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임웍스의 이산화탄소 포집 공장. 사진 클라임웍스
클라임웍스의 이산화탄소 포집 공장. 사진 클라임웍스

유럽 스타트업 클라임웍스(Climeworks)와 카브픽스(Carbfix)는 이산화탄소를 돌로 만드는 ‘마법’ 같은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아이슬란드에서 건설 중인 세계 최대 규모의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공장 ‘오르카(Orca)’가 그 무대다. 오르카는 대형 흡입기로 공기를 빨아들이고, 특수 소재의 필터로 이산화탄소만 골라낸다. 이렇게 모은 이산화탄소를 땅속 깊은 곳에 자리한 현무암 지층에 고압으로 주입하면 흰색을 띠는 광물이 된다.

이 모든 과정은 지열 에너지로 진행된다. 그래서 공장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량은 ‘0(제로)’다. 오르카는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없애는 ‘탄소 네거티브(Carbon Negative·이산화탄소 순 배출량을 마이너스로 만드는 것)’ 공장이다. 오르카는 내년 봄 완공을 앞두고 있는데, 이미 독일 완성차 업체 아우디(Audi)와 미국 핀테크 데카콘(기업 가치 10조원 이상의 비상장 회사) 스트라이프(Stripe)가 돈을 내고 공장 가동을 요청했다. 자신들의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직간접적으로 배출한 온실가스 총량)을 지워달라는 이유에서다.

미국 스타트업 파차마(Pachama)는 탄소 모니터링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숲이 흡수하는 탄소를 기술로 빠르게 계산하는 방식이다. 인공위성, 라이다(LiDAR·전파에 가까운 성질을 가진 레이저 광선을 사용해 개발한 레이더), 드론, 인공지능(AI) 등 사용하는 기술도 다양하다. 파차마는 3차원 숲 지도를 만들고, 머신러닝(기계학습)을 활용해 숲의 변화 과정과 나무가 흡수하는 탄소량을 파악한다. 더는 사람이 직접 줄자를 들고 나무 크기·둘레를 잴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기업은 조림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줄인 탄소량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 웃음꽃이 피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투자하는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스, 아마존의 기후 서약 펀드 등도 500만달러(약 54억원)를 투자하며 파차마를 지원하고 나섰다. 

탄소중립(Carbon Neutral·이산화탄소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 시대, 클라임웍스·카브픽스·파차마는 다른 기업에는 골칫거리인 탄소 배출 규제를 사업 기회로 삼은 ‘역발상’ 기업이다. 이 기업들은 탄소 네거티브 기술을 내세워 글로벌 대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했고, 유명 벤처캐피털(VC)로부터 수백 수천억원의 투자를 받으며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반면, 탄소 배출을 줄이지 못한 기업은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다. 영국의 대형 자산운용사 사라신 앤드 파트너스는 지난해 세계 최대 정유 회사인 로열 더치 셸 보유 주식 가운데 20%를 팔았다. 그러면서 셸에 서한을 보내 “당신네 회사는 대규모로 화석연료에 투자해서 지구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며 “자본은 기후 변화의 원인이 아닌 해결책에 투입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월가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도 석탄을 사용해 얻은 매출이 25%가 넘는 기업의 채권과 주식을 처분하고 나섰다. 투자 기업에 기후 변화 관련 친환경 전략을 발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CEO)는 “기후 위기가 곧 투자 위기”라며 “이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 국가와 기업은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산화탄소가 흰색을 띠는 탄산염 광물로 변해 현무암에 달라붙어 있다. 사진 클라임웍스
이산화탄소가 흰색을 띠는 탄산염 광물로 변해 현무암에 달라붙어 있다. 사진 클라임웍스
숲이 흡수한 탄소량을 계산하기 위해 사용되는 3D 지도. 사진 파차마
숲이 흡수한 탄소량을 계산하기 위해 사용되는 3D 지도. 사진 파차마

피할 수 없는 탄소중립

탄소중립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12월 ‘2050년 탄소중립’에 뜻을 모았다. 이에 따라 자동차 배출 규제 상향, 플라스틱세 신설 등 환경규제를 강화하고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계획이다. 탄소국경세란 탄소규제가 약한 국가가 상품이나 서비스를 수출할 때 적용하는 무역 관세로, 탄소의 이동에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다. 

올해는 동아시아 국가의 탄소중립 선언이 이어졌다. 온실가스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비난을 받았던 일본은 올해 10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기후 위기 관련 대책은 경제성장에 제약이 아니다”라며 “큰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역시 지난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파리기후협약(궁극적으로 온도 상승 폭을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국제적 협약)에서 탈퇴한 미국도 복귀를 예고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식이 열리는 내년 1월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하겠다고 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또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10년간 1조7000억달러(약 1906조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친환경차 보급도 확대할 전망이다.

글로벌 기업도 잇따라 탄소중립 선언 대열에 합류했다. 미국 정보기술(IT) 기업 애플은 지난 7월 “2030년까지 모든 제품 생산 과정에서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0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팀 쿡 애플 CEO는 “작은 파장이 연못을 가득 채우듯 애플의 탄소중립 노력이 더 큰 변화를 끌어내는 첫 발걸음이 되고자 한다”고 했다.

