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마윈(馬雲) 알리바바 창업자, 우샤오후이(吳小暉) 안방보험 창업자, 샤오젠화(肖建華) 전 밍톈그룹 회장, 런즈창(任志强) 전 화위안그룹 회장. 사진 블룸버그·연합뉴스·위키피디아
왼쪽부터 마윈(馬雲) 알리바바 창업자, 우샤오후이(吳小暉) 안방보험 창업자, 샤오젠화(肖建華) 전 밍톈그룹 회장, 런즈창(任志强) 전 화위안그룹 회장. 사진 블룸버그·연합뉴스·위키피디아

음력으로 새해 첫날인 2월 12일(이하 현지시각) 밤 중국 장시성 푸저우(撫州)의 여러 은행 지점 앞에 노인 수십 명이 긴 줄을 섰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중국판 카카오톡으로 불리는 위챗 애플리케이션(앱) 등에서 “마윈(馬雲) 알리바바 창업자가 60세 이상 노인 한 명당 훙바오(紅包) 200위안(약 3만4000원)을 지급한다. 사회보험 카드를 가지고 가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몰려들었다. 붉은 봉투란 뜻의 ‘훙바오’는 세뱃돈, 축의금 등 경조사 때 쓰이는 돈이다. 2월 11~17일 춘제(春節·중국 설) 연휴인 중국에서는 은행 영업을 하지 않았다. 이를 알면서도 많은 사람이 근거가 확실치 않은 소문을 믿었던 것은 그간 많은 기업이 춘제 기간에 종종 훙바오를 뿌렸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소동으로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마윈의 위상이 건재함이 입증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럴 가능성은 미지수다.

앞서 마윈은 지난해 10월 24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外灘)금융 서밋’에서 ‘전당포 영업’이란 용어를 써가며 당국 금융규제의 후진성을 비판했다가 수뇌부의 미움을 샀다. 이어 알리바바 산하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합성어) 계열사인 앤트파이낸셜그룹(이하 앤트그룹)의 홍콩 증시 상장이 무산되는 등 당국의 강도 높은 제재에 직면했다. 외신들은 중국 당국이 진짜로 노리는 건 앤트그룹이 보유한 소비자 신용 정보라고 분석했다. 앤트그룹은 10억 명 이상이 사용하는 전자결제 앱 알리페이를 통해 고객의 소비 패턴, 대출 및 상환 이력 등에 관한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앤트그룹은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관리·감독을 받는 금융지주사로 바뀔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월 27일 앤트그룹이 금융지주사로 변신하겠다는 사업개편안을 중국 당국에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향후 금융당국의 엄격한 관리·감독 및 규제를 받게 된다는 뜻이다.

이미 중국에서는 유명 기업인이 실종되거나 그룹이 해체 또는 국유화된 사례가 적지 않다. 중국 경제 고성장의 일등공신으로 평가됐던 국가자본주의가 민영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쥔 리스크로 다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자본주의란 국가가 특정 기업을 직접 관리하에 두고 자본주의 경제 체제 속에서 발전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이는 시장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중요한 근간을 이루는 사유재산권이 중국에서는 손쉽게 부정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중국 당국은 민간 기업 오너 혹은 최고경영자(CEO)를 잡아들일 때 불법 행위를 거론하지만 경제계 전체에 대한 강한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대표적인 인물은 중국 최대 민영보험사인 안방보험(현 다자보험)의 설립자이자 덩샤오핑(鄧小平) 전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외손녀 사위인 우샤오후이(吳小暉)다. 2017년 체포된 우샤오후이는 징역 18년을 선고받고, 자산 105억위안(약 1조8000억원)을 몰수당했다. 2004년 설립된 안방보험은 중국에서 자본금 기준 1위 보험사로 도약했던 거대 보험사다. 우샤오후이의 주된 혐의는 불법 자금 모집이었다. 우샤오후이는 현재도 복역 중이며 중국 정부는 2020년 9월 안방보험을 공중분해했다. 일각에서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정적에 대한 견제에 나섰다고 해석했다.

