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2019년 10월, 만 38세에 대표이사로 취임, 입사 12년 만에 사원에서 수장으로. 스타트업에서나 가능해 보이는 초고속 승진처럼 들린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발표한 대기업 순위 36위의 이랜드그룹에서 벌어진 일이다. 취임한 지 1년 3개월 된 윤성대(40) 이랜드파크 대표 이야기다. 이랜드파크는 켄싱턴호텔·리조트와 애슐리, 이월드, 베어스타운, 이크루즈 등 그룹의 외식·레저 사업을 영위하는 중간 지주사다.

윤 대표는 입사 8개월 만에 주임으로 승진하는 등 총 네 번의 특진을 했다. 동기들은 대부분 과·차장이다. 오너가가 아닌 직장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다. 어떤 사람일지 만나기 전부터 궁금해졌다.

1월 13일 이랜드파크가 운영하는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취임 후 첫 인터뷰에 나선 윤 대표를 만났다. 윤 대표가 기진맥진한 모습의 젊은 직원 두 명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그는 제주 켄싱턴리조트 서귀포점과 자금팀의 대리급 직원과 1시간가량 회의를 끝내고 왔다고 했다.

“대표님이 대리급과 1시간 회의할 일이 있나요”라는 물음에 “둘은 이랜드그룹이 운영하는 경영자스쿨 새싹반 소속”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경영자스쿨은 직원의 자발적인 지원 혹은 선발을 통해 운영되는 그룹 차원의 인재 육성 프로그램이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교육받는다. 경영자스쿨 새싹반에서 발탁되면 총지배인급으로 1단계 승진한다. 2단계에서 발탁되면 사업본부장급으로, 3단계에서는 법인장으로 육성된다. 윤 대표는 “새싹반이라는 귀여운 명칭과 달리 두 대리에게 회사의 수십억원짜리 프로젝트를 맡겼다”며 “사업 발제는 내가 했지만, 이를 해결할 아이디어는 둘의 몫인데 결과에 따라 승진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젊은 나이에 대기업 계열사 대표이사가 된 비결을 물었다. 그는 “아이디어와 강한 추진력”을 꼽았다. 이어 “이랜드는 누구나 손들고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됐고, 실제로 현실 가능성이 있으면 권한과 책임과 함께 이를 실현할 기회를 준다”며 “나는 이를 매우 잘 활용했다”고 했다. 이랜드에서는 경영자스쿨 소속이 아니라도 누구나 법인장·대표에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고 한다. 다음은 윤 대표와 일문일답.


성과를 낸 대표적인 아이디어가 뭔가.
“대리 시절 인재를 경영자급으로 키우는 이랜드경영전략(ESI)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대학생 인턴을 인수합병(M&A) 혹은 수십억원 규모의 투자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모델이다. 1억5000만원의 예산을 따냈다. 2017년 퇴사 후 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던 2018년 차장으로 재입사했을 때는 다양한 자금 유치 아이디어를 냈다. 아이디어가 채택되면서 부장으로 특진해 이랜드파크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게 됐다. 2019년 이랜드파크가 외식사업부문을 분리해 이랜드이츠를 출범하는 과정에서 1000억원의 외부 자금을 확보했다. 당시 금융권에서 그룹 내 하나 있는 상장사 ‘이월드’를 제대로 키워야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을 받았다. 이를 반영해 이랜드월드에서 빛을 보지 못한 주얼리 사업부를 떼어내 이월드로 붙였다. 이랜드파크 부채 비율은 2018년 말 400%였는데, 2019년 말 130%까지 내려갔다.”

승진을 위해 직원들이 앞다퉈 아이디어를 낼 것 같다.
“생각보다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야기되는 아이디어만 채택되니 사서 고생하기 싫은 것이다. 어차피 월급은 나오지 않느냐. 10명 중 1명도 도전 안 한다.”

막내 직원이 중간관리자를 건너뛰고 대표에게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게 가능한가.
“지난해 11월 켄싱턴 한림점에 출장을 갔다. 당시 총지배인은 자리를 비웠다. 프런트 직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으니 그 자리에서 30분간 한림점의 발전 방향에 대한 의견을 쏟아내더라. 이후 해당 직원, 회사 최고재무책임자, 총지배인을 불러 프런트 직원의 의견을 현실화할 세부 개발 계획, 설계도를 완성하라고 지시했다. 프런트 직원은 이를 잘 수행하면 승진하지 않을까 싶다. 지배인도 지점에 투자가 단행되니 좋아한다.”

중간에 퇴사는 왜 했는지 궁금하다.
“그룹에서 가능성만을 보고 재무 경험이 없어도 최고재무책임자로 승진시켜줬다. 경험은 부족해도 추진력을 무기로 무엇이든 자신 있었다. 하지만 2017년 그룹 인사최고책임자로 발령 났을 때는 생각이 달랐다. 그룹 인사 책임자는 정년퇴임까지의 삶의 무게를 아는 연륜 있는 사람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당시 내 나이는 고작 만 36세였다. 그러던 중 회사가 유동성 위기를 겪자 김일규 부회장 등이 재입사를 권해 돌아왔다.”

젊은 대표의 장단점은 뭘까.
“연륜에서 나오는 경험은 부족하다. 하지만 주 고객층 나이에 맞춰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는 데는 강점이 있다. 꼭 나이가 젊을 필요는 없지만, 고객과 유사한 생활을 하면 성과가 좋은 것은 당연하다. 가령 이랜드 중국법인에서 아동복 포인포 브랜드장을 맡았을 당시 한 달에 수십만원어치의 옷을 사 아이에게 입혔다. 특히 40만원짜리 롱패딩을 아이에게 사줬는데 아이는 ‘지퍼를 올리는 게 불편하다’며 입지 않았다. 이러한 의견은 소중한 피드백이 됐다. 핵심 인재에게 젊은 대표에 도전하고 싶다는 야심을 심어주는 긍정적인 영향도 있다.”

젊은 임원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마음에 드는 이성과 결혼하려면, 고백부터 해야 하지 않느냐.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말을 하고 이를 실행하라. 출사표를 던지고 책임져라. 임원을 빨리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 해내 회사에 기여해야 한다.”

코로나19로 이랜드파크도 어렵지 않나.
“리조트·호텔 매출이 지난해(2019년 대비) 40% 정도 줄었다. 하지만 무리한 욕심은 버리고 안전 경영을 하기로 했다. 올해는 강원도 속초, 제주 등에 리조트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인허가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해운대 콘도도 리뉴얼할 예정이다. 제주도 등에 내년 3월을 목표로 선보일 한옥 호텔도 준비해야 한다. 이랜드그룹은 고객이 3박 4일간 머물면서 쇼핑, 놀이공원, 유람선, 외식 등을 즐길 수 있는 테마 도시를 만드는 게 큰 목표다. 이랜드가 아직 1등 호텔 브랜드는 아니지만 고객에게 인정받고, 직원들에게 자부심 줄 수 있는 호텔을 만들고 싶다.”

빨리 올라, 빠른 퇴직이 걱정되지 않나.
“그룹의 최종양(59) 부회장도, 김일규(63) 부회장도 모두 30대에 CEO가 됐지만, 현업에 있다. 설악밸리 총지배인도 이전 직책이 호텔본부장이다. 도전하는 마음만 있다면, 직급이 내려가도 회사에 기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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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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