구글은 2030년까지 전기 외 다른 모든 에너지까지 온실가스를 내뿜지 않는 에너지로 대체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아마존은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목표 아래 기후 위기 대응 기금 조성, 전기차 구입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탄소 네거티브 선언까지 나아간 기업도 있다. 영국 에너지 회사 드락스(Drax)는 2030년까지 탄소 네거티브를 달성하겠다고 공표했다. 세계 최초의 탄소 네거티브 선언이었다. 바이오매스(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식물이나 동물 같은 생물체)를 이용한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기술, 즉 탄소 네거티브 기술을 확보했기에 가능한 선언이었다. 드락스의 뒤를 이어 마이크로소프트가 2030년까지 탄소 네거티브 달성을 선언했다. 한국에서는 네이버가 최초로 탄소 네거티브를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2050년 탄소중립’ 범부처 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2050년 탄소중립’ 범부처 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테슬라처럼 혁신가 돼야

한국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월 “탄소중립을 통한 지속 가능한 경제로의 전환은 시대적·세계적 흐름”이라며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과제”라고 밝혔다. 이어 12월 초 한국 정부가 발표한 ‘탄소중립 실현 추진전략’에는 경유세 등 세제와 부담금, 배출권거래제 등 탄소 가격 부과 수단을 대대적으로 손본다는 내용이 담겼다. 탄소 배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국내 산업계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정부의 탄소중립 로드맵이 산업의 발전 속도를 고려하지 않았고, 당장 내년부터 시행되는 제3기 배출권거래제조차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경기 침체로 경영 실적이 악화하는 가운데 날로 강화하는 규제에 한숨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이코노미조선’이 이번 커버 스토리를 준비하면서 만난 탄소 네거티브 기업과 투자자 그리고 전문가는 하나같이 탄소 제로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혁신’을 강조했다. 마치 전기차 시장이 미성숙했던 2000년대 초반 테슬라가 등장해 오늘날 시장 1위가 된 것처럼 탄소 시장의 혁신가가 되라는 주문이다.

2006년 상장 이전의 테슬라에 초기 투자해 막대한 수익을 거둔 임팩트 투자의 선구자 낸시 펀드 DBL 인베스터 대표는 테슬라를 언급하며 “탄소는 스타트업과 혁신가에게 기회다”라며 “탄소 네거티브 기술에 대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필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문가인 이동석 삼정KPMG 전략컨설팅그룹 리더 역시 “탄소중립 시대에 비즈니스 리더들은 혁신적인 사고와 해결책을 기업의 우선순위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plus point

[Interview] 유인식 국무총리실 녹색성장위원회 위원
“탄소 배출 많은 韓 제조업…혁신 없다면 생존 어려워”

안소영 기자

유인식 IBK기업은행 본부기업금융센터 팀장 / 사진 안소영 기자
유인식
IBK기업은행 본부기업금융센터 팀장 / 사진 안소영 기자

전 세계가 ‘탈탄소’를 준비하고 있다. 유럽, 일본, 중국 등이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일부 글로벌 기업은 탄소 네거티브까지 선언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 아래 탄소 배출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2월 8일 오전 서울 을지로 IBK 파이낸스타워에서 유인식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을 만나 피할 수 없는 탄소중립 시대에 기업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물었다. 그는 탄소중립과 관련해 유엔(UN) 국제협상, 정책개발, 기업컨설팅, 금융 등 폭넓은 분야에서 경험을 쌓아 녹색금융,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탄소배출권거래제 전문가로 통한다.


각국 정부의 탄소중립 선언이 이어졌다. 기업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
“유럽연합(EU)은 탄소중립을 이행하기 위해 내년부터 탄소국경세(CBAM)를 도입한다. 또 탄소세와 탄소 관세, 탄소배출권거래제 확대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EU에 수출하게 되면 타격이 불가피한 셈이다. 특히 한국 제조업은 자동차, 선박, 철강, 전기·전자 등 탄소배출량이 높은 업종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혁신이 없다면 생존이 어렵다. 탄소중립을 할 경우 산업, 경제 패러다임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석탄발전 비중은 ‘0(제로)’가 되어야 하고, 도시가스는 전기·수소로 대체돼야 한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빌딩을 짓고 전기·수소차를 사용해야 하는 등 전혀 다른 사회가 조성된다. 규제안은 강화되고 ESG는 중요 어젠다가 될 것이다. 이미 국민연금도 ESG 평가 중 환경 부문 기준을 개정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기업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탄소중립을 선언하는 국가가 늘면서 자발적 탄소배출권 시장이 커지고 있다. 감축 활동만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어려워 배출한 양만큼 상쇄하는 방안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도권에 있는 탄소배출권은 구입 절차가 복잡하고, 거래 제약 조건도 많다. 나이키 등 글로벌 기업은 비규제 배출권을 대체재로 사용하고 있다.”

국내 대·중소기업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구글, 애플 등 글로벌 기업이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만 사용하겠다는 ‘RE100(Renewable Energy 100)’을 선언하고, 납품 업체를 상대로 RE100을 준수하라고 요구한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이 RE100을 선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RE100은 2차 협력사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중소기업은 이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고, 무시하면 기업 경쟁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대기업은 대응이라도 가능하지만, 중소기업은 무방비로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기업은 중소기업이다.”

탄소중립 시대, 기업에 조언하자면.
“‘희망을 찾기보다 행동을 모색해야 한다. 오로지 그때서야 희망이 올 것이다.’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이다. 모두가 탄소중립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를 주저한다. 하지만, 과감한 행동과 결단이 필요하다. 기업은 녹색 경영, ESG, 온실가스 감축을 환경부서의 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행동하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임수정·안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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