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호현 옥소폴리틱스 대표는 “결국 대한민국이 잘돼야 나도 잘된다는 것을 깨닫고, 정치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유호현 옥소폴리틱스 대표는 “결국 대한민국이 잘돼야 나도 잘된다는 것을 깨닫고, 정치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나’에 대한 이야기는 홍수를 이루지만, 공동체로서의 ‘우리’는 가라앉고 있다. 경제가 어려운 만큼 내 앞가림하기 바쁜 각자도생의 시대. 나를 넘어선 사회나 국가를 걱정하는 것조차도 치기 어린 낭비나 무모한 도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정치 플랫폼 스타트업 ‘옥소폴리틱스’의 유호현(41) 대표에게도 ‘나’가 아닌 ‘우리’를 생각하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다. 그는 대부분 그러하듯 본인의 욕망에 집중해왔다. 하고 싶은 공부를 이어 가기 위해 박사과정 유학길에 올랐고, 이후엔 실리콘밸리 최고의 엔지니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글로벌 기업 트위터와 에어비앤비에서 일했다. 개인으로서의 그는 성공 가도를 달리며 연봉 5억원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됐다. ‘나’라는 사람의 욕망이 채워지자, 그가 눈길을 돌린 곳은 ‘우리’였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7년간 일했다. 푸른 눈의 직장 동료들 눈에 유 대표는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하나의 덩어리였다. 아무리 ‘나’에 집중하려고 해도, 한국에선 자주 생각하지 못했던 한국인의 정체성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해외에서 ‘나’는 아무리 잘나가도 결국 ‘우리’였다.

지난해 에어비앤비를 나온 그는 여러 정보기술(IT) 기업의 러브콜을 마다하고 정치 플랫폼 스타트업인 옥소폴리틱스를 지난해 7월 서울에 설립했다. 무료로 운영되는 이 정치 플랫폼에서 이용자들은 자신의 정치 성향에 따라 다양한 ‘부족’으로 나뉘어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고 회사는 이를 데이터화한다. 차후 구독료를 받고 유료 회원에겐 플랫폼이 수집한 데이터를 제공할 예정이다. 정치인을 대상으로 온라인 지지 광고 등도 모집할 계획이다. 퓨처플레이와 해시드로부터 지난해 8월 시드 단계 투자를 받았다.

이처럼 그는 ‘우리’를 위해 한국 정치를 바꾸겠다는 도전장을 내놓았다. ‘이코노미조선’은 1월 8일 서울 역삼동에서 유 대표를 만나 그의 도전기를 들었다. 그는 미국 실리콘밸리 자택에서 회사를 경영하지만, 최근 행사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옥소폴리틱스는 별도의 사무실 없이 모든 임직원이 원격근무를 한다.


옥소폴리틱스는 어떤 기업인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 플랫폼이다. 수만 명이 참여한 정치 이슈 관련 OX 퀴즈의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개인이 간단한 18개의 OX 퀴즈를 통해 자신의 정치 성향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이용자는 이를 기반으로 호랑이(강경 진보), 하마(중도 진보), 코끼리(중도), 공룡(중도 보수), 사자(강경 보수) 총 다섯 가지 부족으로 나뉜다. 이용자들은 자신의 ‘부족 톡(채팅방)’에서 정치적인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일본군 위안부 배상 판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공매도 금지 등 다양한 주제로 만들어진 채팅방에서 다른 부족과 토론을 하기도 한다. 다양한 이슈에 대한 각 부족의 의견부터 각 부족이 지지하는 정당, 소비하는 언론 등의 정보는 시각적인 데이터로 정리된다. 민주시민이자 유권자인 개인 간의 소셜미디어(SNS)이자 정치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는 플랫폼이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처럼 정치인이 직접 의견을 개진하고 이용자의 의견을 수집하기도 한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정치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는.
“미국에서 본 2016년 대한민국의 ‘촛불 혁명’은 나와 세계인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한 미국인 친구는 내게 ‘한국인 개발자들이 일을 잘하는 건 한국 정치가 발전됐기 때문이구나?’라며 칭찬하기도 했다. 2016년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은 미국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은 간접 투표가 기본이고, 또 엘리트정치다. 게다가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에도 결국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다.”

단순 관심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텐데, 창업까지 한 이유는.
“나는 트위터에서 실시간 인기 한글 트윗 키워드인 ‘한국어 트렌드’를 직접 개발했다. 그런데 내가 만든 그 트렌드가 양 진영의 음모설과 극단적인 비아냥으로 점철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내가 계속 좋은 회사에서 좋은 서비스를 개발해도, 결국 정치 그 자체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면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 이후 한국 정치는 오히려 더 후퇴했다. 극단적인 10%의 의견은 과도하게 대변됐다. 나머지 90%는 정치에서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개인은 자신이 어떤 정치 성향을 지녔는지도 알 수 없게 됐다. 다양한 사람들이 대화할 수 있는 공간도 극단적인 10% 때문에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머지 90%를 위한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다. 단순한 좌우가 아니라 구체적인 질문에 따라서 자신의 정치적 스탠스를 확인하고, 합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플랫폼 말이다.”

왜 한국인가.
“해외에서 한국인으로 살다 보니, 한국이 잘돼야 결국 내 위상도 올라간다는 점을 깨달았다. 에어비앤비에 중국인 직원은 몇백 명이 있었지만, 한국인 직원은 20명도 안 됐다. 수도 적고 힘이 약한 국가일수록 ‘나’만 뛰어나면 모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잘돼야 한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상을 타거나 손흥민 선수가 골을 넣는 것. 다 내게도 플러스가 되더라.”

창업은 언제부터 준비했나.
“2016년 이후 3년간에 걸쳐 조금씩 플랫폼을 만들어나갔다. 그러다 지난해 에어비앤비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내가 속한 팀이 사라져 퇴사했다. 수십 곳에서 더 높은 연봉을 제시했다. 그러나 드디어 서비스를 실행할 기회가 온 것 같아 모두 거절하고 옥소폴리틱스를 창업했다.”

이번 도전은 어떤 의미가 있나.
“지금껏 나의 도전은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렀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만 초점을 맞췄다. 어릴 때부터 레고와 컴퓨터 게임을 좋아했다. 마치 레고를 맞추듯이 소리와 뜻을 끼워 맞추는 영어학과 컴퓨터 속 세상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정보학을 공부해서 교수가 되려고 유학을 떠났다. 그러다 실리콘밸리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겨 박사과정을 그만두고 트위터에서 우리말 처리 프로그램을 만드는 팀에 엔지니어로 취업했다. 그러나 이번 도전은 한국인으로서의 우리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정치인이나 정당의 광고 노출, 이용자 중 인기가 있는 ‘인플루언서’를 정치인으로 정당에 추천하기 등을 수익 모델로 검토하고 있다.”

앞으로의 포부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겠다. 영어학 박사가 되려던 도전은 실패했지만, 결국 또 다른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나는 방향만 올바르다면 어떻게든 성공한다고 굳게 믿는다.”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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