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왼쪽에서 세 번째) 삼성전자 부회장이 1월 4일 경기도 평택 사업장을 방문해 EUV 전용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재용(왼쪽에서 세 번째) 삼성전자 부회장이 1월 4일 경기도 평택 사업장을 방문해 EUV 전용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은 전 세계 기업을 잔뜩 움츠리게 했다. 위기를 마주한 기업은 설비 투자와 채용을 줄이며 몸을 사렸다. 하지만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투자 열기는 여느 때보다 뜨겁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5G(5세대 이동통신) 기술이 촉발한 디지털 전환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대부분 업종에서 가속화하자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은 합종연횡에 나섰다. 이들 기업으로부터 주문받은 비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Foundry·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TSMC와 삼성전자는 앞다퉈 대규모 설비 투자에 돌입했다. 반도체 호황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미래 먹거리 확보” 팹리스 M&A 열풍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팹리스는 미래 먹거리를 가진 기업을 인수합병(M&A)하기 위해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인 IC인사이츠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체결된 M&A 총규모는 1180억달러(약 135조원)로 집계됐다. 역대 최고 규모로 2019년(약 315억달러)보다 275% 급증했다.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 건을 제외하면 대부분 팹리스 기업이 주도했다.

대표적인 빅딜은 미국 엔비디아의 영국 반도체 설계·디자인 재산권 기업인 ARM 인수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9월 소프트뱅크로부터 ARM을 400억달러(약 47조50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반도체 업계 사상 최대 규모로, 미국·영국·중국 등의 규제 당국으로부터 승인을 남겨놓고 있다. 인수 성공 시 엔비디아 주력 사업은 GPU(그래픽처리장치)에서 CPU(중앙처리장치), AI, 자율주행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

AMD도 지난해 10월 350억달러(약 40조원)를 들여 자일링스 인수에 나섰다. 자일링스는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용도에 따라 설계를 바꾸는 반도체) 분야 1위 기업이다. 이 반도체는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AI, 자율주행 등 각종 분야에 활용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AMD와 인텔의 경쟁이 CPU에서 FPGA로 확대되는 등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인텔은 FPGA 제조 업체 알테라를 160억달러(약 19조원)에 인수하며 FPGA 시장 2위로 올라선 바 있다. 마켓워치는 “AMD가 물속에서 피 냄새를 맡은 상어처럼 움직였다”며 “(AMD의 자일링스 인수가) 데이터센터, 서버, PC 등 각종 부문에서 출혈이 발생하고 있는 인텔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보기도 했다.


격차 벌리려는 TSMC, 뒤쫓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1·2위인 대만 TSMC와 삼성전자의 투자 경쟁도 뜨겁다. TSMC는 1월 14일 “올해 설비 투자에 최대 280억달러(약 31조원)를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투자액 172억달러(약 19조원)보다 63% 많은 것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 전반이 공급 부족을 겪는 모습을 보이자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하고 수익을 높이겠다는 목표다.

TSMC는 현재 미국 애리조나주에도 120억달러(약 13조3000억원)를 들여 5나노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이 투자액이 360억달러로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또 대만 타이난 남대만과학공원(STSP)에도 7000억대만달러(약 27조7100억원)를 투입해 3나노 공장을 세우고 있다. 200억엔(약 2100억원)을 투자해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에 반도체 후(後)공정 기술 개발 회사도 설립할 예정이다. TSMC는 지난해 8000명을 채용한 데 이어 올해 9000명을 채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추격도 재빠르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와 170억달러(약 19조2000억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 증설을 논의하고 있다. 최윤호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사장(CFO·최고재무책임자)은 1월 28일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쌓인 현금을 공격적인 투자와 M&A로 풀어내겠다”고 말한 바 있다. 삼성전자도 인재 확보에 열을 올린다. 삼성전자의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 정규직 인력은 2015년만 해도 4만3488명에 그쳤으나, 지난해 5만9117명으로 늘었다. 5년 사이 35%가량 늘어난 셈이다. 삼성전자는 2019년 ‘시스템반도체 2030’ 비전을 발표하면서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관련 인원 1만5000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계 3위 파운드리 업체인 미국의 글로벌파운드리도 미국, 독일, 싱가포르 등 3개 공장에 14억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과점화된 메모리 업계도 투자 확대

3강 체제가 공고한 메모리 반도체 업계도 투자에 나선다. 삼성전자는 올해 낸드플래시를 생산하는 중국 시안 2공장과 D램·낸드·파운드리를 고루 생산하는 평택 2공장을 채우는 데 집중한다. 삼성전자는 앞선 1월 테스와 원익IPS, 와이아이케이 등과 연달아 계약을 하고, 다른 협력사와도 납품 계약을 준비하고 있다. 후발 주자와의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평택 3공장도 계획보다 이르게 공사를 진행 중이다.

SK하이닉스는 낸드 부문 경쟁력을 강화해 메모리 반도체 강자로 거듭나기 위해 나섰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인텔 낸드 플래시 사업부를 인수하기로 결정했으며, 올해 말까지 주요 국가의 규제 승인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인텔 낸드 사업 인수를 마무리하면 전 세계 2위로 올라서게 된다. D램에 이어 낸드 부문에서도 삼성전자와 더불어 업계 양강으로 부상할 수 있는 셈이다.


뒤에서 웃는 반도체 소부장 기업

국내외 반도체 기업들의 뜨거운 투자 열기에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은 웃음꽃이 피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올해 장비 시장이 사상 최대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올해 반도체 제조 장비 시장 규모를 719억달러로 예상했다. 역대 최대치였던 지난해(약 689억달러)보다 5%가량 성장할 것으로 보는 셈이다.

크랙 트셍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 MI) 연구원은 “올해와 내년에 웨이퍼 팹, 반도체 소재, 테스트, 패키징 등 전 분야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댄 던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반도체 업계는 올해 반도체 장비 투자액을 700억달러로 보는데, 우리는 그보다 더 큰 성장을 예상한다”고 했다. 반도체 소부장 기업의 주가도 상승세다.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이 대표적인 수혜 기업이다. ASML은 5나노 이하 최첨단 미세공정의 성능과 생산성을 높이는 EUV(Extreme Ultra Violet·극자외선) 노광 장비를 만드는 세계 유일의 회사로, 1년간(3월 9일 기준) 주가가 91% 상승했다. 나스닥에 상장해 있는 식각 장비 업체 램리서치와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스는 각각 103%, 119% 올랐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반도체 및 장비 기업 115개 사 주가는 최근 1년 동안 평균 80% 상승했다.

안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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