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라엘코리아 대표는 “패션보다도 건강에 직결되는 중요한 제품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김지영 라엘코리아 대표는 “패션보다도 건강에 직결되는 중요한 제품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어찌 보면 그는 굴러온 돌이었다. 서로가 익숙한 다수 사이에 그는 굴러들어온 소수였다. 한국인이 많지 않던 1990년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에서도, 회계 전문가나 이과 출신이 많은 메릴린치증권 화학 업종 애널리스트 업계에서도, 제일모직 공채 출신 남성이 다수였던 삼성 제일모직 남성복 부문에서도,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가 많은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그는 그곳이 낯선 만큼 익숙한 다수보다 더 열심히 해야 했다. 그러나 동시에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일뿐 아니라 인간관계 역시 원만하게 해야 했다. 일도 사람과 관계도 모두 여성용품 스타트업 라엘 한국법인의 김지영(49) 대표에겐 항상 도전이었다.

김 대표는 삼성그룹 최연소 여성 임원 출신이다. 그는 창사 이래 남성만 맡아왔던 남성복 부문 사업부장에 발탁되면서 ‘남성보다도 남성복을 더 잘하는 여성’으로 인정받았다. 그랬던 그가 2018년 돌연 사직서를 내고 다음 해 당시 창업 3년 된 스타트업 한국법인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합류한 것이다. 미국에서 2016년 설립된 라엘은 2018년에 한국 지사를 세웠다.

‘이코노미조선’은 1월 7일 서울시 삼성동의 사무실에서 현재 라엘코리아의 대표이사로 뛰고 있는 김 대표와 만나 ‘굴러들어온 돌’의 도전기에 대해 들었다. 그는 “울퉁불퉁 못난 내 모습을 억지로 숨기고 남처럼 매끈하게 보이려고 하는 건 도전이 아니다”며 “본래 내 모습을 진정성 있게 밀고 나가도 도전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을 박차고 나온 이유는.
“임원 자리에 오르고 난 후, 전처럼 계속 도전할 수가 없었다. ‘도전가’라는 나의 경쟁력이 사라지는 것 같았고 패닉이 왔다. 위로 올라갈수록 내가 하는 일을 단번에 캐치하고 대신해주는 아래 직원이 많아지고, 내가 직접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든다. 일이 편해지고, 사람들이 내 뜻대로 움직이니까 스스로는 일하고 싶어도 못 하게 된다. 오래 일하고 싶은데, 일할 수 있는 능력은 오히려 계속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패션 업계는 1년이 S/S(Spring·Summer), F/W(Fall·Winter) 총 네 가지 시즌으로 나뉘어서 쉴 틈 없이 변화한다. 매 시즌 트렌드는 걷잡을 수도 없이 빠르게 바뀌고,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이러다간 내가 도태될 것 같았고, 그래서 대기업보다 더 빠르게, 실무에서 움직일 수 있는 스타트업으로 옮겼다.”

삼성에서 임원 자리까지 올라가는 여정은 큰 도전이었을 텐데.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게 아니었나.
“분명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나는 1994년 삼성물산에 공채로 입사했으나 당시 상사 부문에 마케팅 직원으로 뽑혔다. 내가 여러 회사를 거쳐서 다시 입사한 곳은 삼성 제일모직, 즉 패션 업계로 내가 처음 공채로 입사한 곳과는 아예 다른 곳이었다. 20~30년간 동고동락했던 제일모직 공채 직원 사이에 외부인인 내가 끼기 쉽지 않았다. 더불어 패션 업계에 상대적으로 여성이 많다고 해도 대부분 디자이너지, 사업이나 경영 부문은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여기서 나는 역사상 최초로 남성복 ‘로가디스’의 사업부장을 맡았다.”

여성인데 남성복을 맡는 게 쉽지 않았겠다.
“그렇다. 역대 남성복 사업부장이 모두 남성이었던 이유는 본인이 입어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승부했다. 내가 갑자기 남성이 돼서 남성복을 입어볼 순 없지만, 컨설턴트와 애널리스트로서 길러온 객관적인 시각을 통해 실제 소비자보다도 날카로운 눈으로 제품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단순히 ‘제가 입어봤더니 체형에 맞아요, 좋아요’가 아니라, 구체적인 수치와 근거를 기반으로 내가 논리 구조를 만들어 회사 내 경영진을 설득했다. 데이터와 자료에 근거해 브랜드 정체성을 바꾸고 판매 채널을 다양화한 뒤, 당시 추락하던 남성복 브랜드의 매출을 반전시켰고 그 결과 임원이 될 수 있었다.”

임원으로서 ‘사람 관리’는 어땠나.
“힘들었다. 나는 술 마시며 서로 ‘형, 형’ 하는 정치를 잘하지 못한다. 그러한 정치력과 친화력도 능력이다. 그걸 잘하는 분들이 멋지고 부럽다. 하지만 난 내가 잘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하려고 하기보단, 나만의 방식으로 내 편을 만들려고 했다. 열심히 연구해서 업계 데이터를 활용해 누가 봐도 설득력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만들었다. 필요하다면 일대일로 직원들을 만나 합리적으로 설득했다. 처음엔 잘 통하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작은 성취를 보여주고, 내 뚝심을 계속 보여주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결국, 진정성이 핵심이다. 그걸 보여주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를 뿐.”

여성용품 스타트업을 고른 이유는.
“내가 임원이 된 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자녀를 출산해 산후조리원에 갔다. 이때 조리원에서 받은 유기농 생리대를 태어나 처음으로 사용하곤 기존에 대부분의 여성 소비자가 쓰고 있던 생리대에 큰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내 몸의 문제라고 치부했던 여러 불편함이 생리대를 바꾸니 싹 사라졌다. 생리대는 별거 아닌, 부수적인 제품으로 여겨지지만 오히려 건강과 직결되는, 신체와 직접적으로 닿는 필수품이다. 그런데 이 분야에는 패션만큼의 투자나 사업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고, 그래서 이곳이 나의 다음 도전 지점임을 확신했다.”

스타트업으로 옮기면서 직면한 도전은.
“초반엔 조직이 작다 보니 사원 때로 돌아간 것처럼 외부 기업의 대리·과장급과 미팅도 내가 다 직접 갔다. 1시간 이상 늦는 상대방을 보면서 처음엔 ‘날 이렇게 기다리게 하네?’라는 생각이 순간 들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0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했다. 또 젊은 밀레니얼 세대 직원이 많고, 이들과 소통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대기업 때와는 달리 젊은 직원들은 회사에 대한 사항을 모두 직접 듣고 싶어 한다. 훨씬 세심하게 소통하고 다가가야 한다.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다시 부탁하고 기다리는 입장이 된다는 일은 어느 정도 연차가 있는 직장인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도전을 위해선 감내해야 한다.”

앞으로의 포부는.
“나의 커리어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안주하지 않았다. 마케팅에서 경영으로 나아가고자 유학을 했다. 이과도 아니고, 회계나 재무 관련 배경도 없는데도 화학 산업 분야 애널리스트가 되기도 했다. 남들의 길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가겠다.”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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