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유럽과 함께하지만, 그 일부는 아니다(We are with Europe, but not of it).”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를 이끈 후 한 말이다. 처칠은 1946년 스위스에서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런데도 유럽합중국의 중심과는 거리를 뒀다. 과거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大英帝國)을 건설했던 영국의 자존심이 엿보이는 일화다.

전후(戰後) 들어선 영국 노동당 정권은 이런 노선을 따랐다. 영국은 1951년 유럽석탄철강 공동체(ECSC) 출범으로 막 첫발을 뗀 유럽 통합 운동과 거리를 뒀다.

유럽과 거리를 두던 영국은 ECSC를 기반으로 1967년 설립된 유럽공동체(EC)에 1973년이 돼서야 가입했다. 그러나 가입 2년 후인 1975년, EC 탈퇴 국민투표에 들어갔다. 결과는 부결. 역사가 휴고 영은 “당시 논란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라며 “EC 탈퇴 주장 진영은 영국인에게 유럽 바깥에서 살아남는 것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했다”라고 저술했다.

이어 1975년 보수당 당수가 된 마거릿 대처는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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