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 성균관대 산업공학 학·석·박사, 전 SK하이닉스 반도체기술기획 담당, 현 남서울대 겸임교수 /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 성균관대 산업공학 학·석·박사, 전 SK하이닉스 반도체기술기획 담당, 현 남서울대 겸임교수 /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올해 1월 한국은 70억6000만달러(약 8조625억원)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이 뿌듯한 실적의 중심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수출 물량이 20.6% 증가(통관 기준)한 반도체가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수출 효자 종목’이라는 수식어가 다시 한번 빛나는 순간이었다. 메모리 반도체를 주축으로 한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은 앞으로도 세계 무대를 호령할 것이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에 대한 국제 사회의 태도 변화를 보고 있으면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최근 반도체 공급 부족이 낳은 자동차 제조 중단 사태는 미국·유럽 등에 ‘자국 내 생산’의 당위를 부여했다. 아시아에서 생산해 서구권에 납품해온 반도체 공급 사슬의 오랜 흐름에 변화 조짐이 나타난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할까.

이 물음의 답을 얻기 위해 3월 8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삼평동에서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를 만났다. 안 전무는 과거 선도국들이 반도체 제조를 관둔 덕에 한국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며 이들 국가가 다시 돌아와 한국과 반도체 생산 경쟁을 벌이는 상황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가뜩이나 부족한 반도체 인력 유출을 막으려면 ‘반도체 기술명장’과 같은 혜택을 줘야 한다고도 했다.


2017~2018년의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2021년 다시 재현되고 있는 걸까.
“성격이 좀 다르다. 4년 전 반도체 붐의 중심에는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 관련 신기술의 급격한 수요 급증이 있었다. 자연스레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서버용 메모리 수요도 증가했다. 그리고 당시에 가상화폐 투자 광풍이 불면서 코인 채굴에 쓰이는 PC가 호황을 누렸다. 이후로는 모든 전자 제품이 인공지능(AI)으로 작동하는 세상이 열렸다. AI 기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의 중요성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그런데 왜 성격이 다르다는 건가.
“4차 산업혁명 추세는 여전하지만, 최근 반도체 붐은 수급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방금 말한 대로 반도체의 중요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 그 반도체를 만드는 제조 시설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 시설 투자 비용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폭발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니 세계 곳곳에서 자동차 공장이 멈추고 스마트폰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는 아시아에서 만든 반도체를 유럽이 사다가 자동차를 조립하는 일이 당연했는데 이제는 당연하지 않게 됐다. 각국이 앞다퉈 ‘반도체 자국 내 생산’을 선언하는 배경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에 어떤 영향을 줄까.
“한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 역사부터 보자. 지금의 ‘반도체 강국’ 한국이 되기까지 우리의 노력이 컸던 건 당연하다. 동시에 선도국들의 반도체 제조 포기가 한국에 지름길을 제공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유럽·일본 등 우리보다 반도체 역사가 긴 나라들은 지난 수십 년간 반도체 생산기지 역할을 한국과 대만 등에 넘겼다. 한국의 기술력이 뛰어난 것과는 별개로 생산 경쟁이 아주 치열했던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반도체를 탄생시켰던 기술 선도국들이 다시 돌아와 한국과 생산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미래를 속단할 수는 없지만 긴장의 끈을 조여야 할 때라고 본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도 한국에 위협적이다.
“중국은 전 세계 반도체 수요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초대형 구매자다. 원유 구매보다 반도체 구매에 쓰는 돈이 더 많다. 중국 입장에서는 이를 내재화하면 엄청난 지출을 줄일 수 있다. 중국이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목표로 세운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2025년까지 목표치를 달성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현재 D램 기준으로 보면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3개 회사가 시장을 장악한 상태다. 순위는 바뀔지언정 이들 3개 사의 시장 영향력은 꽤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다. 반도체 패권을 안보 관점에서 접근하는 미국의 중국 견제 때문이다.”

견제를 어떤 식으로 하나.
“확실한 방법은 장비 사용에 제약을 주는 것이다. 예컨대 D램 제조의 경우 3개월 동안 50여 개 장비로 약 700단계를 거친다. 이 700단계의 대부분은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램리서치 등 미국 업체나 미국의 우방국에서 만든 첨단 반도체 장비를 써야 하는 공정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자국 내 협력을 강화하면 좋겠다. 한국에서 반도체는 ‘수출 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여기에 내수까지 키우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최근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반도체 부족 현상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 반도체 기업과 그 반도체가 있어야 하는 기업이 공생 관계를 구축하고 협력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 3월 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이 만나 ‘미래차-반도체 연대·협력 협의체’ 발족식을 개최한 것을 기억하는가. 이런 의기투합하는 일이 앞으로 많아져야 한다. 대기업뿐 아니라 국내 중소 전자 업체와 팹리스 기업 등도 참여하는 생태계를 계속 시도해야 한다.”

반도체 관련 정책에 아쉬운 점이나 제안하고 싶은 내용이 있나.
“한국의 반도체 산업 종사자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환영받는다. 다른 말로 하면 국가 차원에서 보호해야 하는 핵심 반도체 기술이 곧 인력이라는 뜻이다. 인재 유출은 기술 유출이다. 반도체 인력을 한국에 묶어두려면 명예와 혜택을 줘야 한다. 인간문화재를 지정하듯 반도체 기술명장을 만들어 특별 관리해야 한다. 또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 이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해외를 선택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유연한 연구 시간 보장도 필요하다. 다른 나라는 반도체 기술을 안보 문제로 접근하지 않나. 국제 반도체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필요할 때 며칠 밤이라도 샐 수 있는 (주 52시간제의) 융통성이 적용돼야 한다. 정부는 자동차·조선 등 반도체 말고도 챙겨야 할 산업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한 영역을 특별하게 보지 않는다. 개별 산업의 특성에 맞는 정책의 다양성이 간절하다. 끝으로, 고급 인력 육성 시스템이 너무 부실하다. 이 부분은 나뿐 아니라 다른 관계자도 이구동성으로 지적할 것이다. 산업 발전은 인력 공급에 비례한다. 그런데도 한국은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늘리지 않는다. 교수 숫자도 제자리걸음이다. 이들에게서는 학술 논문이 잘 안 나오니까.”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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