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닌텐도 등은 저출산 기조에 성인 고객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사진은 레고로 만든 꽃다발. 사진 레고
레고, 닌텐도 등은 저출산 기조에 성인 고객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사진은 레고로 만든 꽃다발. 사진 레고

“탈출이 필요하십니까? 레고를 조립하세요.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행복이 커집니다.”

1932년 덴마크에서 문을 연 유명 장난감 회사 레고가 스트레스에 찌든 어른 고객을 모시고 있다. 레고는 “블록 쌓기를 통해 마음 챙김을 하라”며 “언제든 부수고 다시 새로운 장난감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한다. 또 사탕수수 레고로 만드는 꽃다발, 벚나무 등을 선보였다.

레고의 변신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레고는 2000년대 초반 부도 위기를 겪은 뒤 타깃층을 바꿨다. 당시 레고의 위기는 사업 다각화 실패와 선진국 저출산 추세, 디지털 게임의 인기가 맞물린 결과였다. 이에 레고는 본업에 집중하며 고객층을 성인으로 넓히는 전략을 택했다. 타워브리지 같은 건축물 레고부터 할리 데이비드슨의 모터사이클 레고, 람보르기니·포르쉐의 슈퍼카 레고까지 판매하며 키덜트(kidult·아이 같은 어른)족의 눈길을 잡았다.

레고의 타깃 변화는 전화위복이 됐다. 현재 전 세계에 있는 레고의 성인 팬(AFOL)은 100만 명에 달하고, 이들이 연간 판매량의 20% 정도를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레고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도 실적이 개선됐다. 레고 그룹의 2020년 상반기 판매량은 전년도 상반기 대비 14% 늘었고, 같은 기간 매출은 7% 증가한 157억덴마크크로네(약 2조8000억원)를 기록했다. 닐스 크리스티안센 레고 그룹 최고경영자(CEO)는 “더 많은 가족이 레고를 가지고 놀았고, 어려운 레고를 조립하는 것을 즐기는 어른이 늘어난 덕분”이라고 했다.

인구절벽으로 어린이용 제품을 판매하는 많은 기업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지만, 고객 타깃을 바꾸는 식의 카멜레온 전략으로 생존을 모색하는 기업들도 있다. 저출산 시대에 어른 고객에게 초점을 맞춰 기회를 발견하는 방식이다. 일본 게임 업체 닌텐도는 게임 고객의 연령대를 5~95세로 늘리고 ‘온 가족이 좋아하는 게임’을 출시했다. 일본 디즈니랜드는 60세 이상 할인, 조부모·자녀·손주 3대가 오면 할인해주는 제도를 내세워 추억을 가진 시니어들을 잡는 데 성공했다.

건담 프라모델로 유명한 일본 장난감 브랜드 반다이도 고객층에 변화를 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다. 반다이는 어린이 고객이 줄면서 시장이 위축되자, 키덜트족을 위한 건담과 고령자용 장난감을 선보였다. 고령자용 장난감은 어른 손에 맞게 크기를 조절하고, 노안에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설명서 글자를 키우며 편리함을 더했다. 또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신체와 정신력에 도움이 되고, 손자와 함께 놀 수 있다’고 강조하며 구매 수요를 자극했다.

180년 전통의 독일 연필 회사 스테들러는 색칠놀이를 ‘어른을 위한 취미’로 인식시키며 시장을 키웠다. 색칠놀이는 어린이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덕분이다. 스테들러는 ‘컬러링북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숨겨진 창의성을 찾게 도와준다’고 홍보하고, 스코틀랜드 일러스트레이터 조해너 배스포드와 손잡고 색칠 기법을 알려주는 방식을 택했다. 스테들러의 2019년 매출은 3억8000만유로(약 5100억원)로, 10년 전(2억2600만유로)에 비해 46% 늘었다.

에씨티, 유니참, 유한킴벌리 등 글로벌 위생용품 기업들은 저출산으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에서 성인용 기저귀 시장이 빠르게 커지자 성장 기회로 삼고 있다. 이들은 성인용 기저귀가 가지고 있는 ‘간병’ 이미지를 없애고,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제품’이라는 인식을 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기저귀를 찬 것을 남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노년층의 심리를 반영해 들뜨지 않는 소재와 디자인을 활용하고, 노화와 연관 짓는 마케팅을 피하고 있다.

단순히 어린이용 제품을 팔던 기업들만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요 타깃층이 성인이었던 기업도 고령화에 맞춰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오토바이 제조 업체인 할리 데이비드슨과 BRP는 주요 소비자였던 북미 베이비부머 세대가 나이를 먹으며 무거운 이륜 오토바이 운전에 어려움을 겪자 삼륜 오토바이를 선보였다. 미국의 가전제품 업체 월풀, 독일의 자동차 부품 업체 보쉬 등은 허리에 부담이 덜 가는 가전제품을 선보이고 나섰다.

