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실 연세대 경제학 석사, 미국 미네소타대 경제학 박사, 전 미국 휴스턴대 교수, 전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 현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이인실
연세대 경제학 석사, 미국 미네소타대 경제학 박사, 전 미국 휴스턴대 교수, 전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 현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이인실(64) 전 통계청장(현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은 인사를 나누자마자 ‘한국 경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부닥쳤는지’를 말했다. 준비한 질문을 꺼내기도 전이었다. 그는 “과학과 문화, 인구구조에 걸친 복합적인 충격이 합쳐져 극심한 패러다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지금의 한국 경제가 과연 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고 했다. 2011년 관직에서 물러나 학계에 머문 지 10년째지만, 여전히 현실 경제에 발을 담그며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이 전 청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통계청장을 지냈고, 국내 최대 경제학회이자 5000명의 회원을 거느린 한국경제연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경제연구학회 회장 취임 당시에도 그는 “현실 경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고 조언하겠다”고 밝혔는데, 그때의 생각이 여전한 것처럼 보였다. 2020년 12월 28일 서울 신수동 서강대에서 이 전 청장을 만나 2021년 한국 경제 전망과 앞으로의 과제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이 전 청장이 가장 심각하게 바라보는 문제는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10년 6.8%를 찍은 이후 2019년까지 2~3%대를 맴돌고 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기 부진 탓에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당장 저성장에서 벗어날 묘책도 없고, 한국 경제의 약점마저 두드러지고 있다. 그는 “지난 10년간 저성장을 겪으면서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 들어 재정의 힘으로 이런 상황을 버티면서 더욱 경제의 기초 체력이 약해졌다”고 했다.

‘미국과 유럽 경제가 곤두박질치는 와중에 이 정도면 잘 버틴 것이 아니냐’고 묻자 이 전 청장은 “물론 할 수 있는 만큼 했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글로벌 주요국이 제조업보다 서비스업 중심으로 무역 구조를 바꾸는 가운데 한국이 여전히 중후장대(重厚長大) 제조업에 머물러 있는 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배를 돌리지 못한 것”이라며 “허우대는 멀쩡해도 사실 여기저기 곪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경제 체질이 허약해졌다는 말”이라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20년간 한국의 10대 수출 품목은 반도체, 자동차, 선박·해양구조물 및 부품, 석유제품, 철강판, 무선통신기기, 컴퓨터 등의 품목들만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기업·가계부채 불안…정책 통한 해결 미심쩍어”

곪은 상처는 어디서 터질까. 이 전 청장은 기업과 가계가 모두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위기는 매번 다른 얼굴로 온다”며 “이번에는 기업과 가계부채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동안에는 ‘버블(거품)’이라는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면, 최근에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자산 버블을 말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것.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0년 3분기 말 가계부채는 1682조1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GDP 규모를 넘어섰고, 국가채무는 2020년 846조9000억원으로 1년 사이 100조원 이상 늘었다. 정부의 금융 지원으로 버티고 있지만, 한계 상황에 몰린 기업들도 잇따르고 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이른바 ‘좀비 기업’이 언제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를지 모른다. 이를 두고 그는 ‘블랙아이스(도로 살얼음)’ 위에 있는 느낌이라고 경고했다.

정책적으로 이를 해결할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이 전 청장은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보다는 과도한 재정 지출 위주로 가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이런 비전 유무가 앞으로 더 강력해질 나라와 그렇지 않을 나라를 결정할 것”이라면서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의 함정에 빠진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했다. 선진국 문턱에서 더 박차고 나아가야 하는 한국이 재정 지출 중심의 안이한 정책을 펴면서 너무 쉬운 길로 들어서 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어려운 길이라도 경제 체질을 바꾸는 건 진보 정부가 훨씬 잘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동안의 정책을 보면 방법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고 했다.

지금이라도 한국 경제가 도약하기 위한 방법은 뭘까. 그는 “인적 자본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 건 ‘인적 자본’ 덕분이라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젊은층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투자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필수적으로 노동 시장 변화도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동 시장 유연성과 안정성이 모두 떨어지는 지금의 상황을 개선해야 하며, 관료와 기업 등 한국 조직 문화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성공의 관습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쌓였던 충격이 일시에 터지는 걸 막기 위해선 일종의 구조조정을 계속하면서 누적된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의 혁신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과거 통계청장 시절을 돌이켜보니 혁신을 이끄는 쪽에 서서 이를 지원하는 게 옳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은 경쟁은 하면 할수록 좋다. 과당경쟁이란 단어는 애초에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진혁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