을 살리고 온라인과의 상생을 통해 전체 파이를 키우기 위해선 반드시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OTT 플랫폼이 하듯이 영화관은 소비자 자료 분석을 더욱더 세밀하게 해야 한다. 지금 OTT 서비스는 가입자들의 기존 영화 선택 자료를 분석해 유사한 영화를 추천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에 반해 영화관 애플리케이션(앱)은 예매, 디지털 티켓 발행, 포인트 적립, 할인쿠폰, 주차 확인 등 단순한 편익만을 제공한다. 홈 메뉴에는 영화 예매율 순위와 포스터가 나와 있지만, 예고편을 찾는 데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에 반해 넷플릭스는 가입자가 보고 싶어 할 영화를 선별해 예고편을 자동으로 생성시키고 영화의 시놉시스도 보여주며 더 강하게 호객한다. 영화관도 고객에 대한 맞춤형 타깃팅을 해 극장에 오게끔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컬래버레이션 마케팅도 해야 한다. 영화관은 분명 코로나19 이후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새로 등장하는 플랫폼만큼이나 노력하고, 소비자 눈높이에 자신을 맞춰야 할 것이다.

장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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