일본 유통 업체의 생존 전략도 눈에 띈다. 도쿄 게이오백화점은 주요 고객층인 중년 여성과 비슷한 연령대인 베테랑 시니어 직원을 배치했다. 또 옷걸이, 진열대, 상담 의자 등의 높이를 낮추고, 에스컬레이터도 다른 매장보다 천천히 가도록 만들었다. 일본 유통 대기업 이온은 55세 이상 고령층 전용 대형마트 ‘G·G(Grand Generation)몰’을 세우고 다양한 노인 전용 운동 프로그램을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plus point

[Interview] 이성철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
“韓 기업, 베이비붐 세대 덕에 기회 있다”

이성철 한국전문경영인학회 19대 회장, 한국 기업경영학회 부회장, 한국노인상담소 실버정책 수석위원
이성철
한국전문경영인학회 19대 회장, 한국 기업경영학회 부회장, 한국노인상담소 실버정책 수석위원

한국의 고령화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2000년 고령화 사회 문턱을 넘은 한국은 65세 이상이 인구의 20%를 웃도는 초고령 사회를 넘보고 있다. 급변하는 2020년대 내수 시장에서는 어떤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코노미조선’이 이성철 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에게 실버산업 전망에 대해 물었다. “고령화가 기업에 큰 기회를 주고 있다”는 그는 “실버 전용 제품이란 없다. 고령화에 대한 편견부터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령화가 되레 기업에 기회가 된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노인, 중장년층이 늘고 아기가 태어나지 않으면서 늘고 있다. 기업들이 주요 내수 시장을 중장년층을 위한 시장으로 전환한다면 10~20년간은 큰 문제가 없다. 이미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에 태어난 세대)가 내수 시장에서 버팀목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6·25전쟁 이후부터 쭉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근원이 되어 왔다. 또 한국 역사상 가장 가처분 소득이 많고, 고학력인 데다 인구도 많은 세대다. 기업들이 이런 중장년층을 버려진 시장으로 생각한다면, 굉장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다.”

어떤 산업에 기회가 있을까.
“고령 사회라고 ‘갑자기 없던 산업이 뜰 것’이라는 생각은 난센스에 가깝다. 중장년 소비자뿐 아니라 노년층 소비자도 ‘나는 노인이니까 노인 전용 제품을 쓸 거야’ 하지 않는다. 또 요즘 60~70대의 신체나이가 예전 60~70대와 같지 않다. 이들 연령대에서 지팡이 짚고 다니는 분을 거의 못 봤을 것이다. 중장년층은 실버 전용 제품을 쓸 거다라는 막연한 인식부터 바꾸지 않으면 어려워진다. 중장년층은 쓰지만, 젊은 세대가 안 쓰는 제품이 있다고 보나? 그런 건 없다. 오히려 고급 자동차나 고급 의류·화장품 등 프리미엄 상품에 기회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기존에 있던 상품을 중장년층에게 맞게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자동차 운전석은 덩치 큰 20~30대 몸에 맞춰져 있는데, 몸이 작아진 60~70대가 편하게 운전할 수 있게 앞으로 더 당길 수 있는 기능을 넣어야 한다. 옷도 10~20대가 입는 옷보다 약간 편한 기능을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

실버 전용 상품을 만들면 안 되는 이유는.
“나이 드신 분들이 실버 전용 제품을 안 쓰는 이유가 있다. 그걸 쓰는 순간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고 인정하는 꼴인데 그것이 싫기 때문이다. 노인 전용 제품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잘 쓰지 않는다. 다만 더 젊어 보이게 돕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인기를 끌 수 있다. 대표적으로 ‘시크릿우먼’은 탈모인들을 위한 가발에서 미용을 위한 부분가발을 선보여 대박이 났다. 중년 여성들이 결혼식이나 행사가 있을 때 한복을 입고 올림머리를 하는데, 이때 부분가발을 이용해 더 아름답게 보이려는 마음을 잘 짚은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마케팅에서 나이를 내세우거나 중장년층을 희화화하면 실패하기 쉽다. 일본 시세이도는 1997년 50대를 타깃으로 고가의 안티에이징 화장품을 출시하며 ‘아름다운 50대가 증가하면 일본은 변할 것이다’라는 광고 카피를 사용했는데, 실패했다. 나이가 든 것을 받아들이기도 싫은데, 중장년, 노인이 아름답다고 얘기한다면 그 제품은 피할 수밖에 없다.”

안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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