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6일(현지시각)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병원에서 현장 의료인이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며 기념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 AFP연합
12월 16일(현지시각)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병원에서 현장 의료인이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을 맞으며 기념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 AFP연합

한국에서 미국 제약·바이오 기업 화이자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를 개발한 회사로 유명했다. 적어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국 정부가 12월 8일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접종을 시작하자 전 세계는 화이자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는 “화이자의 171년 역사에서 이처럼 혁신이 절실했던 적은 없었다”라며 “치명적인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끝내는 일에 도전했다는 사실에 강한 자부심과 기쁨을 느낀다”라고 했다.

1849년 미국 뉴욕에서 문을 연 화이자는 적극적인 신약 연구·개발(R&D)과 인수·합병(M&A)으로 세계 최대 ‘빅 파마(Big Pharma)’ 중 한 곳으로 성장했다. 코로나19 시대의 유일한 희망이 된 백신 분야에서도 일찍부터 존재감을 과시해왔다. 현재 화이자는 연간 2억 개 이상의 백신을 165개 국가에 공급하고 있다. 또 글로벌 멸균 주사제 공급 업체 가운데 하나로서 매년 10억 개 이상의 멸균 주사제를 생산하고 있다. 화이자의 경쟁력을 세 가지로 분석해봤다.


1│아낌없는 연구 투자

171년 전 화이자의 시작은 식품첨가물 제조사였다. 이후 진통제와 방부제 등을 만들어 팔며 성장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40년대 ‘기적의 약’이라고 불린 페니실린에 과감하게 투자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당시 화이자는 제약 컨소시엄을 꾸려 페니실린을 대량 생산했고, 이를 연합군에 공급해 승리에 기여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각각 항생제인 테라마이신과 바이브라마이신 개발에 투자해 큰 성공을 거뒀다.

글로벌 빅 파마의 반열에 오른 화이자는 1980년 관절염 치료제 펠덴(프록시캄)으로 또 한 차례 성공 신화를 썼다. 신약 개발에 자신감이 붙은 화이자는 R&D 투자를 한층 강화해 1990년부터 회사를 대표하는 신약을 쏟아냈다. 항우울제 ‘졸로푸트’, 고혈압 치료제 ‘노바스크’, 항곰팡이제 ‘디플루칸’,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 ‘카듀라’,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등이 연거푸 등장했다.

꾸준한 신약 개발 도전과 R&D 투자, 성공 경험은 코로나19 백신 개발 레이스에서도 빛났다. 특히 올해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와 미국 정부가 제약·바이오 업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준 덕에 화이자는 백신 개발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집중은 단기간에 우수한 성과로 돌아왔다. 화이자는 백신의 임상 3상 시험을 올해 7월 27일부터 미국·독일·터키·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시작했다. 4만4000명 이상이 이 임상에 참여했다. 임상 3상의 유효성·안전성 데이터에 따르면,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의 유효성은 95%에 이르렀다. 또 전반적으로 내약성이 양호했고,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DMC)에서 보고한 안전성 관련 우려 사항도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 의약 전문지 ‘피어스바이오텍’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화이자는 연 매출의 16.7%인 86억5000만달러(약 9조4500억원)를 R&D에 투자했다. 이는 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 등 국내 주요 바이오헬스 기업의 3년치 R&D와 시설 투자 금액과 맞먹는다. 화이자는 2020년 10월 기준 임상 1상 29건, 2상 36건, 3상 21건, 등록 6건 등 총 92건의 R&D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2│적극적인 몸집 불리기

화이자는 R&D뿐 아니라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매력적인 제약사 인수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는 기업 사냥꾼이라고 불릴 정도로 공격적인 M&A 행보를 보였다. 2000년 워너 램버트를 약 95조원에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2002년 파마시아(약 66조원), 2009년 와이어스(약 74조원), 2010년 킹제약(약 4조원), 2015년 호스피라(약 17조원) 등을 잇달아 사들였다. 15년 동안 M&A에만 250조원 이상을 쓴 셈이다.

이는 아무리 초대형 제약사라고 해도 모든 질병 영역을 커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약 개발은 실패 확률이 90% 이상일 정도로 통과문이 좁다. 화이자를 비롯한 주요 글로벌 빅 파마가 M&A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이유다. M&A를 통해 취약한 파이프라인과 영업망 등을 보완하고, 의약품 특허와 우수 인재 흡수 효과까지 노릴 수 있다.

한국과는 1962년 중앙제약과 제휴를 통해 첫 인연을 맺었다. 7년 후인 1969년에는 중앙제약과 현지 합작법인인 ‘한국화이자’를 출범했다. 한국화이자는 내과 질환, 면역 질환, 희귀 질환, 백신, 항암제, 병원 사업 등 총 6개 사업부를 운영 중이다.

제네릭(복제약) 위주로 성장해 의약품 구성이 비슷하고 자본력이 약한 국내 제약사들은 상대적으로 M&A에 소극적인 편이지만, 최근 신약 개발 강화와 함께 변화 조짐을 보인다. 셀트리온의 경우 다케다제약의 아시아·태평양 의약품 사업부를 3300억원에 인수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2019년 5월 ‘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화이자의 이익이 약 16조원인데, 2030년쯤 되면 이익이 화이자 수준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3│유능한 CEO

거대한 항공모함에 어울리는 훌륭한 선장을 선임한다는 점도 화이자의 장수 비결로 꼽힌다. 이번에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지휘한 불라 CEO는 코로나19 확산세가 본격화한 올해 3월 필립 도미처 화이자 수석 개발자를 불러 “지금부터 당신의 임무는 코로나19 백신을 만드는 것이다. 필요한 게 있다면 무엇이든 요청하라”라고 했다. 불라 CEO는 “성공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심어줬다.

1961년생인 불라 CEO는 그리스 사람이다. 그리스 테살로니키 아리스토텔레스대에서 수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수의사로 일하다가 1993년 화이자에 합류했다. 이후 27년 동안 주요 연구 보직을 거쳤다. 2019년 4월에는 그리스 주재 미국 대사로부터 ‘가장 선구적인 그리스 지도자상’을 받기도 했다.

‘리스크 관리 리더’ ‘경청형 리더’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제프리 킨들러 전 CEO도 화이자의 도약을 이끈 CEO 가운데 한 명이다. 변호사 출신인 킨들러가 CEO 자리에 오른 2006년, 화이자 사정은 썩 좋지 않았다. 제약사 간 특허 침해 소송은 날로 격해졌고, 인도·이스라엘 등지의 신흥 제약사들은 끊임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킨들러 CEO는 그러나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화이자를 부동의 1위 제약사로 키워냈다. 잭 웰치 GE 전 회장은 킨들러 CEO에 대해 “최고의 팀원을 위기 상황에서 똑바로 가도록 이끄는 일류 리더”라고 평가했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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