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GS홈쇼핑은 허태수 GS그룹 회장이 대표이사이던 2010년부터 국내외 벤처기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재무적 투자가 아니었다. 벤처의 도전 정신과 GS홈쇼핑의 혁신 의지를 유기적으로 결합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이자 급변하는 유통 환경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었다.

허 회장은 신사업전략그룹에 CVC(기업벤처캐피털)를 만들어 GS홈쇼핑의 벤처 투자를 맡겼다. 2020년 3분기 기준 GS홈쇼핑은 전 세계 800여 개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투자 잔액은 4600억원에 달한다. 밀키트(반조리 간편식) 전문 기업 ‘프레시지’, 딥러닝 기반 모바일 광고 솔루션 기업 ‘몰로코’, 식품 비디오 커머스 ‘쿠캣’ 등이 GS홈쇼핑이 만든 혁신 생태계에 들어왔다.

CVC사업부의 핵심 멤버는 GS홈쇼핑 임원 가운데 최연소인 이성화(43) 상무다. 액센추어, 보스턴 컨설팅 그룹 등 글로벌 컨설팅 업체를 거쳐 2017년 GS홈쇼핑에 합류한 이 상무는 입사 3년 만에 이 회사의 미래 먹거리 발굴을 책임지는 중책을 맡았다. 1월 14일 오후 이 상무를 만나러 서울 문래동 GS홈쇼핑 본사를 찾았다. 청바지 차림에 검정 재킷을 걸친 그가 유쾌한 미소를 띠며 손을 내밀었다.


GS홈쇼핑에 입사한 계기가 궁금하다.
“GS홈쇼핑이 CVC를 처음 만들 때 외부 컨설턴트로 컨설팅 업무에 참여했다. 이를 계기로 나중에 ‘CVC 전략을 네가 짰으니 와서 직접 실행까지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CVC에 대한 대표이사(허태수 회장)의 의지가 정말 강했다.”

어떤 사명감으로 일하나.
“GS홈쇼핑은 TV·온라인 등을 통해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다. 소비자 관심사나 딜리버리 방식 변화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시장 변화 속도가 무척 빠르다. CVC는 본업에서 조금 벗어나 이 변화를 주시하는 수색대 역할을 한다. 어떤 벤처기업의 통통 튀는 아이디어가 GS홈쇼핑과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을지, 24시간 관찰하고 투자 대상을 물색한다.”

요즘 관심 있게 보는 분야가 있는지.
“소셜미디어(SNS) 기반 셀러들의 동향이다. 이 시장이 이제는 메이저로 넘어오고 있다. 셀러 한 명의 판매 규모가 엄청나다. 과거에는 대형 브랜드가 목돈을 투자해서 제품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셀러 개인이 PB(자체 상표) 제품을 만들어서 큰돈을 번다. 판매자도 점점 틈새화하고, 고객도 그런 것에 더 매력을 느낀다.”

젊은 리더가 필요한 일 같다. 젊으니 어떤 점이 좋나.
“일을 잘하려면 동료와의 관계가 중요하지 않나.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과 (심적) 거리가 좁다는 게 장점 같다. 후배들과 많은 걸 공유할 수 있는 세대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오기 전 직원들에게 물어봤다. 카카오톡 대화를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점, 의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 그래서 불필요한 심신(心身)의 지침이 없다는 점 등을 말하더라. 윗분들도 내가 어린 임원인 걸 아니까 도전적인 의견을 내도 경청해주는 편이다.”

남과 비교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자신만의 무기가 있나.
“많은 회사가 임원을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보다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의 맥락에서 본다. 임원 트랙에서는 업무 역량도 중요하지만,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전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두 역량과 관련해 강점이 있다고 본다. 의사소통 능력은 곧 고객 중심 사고가 잡혀 있느냐다. 난 대화할 때 상대방 의중을 잘 포착하는 편이다. 전후 사정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솔루션을 내놓는다. 또 두괄식으로 먼저 말하거나 미괄식으로 끌어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안다.”

선천적으로 눈치가 빠른 건가.
“연마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MBA를 다녀와 컨설팅 일을 하면서 고객 중심 사고를 갖추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 개인적으로나 일적으로 꾸준히 훈련하니까 잔근육이 생겼다. 문제 해결 능력도 같은 맥락에서 키웠다. 컨설팅 업무가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며 해법을 제시하는 일 아닌가.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해서 연습했다. 회사 후배들에게도 이 훈련을 많이 하라고 당부한다.”

효과적인 문제 해결 훈련법을 소개해달라.
“어떤 문제 상황을 가정하고 해결해보는 시뮬레이션 방식을 추천한다. 가령 지금 이곳에 의자가 많은데, ‘효율적인 동선 관리를 위해 좌석 배치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든지 ‘1층 로비의 카페를 위로 옮겨야 하는데 몇 층이 가장 적합할까’라든지. 정답은 없지만 업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평소 성격은 어떤가.
“살면서 많은 위기의 순간이 있었는데, 막상 나중에 떠올리려고 하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낙천적인 성격 덕분이라고 본다. 물고 늘어지는 성격이 아니다. 이런 성격은 회사 일을 할 때도 영향을 준다. 가령 열심히 발굴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경영진의 반대로 무산될 때가 있다. 이때 경영진을 끈질기게 설득하는 것만이 프로의 자세는 아니다. 내 판단이 맞는다고 생각해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난 그런 걸 잘한다.”

갈등을 회피하는 것 아닌가.
“경영진 입맛에 맞추는 게 아니다. 나는 회사를 내 고객으로 인식한다. 난 고객의 요구 사항에 맞춰 온 힘을 기울일 뿐이다. 고객에게 도움이 된다고 여겨 추천했는데 (고객이) 아니라고 하면 포기할 수 있다. 내가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을 유지했다면, 투자 건이 관철되지 않더라도 당당할 수 있고 긍정적일 수 있다.”

실력이 정말 뛰어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태도다.
“실력은 기본이다. 그래야만 하는 세상 아닌가. 그리고 직장인이 회사를 바라보는 관점도 점점 달라지는 것 같다. ‘임원’ 자체를 지상 과제로 두면 남을 밟아서라도 성과를 내야 하는 사람으로 변한다. 얼마나 불행한가. 요즘 젊은 인재들은 내가 창출할 수 있는 가치에 집중하면서 회사 미션을 수행해주는 계약자로 자신을 규정한다.”

오너나 경영진은 내심 말 잘 듣는 충신을 원하지 않을까.
“과거에는 누가 줄을 잘 섰나, 누구와 친한가가 임원 승진의 조건이었을지 모른다. 이 분위기가 아예 사라졌다고 할 순 없겠지만, 많이 변했다. 밖은 전쟁터다. 능력자를 대접하지 않으면 전쟁에서 진다. 이 사실을 경영진이 모르겠나. ‘젊고 유능한 인재 모셔오기’는 모든 대기업의 핵심 과제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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