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가 2019년 9월 1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기후 서약 펀드’ 조성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가 2019년 9월 1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기후 서약 펀드’ 조성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과거 클린테크(Clean Tech) 골드러시는 수십억달러를 날려버리고 벤처캐피털을 약탈하면서 재앙으로 끝났다. 하지만 오늘날 기후 관련 다양한 기술을 중심으로 새로운 투자 열풍이 일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이 발행하는 기술 전문 잡지 ‘MIT 테크놀로지리뷰’는 지난 11월 말 ‘제2의 클린테크’ 열풍에 대해 이렇게 썼다. 2000년대 초반 일었던 클린테크 열풍은 상용화 단계의 문턱도 밟지 못한 채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오늘날 급부상 중인 ‘클린테크 2.0’은 다르다. 과거보다 기술은 고도화했고 비용은 낮아졌으며, 많은 정부와 기업이 탄소중립(Carbon Neutral·이산화탄소 순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 선언에 나서면서 시장 형성에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게 ‘MIT 테크놀로지리뷰’의 분석이다.

클린테크로 쏟아지는 돈이 이를 증명한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프라이스 워터 쿠퍼스(PwC)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테크(Climate Tech·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기술로 클린테크를 의미) 분야 투자는 2013년 4억1800만달러(약 4537억원)에서 지난해 161억달러(약 17조4733억원)로 뛰었다. 같은 기간 인공지능(AI) 분야 투자 증가율보다 약 3배 높다. 투자 분야도 다양해졌다. ‘MIT 테크놀로지리뷰’는 “과거 클린테크 열풍은 주로 에너지와 교통 부문에 집중됐지만, 지금은 분야가 다양해졌다”며 “벤처캐피털은 카본큐어·보스턴메탈과 같이 콘크리트나 철강 생산 공정을 깨끗하게 만드는 회사, 클라임웍스·오퍼스12와 같이 탄소를 제거하거나 재활용하는 회사, 파차마·인디고Ag·노리처럼 탄소 상쇄 관련 회사 등에 투자한다”고 했다.

글로벌 대기업까지 ‘큰손’ 투자자로 나서면서 오늘날 클린테크 열풍에 기름을 부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테크 공룡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주 광산 기업 리오 틴토와 식음료 기업 유니레버가 전용 펀드를 조성해 클린테크에 투자하고 있다.

제프 베이조스가 이끄는 아마존은 가장 열렬한 클린테크 지지자로 꼽힌다.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아마존은 20억달러(약 2조원) 규모의 ‘기후 서약 펀드’를 통해 클린테크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지난 9월 기후 서약 펀드의 첫 투자 대상 기업이 발표됐다. 전기차 및 배터리 관련 회사인 리비안·턴타이드·레드우드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콘크리트를 만드는 카본큐어, 탄소 상쇄 모니터링 기술 스타트업 파차마가 이름을 올렸다. 베이조스는 “기후 서약 펀드는 저탄소 경제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한다”라며 “2040년까지 이산화탄소량 ‘0(제로)’라는 목표를 위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는 회사들에 투자하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기후 서약 펀드와 별도로 베이조스는 사재 100억달러(약 11조원)를 털어 ‘베이조스 지구 펀드’를 출범했다. 기후 변화 관련 연구기관이나 비영리단체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가 1월 16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탄소 네거티브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가 1월 16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탄소 네거티브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열렬한 지지자’ 아마존과 MS

2050년까지 탄소 네거티브(Carbon Negative·이산화탄소 순 배출량을 마이너스로 만드는 것)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MS도 클린테크 투자 전용 ‘기후 혁신 펀드’를 운영한다. 대기질 모니터링 기술 스타트업 아클리마가 최근 이 펀드의 투자를 받았다. 아클리마는 대기 중 오염물질뿐만 아니라 각종 온실가스양을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측정 결과를 일반인 대상으로 무료 배포하거나 관련 규제에 대응해야 하는 기업에 참고 자료로 판매한다.

공격적인 탄소 감축 경영에 나선 MS 뒤에는 창업자 빌 게이츠가 있다. 게이츠는 2016년 10억달러(약 1조원) 규모의 클린테크 펀드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스’를 만들었다. 평소 친환경에 관심을 가졌던 게이츠는 친분이 있던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아마존의 베이조스 등과 뜻을 모아 이 펀드를 만들었다. 이 펀드는 글로벌 넷제로(Net Zero·이산화탄소 순 배출량 ‘0’이란 뜻으로 탄소중립을 의미)를 달성한다는 목표 아래 클린테크 스타트업에 20년 단위로 투자한다. 초기 개발 단계를 거쳐 상용화까지 지원하기 위해서다. 현재까지 30개가량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는데, 최근 보스턴메탈‧카본큐어‧파차마 등에 투자를 결정했다.


카본큐어가 만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콘크리트 벽돌. 사진 카본큐어
카본큐어가 만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콘크리트 벽돌. 사진 카본큐어

‘온실가스 주범’ 정유사도

온실가스 배출 주범으로 꼽히는 정유사도 클린테크 투자에 나서고 있다. 미국 조사기관 CB인사이츠에 따르면 로열 더치 셸, 사우디 아람코, 셰브론,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토털 등 글로벌 주요 정유사 5곳이 보유한 기업형 벤처캐피털의 클린테크 투자는 2015년 3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27건으로 증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글로벌 주요 정유사가 저탄소 기술과 클린 에너지 스타트업에 점점 더 많은 돈을 투자한다”라며 “(이들 기업형 벤처캐피털은) 과거 탐사나 생산·정제 등 핵심 공정을 보강하는 기술을 찾았지만, 지금은 배터리, 스마트 충전, 탄소 저장 같은 기술 기업을 찾는다”라고 보도했다.

글로벌 정유사 중 BP가 클린테크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2억달러(약 2169억원) 규모의 펀드를 운용 중인 BP가 투자한 미국 스타트업 솔리디아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콘크리트를 생산하는 업체다. 솔리디아의 콘크리트 벽돌 30개는 연간 22㎏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데, 이는 나무 한 그루가 흡수하는 양과 맞먹는다. BP는 천연가스를 동물 사료용 대체 단백질로 만드는 칼리스타에도 3000만달러(약 326억원)를 투자했다. 셸은 에너지 저장 기술 스타트업인 코르부스, 아람코는 나노 기술을 이용해 선박의 배출가스를 줄이는 기술을 보유한 다프네에 각각 투자했다.

정유사는 사업 특성상 이산화탄소 감축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클린테크 투자를 통해 이산화탄소량을 상쇄하고 신사업 모색 기회로 삼는다. BP에서 미주지역 스타트업 투자를 담당하는 메건 샤프는 FT와 인터뷰에서 “투자한 기술을 우리 사업에 적용하고 싶다”라며 “우리는 위험을 감수한 채 돈을 투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임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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