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화그룹
사진 한화그룹

지난해 9월 말 한화그룹에서 68년 역사상 첫 여성 CEO(최고경영자)가 탄생했다. 주인공은 김은희 한화역사 신임 대표이사. 갤러리아백화점을 운영하는 한화갤러리아 기획부문장을 맡고 있던 그는 한화갤러리아 상무로 승진하며 한화역사 대표이사로 발탁됐다. 보수적이라 여겨진 한화그룹에서 첫 여성 CEO가 배출된 것도 놀랍지만, 나이도 만 43세. 오너가를 제외하면 그룹 내 최연소 CEO다. 유리천장을 깨뜨린 젊은 여성 리더다.

한화갤러리아 변화추진팀, 한화갤러리아 경영기획팀장을 거친 김 대표는 기획통으로 통한다. 불확실한 대내외 환경 속에서 기업들의 최대 관심사인 사업 혁신과 신규 사업 추진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대표는 1월 18일 ‘이코노미조선’과 가진 취임 후 첫 인터뷰에서 자신만의 킬러 콘텐츠에 대해 “늘 기존의 업무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줘 새롭게 발전시키려 노력한다”며 “변화를 빠르게 흡수해 흔들림 없이 결과물을 도출하는 데도 중점을 둔다”고 밝혔다.

그가 한화역사 대표이사로 낙점된 것도 이런 혁신 DNA 덕분이다. 한화역사는 서울역과 청량리역사를 개발해 운영하는 것을 주요 사업으로 한다. 백화점 도·소매업도 한다. 한화역사는 상업 시설 개발, 운영 분야에도 적극 진출하고 있다. 현재 서울역 북부역세권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김 대표는 “한화역사는 새로운 변화와 도약이 필요한 시기”라며 “갤러리아에서의 사업 혁신과 신규 사업 동력이 한화역사에서도 구현되도록 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했다.

그가 한화갤러리아 기획부문장 시절 이뤄낸 대표 혁신작은 VIP 공간 ‘메종 갤러리아’다. 업계 최초로 백화점 밖에 VIP만의 살롱 콘셉트의 공간을 만든 것. 2019년 10월 한화갤러리아가 대전 유성구에 문을 연 메종 갤러리아는 대전 지역 VIP 커뮤니티로 자리 잡았다. 덕분에 신규 VIP 유치와 VIP 매출 증대 효과도 좋았다. 또 다른 성공작은 프리미엄 리빙·다이닝을 결합시킨 ‘고메이 494 한남’. 이곳에는 ‘메종 갤러리아’ 2호점도 열었다. 김 대표는 “고메이 494 한남은 강남 중심의 갤러리아 VIP 고객을 용산·강북 지역까지 확대시켜준 효과를 냈다”며 “지난해 갤러리아 명품관 매출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외국인 매출이 90% 이상 역신장했음에도 ‘고메이 494’ 덕에 매출 감소분이 상쇄됐다”고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한화역사도 코로나19 타격이 크지 않았나.
“지난해 코로나19로 철도를 타고 움직이는 유동인구가 전년보다 45% 줄었다. 외국인 관광객 매출이 급감했다. 카페·음식점 등이 영업 제한을 받으면서 회사 매출과 영업이익이 많이 줄었다. 올해는 회사를 복합 상업 시설 개발·운영 전문회사로 성장시키면서도 동시에 지속적인 수익 창출 모델을 개발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일하는 방식과 조직 문화도 유연하게 변화시킬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준비 중인가.
“우선 서울역사 MD(매장 구성) 강화에 주력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서울역사 매장은 많은 유동인구를 기반으로 한 철도역사라는 특성에 맞춰 대중성·신속성·안전성 관점에서 운영됐다. 향후에는 철도 이용객뿐 아니라 역사 내 준비된 특별한 매장을 경험하고자 방문하는 이용객을 늘리려 한다. 변화하는 트렌드, 고객의 니즈를 더 정확하게 반영해 차별성·화제성·고급화에 중점을 두고 매장 변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특히 근처 직장인이 선호하는 특색 있고 품격 있는 외식 공간을 구성하고, 가족 단위 고객층이 선호하는 매장을 보강할 것을 검토 중이다.”

그룹 내 첫 여성 CEO가 된 소감은.
“항상 경쟁에 앞서겠다는 생각보다는 ‘일할 때만은 철두철미하게 임하자’는 원칙을 갖고 집중했다. 그룹 내 첫 여성 CEO로서 영광스럽지만 동시에 책임감도 크다. 앞으로는 한화그룹에서도 나이와 연차에 상관없이 전문성과 역량을 보유한 여성 CEO가 많이 나올 것으로 본다.”

한화그룹은 2010년 여성 인력을 확보·육성해 여성 CEO를 배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현실이 됐다.

워킹맘으로서 어려움은 없었나.
“2010년 과장 직급 때 출산한 만 10세의 딸이 한 명 있다. 당시 3개월 출산휴가만 내고 빠르게 복직했다. 그때는 육아휴직을 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나도 출산 후 일에 대한 조급함이 컸다. 아이가 엄마를 필요로 할 때 늘 같이 있어 주지 못한 미안함도 있다. 지금은 많은 게 변했다. 한화그룹도 일과 가정의 양립지원제도가 정착됐다. 남녀를 불문하고 육아휴직을 활발하게 사용한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인식도 나아졌다. 물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일과 가정 양쪽의 일을 모두 잘 해내려고 하면 본인이 지치는 ‘번아웃’ 현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후배들에게 긴 호흡의 경주에서 자신의 정신 건강과 컨디션을 잘 관리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려울 때 혼자 버티지 말고, 가족과 선배들에게 조언과 위로를 받는 게 꼭 필요하다.”

본인은 워라밸을 잘 지키고 있나.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는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대리·과장 시절 불가피하게 야근을 할수록 효율성이 떨어지는 ‘야근의 역설’을 경험했다. 워라밸의 지름길은 ‘짧고 굵게 일하기’다. 주어진 업무 시간에 최대한 집중해 업무를 끝내고, 일을 집에 갖고 가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퇴근 후 재충전은 필수다.”

젊은 임원으로서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젊은 임원은 비교적 젊은 세대의 트렌드 변화를 빠르게 포착하고 여기에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응해, 이를 사업에 빨리 적용한다는 이점이 있다. 급변하는 미래 경영 환경에 대비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젊은 임원을 늘리는 게 당연하다. 한화그룹이 계열사별로 독립 경영 체계를 확립한 이유 중 하나도 전문경영인이 빠르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경험과 연륜이 부족한 점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선후배들과 자주 소통해 마음을 움직이고, 조직원의 지혜를 배우려 노력하는 게 대응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CEO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한계에 부딪힐수록 미래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이라 여기고, 자신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부족함을 채우는 기회로 여겨야 한다. 직장 생활에 조력자가 필요하고 때로는 자신이 조력자가 돼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항상 주변 사람과 함께라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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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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