런즈창(任志強) 전 화위안그룹 회장도 2020년 중국 당국에 의해 몰락한 부동산 부호다. 런즈창은 지난해 3월 중국 정부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대책을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상에 공개했다. 그는 당시 시 주석을 ‘벌거벗은 광대’에 빗댔다. 그 글이 게재된 뒤 그는 실종됐다. 실종 20일 후 중국 정부가 그를 감찰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어 지난해 7월 런즈창의 공산당 당적이 박탈됐으며 9월 부패와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8년형과 벌금 420만위안(약 7억20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가 2003~2017년 화위안그룹 회장 재직 시절 공금을 횡령하고,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앞서 2017년 1월에는 중국 투자회사 밍톈그룹의 회장이었던 샤오젠화(肖建華)가 실종됐다. 중국과 홍콩 매체들은 당시 “샤오젠화가 홍콩 포시즌스 호텔에서 휠체어를 탄 상태로 납치돼 본토로 끌려간 것으로 보인다”라고 보도했다. 샤오젠화는 ‘신비의 자본가’란 별칭을 얻으며 2016년 중국 부호 23위에 올랐던 거물급 금융인이었다. 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샤오젠화의 행적은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이어 지난해 중국 당국은 “밍톈그룹이 금융시장 안전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라며 “밍톈그룹 산하 9개 사를 정부가 직접 경영하겠다”라고 밝혔다.

실종 후 중국 당국과 협의 끝에 풀려난 기업인도 있다. ‘중국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다가 2015년 실종됐던 궈광창(郭廣昌) 푸싱그룹 창업자가 대표적인 사례다. 궈광창은 아시아·유럽·북미 전 세계에 걸친 공격적 투자를 바탕으로 푸싱그룹을 거대 기업으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2015년 12월 중국 소셜 미디어(SNS)에는 궈광창이 상하이 공항에서 중국 공안에 연행됐다는 목격담이 등장했다. 푸싱그룹 측은 당시 궈광창이 사법 당국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고 간략하게 발표했다. 그리고 얼마 후 궈광창은 회사로 복귀했다. 그가 실종됐던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시 주석이 선포한 ‘부패와의 전쟁’과 연관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 나왔다. 궈광창은 시진핑의 정적으로 꼽히는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이끄는 상하이방 사람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2015년 당시 중국 당국이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수십 명의 중국 기업 오너 혹은 최고경영자(CEO)가 사라졌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복귀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자본주의는 없다”는 중국 정부

이처럼 공산당의 결정에 의해 하루아침에 사유재산을 압수당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자 국가자본주의 리스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자국 경제 체제가 국가자본주의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은행보험감독위원회 궈수칭(郭樹清) 주석은 1월 18일 ‘홍콩 아시아 금융 포럼’에서 “중국 경제 시스템을 국가자본주의라고 지칭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정부가 민간 부문에 관여하고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 국유경제가 강력해 국가의 산업정책이 시장 관계 체제를 왜곡하고 있다는 비난도 크게 틀렸다”라고 덧붙였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 등이 중국을 국가자본주의라고 비판하고 있으며 그런 중국 정부의 전략은 시장에서 불공정경쟁으로 이어진다”라고 했다. 이어 “중국이 그렇게 할수록 서구식 시장경제와는 다른 발전 모델이 안착하고, 결국은 불공정한 게임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plus point

시진핑과 마윈의 인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의 인연도 주목된다. 중국 공산당은 2018년 개혁개방 40년의 대표적인 기여자로 마윈을 비롯한 100명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알리바바 본사가 있는 항저우를 성도로 둔 저장성의 당서기를 지낸 시 주석은 상하이 당서기로 옮긴 직후 관료들을 이끌고 알리바바를 찾은 적도 있다.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초빙으로 이뤄진 시 주석 국빈 방한 때도 마윈이 동행, 국내 기업인들을 만나기도 했다.

시 주석은 2018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민영 경제의 발전을 격려하고 지지하고 이끌고 보호할 것”이라며 ‘민영기업론’을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정부·지방·은행들이 앞다퉈 민영기업 지원책을 내놨다. 이어 시 주석의 지시로 2019년 7월에는 ‘상하이판 나스닥’인 과창판(科創板)이 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해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이른바 ‘국진민퇴(國進民退·국유기업은 나아가고 민영기업은 물러난다)’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덩샤오핑의 탈(脫)이데올로기 국정 운영과는 다른 시 주석의 사상통제 강화 통치 스타일이 무관치 않은 것으로 지적된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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