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목 서울대 약대, 전 대한약사회 회장, 제18대 국회의원, 전 사회보장정보원 원장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원희목
서울대 약대, 전 대한약사회 회장, 제18대 국회의원, 전 사회보장정보원 원장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인류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해결 의지가 통상 5년 이상 소요된다는 백신 개발 기간을 크게 단축했다. 국제 사회의 공조는 실로 놀라웠다. 올해 초 중국 과학자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전자를 공개한 직후 주요국과 국제기구는 견고한 백신 개발 환경을 조성했고, 글로벌 ‘빅 파마(Big Pharma)’들은 그간의 성공 경험을 총동원해 연도가 바뀌기 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선보였다. 백신 접종 기회를 먼저 얻은 이들은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아쉽게도 이 드라마틱한 전개에 한국이 낄 자리는 없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역시 최선을 다해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정부도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했다. 그러나 글로벌 주도 세력과 비교하면 자금력·기술력·경험 등 모든 면에서 한국 앞에 놓인 길은 멀고 험하다.

바이러스의 습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각국의 ‘백신 주권’ 경쟁은 점점 치열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보건 당국과 제약·바이오 업계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힌트를 얻기 위해 12월 10일 서울 방배동에 있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를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하나의 스타 기업이 시장 전체를 주도할 수 없는 제약·바이오 분야의 특성을 잘 이해하면서 산업 육성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원 회장은 규제와 진흥 정책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정부 편제에 대한 필요성도 강조했다.


6월 30일 서울 반포동 쉐라톤서울팔래스강남호텔에서 열린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KIMCo) 발기인 총회. 사진 한국제약바이오협회
6월 30일 서울 반포동 쉐라톤서울팔래스강남호텔에서 열린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KIMCo) 발기인 총회. 사진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글로벌 제약사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백신은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다. 개발은 물론 생산 시설에도 많은 투자가 요구되고, 환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해야 하는 만큼 피험자를 모집하기도 어렵다. 더욱이 예방 백신의 주요 타깃인 영·유아를 상대로 하는 임상은 반감이 커 개발이 더욱더 어려운 실정이다. 과거 제네릭(복제약) 위주로 성장한 국내 제약사들의 백신 개발 역량과 경험치가 글로벌 빅 파마보다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다.”

따라잡을 수 있을까.
“한국이 백신 개발 영역에서 후발 주자인 건 사실이지만,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례로 한국은 기초 백신 28종 가운데 절반인 14종을 자력으로 개발·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 이 역량을 토대로 현재 국내 기업 30여 곳이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에 도전 중이다.”

이미 화이자 등이 백신 접종에 돌입했는데, 한국산 백신이 의미 있나.
“자국민의 접근성을 보장하려면 백신을 자체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신종 감염병 발생 주기가 짧아지고 있지 않나. 제2, 제3의 코로나19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정부는 의약품을 자국민에게 우선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실제로 2009년 신종플루 사태가 터졌을 때, 처음에는 해외에서 백신을 구해오느라 큰 어려움을 겪었다. 수급 문제는 GC녹십자가 백신을 개발하면서 해결됐다.”

업계를 돕고 키워야 하는 건 알겠다. 문제는 ‘어떻게’다.
“반도체의 경우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의 ‘스타 플레이어’가 해당 산업 전체를 이끌어갈 수 있다. 그런데 제약·바이오 산업은 특성이 좀 다르다. 기업마다 잘하는 게 다르고 역할도 다양하다. 해외 빅 파마도 특정 질병 분야에 집중하는 회사가 많다. 모든 종류의 약을 다 잘 만드는 업체는 없다. 선택과 집중을 한다는 말이다. 덩치 큰 외국 제약사끼리 인수·합병(M&A)이 활발한 것도 저마다 잘하는 영역이 달라서다. 강조하고 싶은 말은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을 신종 감염병 백신과 같은 신약 개발 중심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하려면 기업들을 묶어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몇몇 기업에 기회를 몰아주는 식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한 명의 특출난 에이스가 아닌, 끈끈한 조직력의 팀을 만들어야 한다.”

협회도 ‘묶음’ 전략으로 회원사들을 지원하고 있나.
“그렇다. 올해 8월 협회와 56개 제약·바이오 기업이 공동 출자해 출범한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KIMCo·킴코)’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코로나19 치료제처럼 개별 기업이 독자적으로 추진하기 힘든 신약 개발과 생산, 해외 시장 진출 등을 함께하자는 취지로 킴코를 꾸렸다. 킴코 참여사들은 연구·개발(R&D)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혼자서는 쉽지 않은 신약 개발을 해내기로 했다. 기업끼리만 협업하는 게 아니고, 대학·병원·정부·스타트업 등과도 유기적으로 소통한다. 이제 막 시작한 바이오 스타트업이어도 아이디어가 좋으면 자본력을 갖춘 기업과 연결해주고, 그걸 정부가 지원하는 식으로 말이다.”

혼연일치하는 게 구상처럼 쉽진 않을 것 같은데, 가능할까.
“시장 참여자들은 내수 시장과 제네릭만으로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해외로 나가야 하고, 신약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된 지 오래다. 국내 시장은 24조원 규모인 데 반해 글로벌 시장은 1400조원 규모다. 무조건 나가서 세상에 없던 걸 팔아야 한다. 그간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의약품 수출은 최근 10년간 매년 15% 이상의 고성장세를 유지하고 있고, 기술 수출 계약 규모도 올해 10조원을 돌파했다. 그런데 기술 수출은 부가가치에 한계가 있다. 계속 이 정도에 만족할 수는 없지 않나. 우리도 조(兆) 단위 연 매출을 내는 블록버스터급 신약을 만들 때가 됐다. 협회가 올해부터 ‘글로벌 오픈 이노베이션(GOI)’ 사업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유럽 등 선진 제약·바이오 클러스터에 진출하는 것이 GOI의 골자다. 지난 상반기에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기업 연계 프로그램 멤버십에 협회와 14개 사가 가입했고, 케임브리지 이노베이션 센터(CIC)에도 10개 사가 입주하기로 했다.”

정부의 관심과 협조도 무척 중요하겠다. 아쉬운 점은 없나.
“제약·바이오는 규제 성격이 강한 산업이다. 생명과 직결되는 영역이다 보니 안전을 최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어서다. 정부가 정책을 수립할 때도 어려움이 크다. 시장을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흥과 규제라는 상반된 미션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산업이다. 주로 규제는 보건복지부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다루고, 진흥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산업통상자원부가 다룬다. 전자는 진흥에 취약하고, 후자는 규제 개념이 약하다. 그러다 보니 정책 수립 과정에서 엇박자를 낼 때가 종종 있다. 정책이 혼란하면 시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동전의 양면을 모두 이해하고 교통정리할 수 있는 정부 편제가 필요할 때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글로벌 신약 개발 시장에 뛰어드는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계를 위한 진흥 정책이 강조돼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언제까지 외국 제약사들 꽁무니만 따라다닐 것인가. 우리도 국제 무대에서 사고 한번 쳐봐야 하지 않겠나.”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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