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염 한국시스템반도체포럼 회장 현 실리콘마이터스 대표, 전 매그나칩반도체 대표, 전 SK하이닉스 반도체부문 부사장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허염
한국시스템반도체포럼 회장 현 실리콘마이터스 대표, 전 매그나칩반도체 대표, 전 SK하이닉스 반도체부문 부사장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는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비(非)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2019년 기준 반도체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21%였으나, 시스템 반도체에서는 3.2%에 그쳤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도래해도 국내 업계가 받는 수혜 폭이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가 진정한 반도체 최강자가 되려면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잡아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3월 5일 만난 허염 한국시스템반도체포럼 회장도 “국내 시스템 산업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해주기 위해선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 성장이 필요하다”며 “강대국들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전기차 등의 신규 수요 증가로 성장잠재력이 풍부하다”고 했다. 그는 지난 35년간 반도체 업계에 몸담은 전문가로, 현재는 실리콘마이터스의 대표를 맡고 있다. 삼성전자 이사, 현대전자 전무, SK하이닉스 부사장, 매그나칩반도체 대표를 거쳤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 비메모리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설계(팹리스·Fabless), 위탁 생산(파운드리·Foundry), 패키지-테스트 업체(OSAT) 등으로 분업화돼 있어 따로따로 봐야 한다.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는 고전하고 있다. 팹리스는 창의성이 필요한 소프트웨어 부문과 비슷한데, 우리나라는 이러한 부문이 약하기 때문이다. 반면 파운드리에서는 우리가 굉장히 잘하고 있다. 메모리 분야와 비슷하게 큰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고,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유리한 덕분이다. 대만 TSMC와 삼성전자 양강 체제에 다른 기업이 끼어들기 힘들다. 삼성전자가 TSMC의 점유율을 따라잡는다면, 한국은 파운드리 강국으로도 이름을 떨칠 수 있다.”

비메모리 시장을 키우는 게 왜 중요한가.
“메모리 반도체는 표준화된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이지만, 비메모리 반도체는 고객의 니즈(needs)에 따라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메모리 반도체는 수요, 시황에 따라 가격이 크게 흔들리지만, 비메모리 반도체는 여러 포트폴리오를 잘 갖추고 있으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시스템 산업의 기반이자 뿌리이기도 하다. 국내 시스템 산업 규모가 크기 때문에 잘 결합하면 비메모리 성장에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미국, 유럽도 비메모리 시장을 키우려 하는 것 같다.
“맞다. 과거와 달리 반도체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옛날에는 반도체를 자체적으로 개발, 생산 공급했으나 서구 국가들은 두뇌 중심의 설계에 치중하고 지속적인 시설 투자가 크게 필요한 반도체 제조는 아시아(한국⋅대만) 지역의 파운드리와 OSAT를 이용하면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나 미국이 최근 들어 반도체가 국가의 안보에 직결된다고 보기 시작했다. 당장은 삼성전자와 TSMC가 해외에 대규모 투자를 해서 해당 지역에서 생산하는 방안이 대두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반도체 때문이라도 한국이 꼭 필요한 존재다. 우리나라가 메모리·파운드리 반도체에서 모두 두각을 드러내고 있어서다. 향후 국가 안보에 가장 기여할 것이 반도체라고 본다.”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강화를 목표로 내세웠지만 종합반도체회사(IDM)라서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만 TSMC가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목표를 내세워 파운드리 업계 1위를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반도체 수요가 계속 늘어날 텐데 TSMC가 모든 반도체를 생산하기는 어렵다. 팹리스 업체들도 생산의 안정성을 위해 TSMC와 삼성전자 모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에 유리한 환경이라고 본다. 당장 애플 같은 삼성전자의 경쟁자들은 TSMC를 향하겠지만 엔비디아, 퀄컴 등은 삼성전자를 찾을 것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약진에도 한국의 전 세계 비메모리 반도체 점유율은 3.2%로, 10년간 정체된 상태다. 이유는 뭘까.
“팹리스 기업들이 국내 시장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반도체를 가장 많이 쓰는 고객이 삼성, LG, 현대차 등인데, 이들은 대부분 자체 개발도 하고 있어 분야에 따라 팹리스와 경쟁 관계에 있다. 대기업과 팹리스가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보완적으로 분야를 나눠서 발전시키면 좋을 것 같다.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잘 골라서 전문성을 가지고 세계로 나가야 한다. 올림픽 출전 선수처럼 키워야 한다는 얘기다.”

비메모리 중 어떤 분야에 집중해야 하나.
“규모의 경제를 적용할 수 있는 SoC(전체 시스템을 칩 하나에 담은 기술집약적 반도체)와 아날로그 파워매니지먼트 등이 있다. 제품마다 독특한 기술이 필요한 센서 부문도 잘할 수 있다. 앞으로 IoT 시대가 되면 다양한 센서가 필요하기 때문에 육성해보면 좋을 것 같다.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AI 특히 에지(Edge) 프로세서 등도 관심 가질 만하다. 스마트폰, TV, 자동차 등 우리나라에서 잘하고 있는 산업과 잘 맞는 것을 찾는 것도 좋겠다.”

팹리스 업체 성장의 최대 걸림돌은.
“인력 부족이다. 아이디어가 좋으면 자금을 조달하는 건 문제가 없는데, 인력 확보가 힘들다 보니 성장을 해야 할 때 병목(bottleneck·생산 요소 부족에 의한 장애) 현상이 생긴다. 반도체 산업의 인력이 부족해도 대학 학과마다 정원이 정해져 있다 보니 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학생들이 학과와 상관없이 공부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교육부도, 대학도 우리나라가 무엇으로 먹고 살지,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봐야 한다.”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지금은 모든 게 대기업 중심이다. 미국과 대만은 스타트업을 세우면 전문가를 영입해서 기업을 키우거나, 인수합병(M&A)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풍토가 약하다. 대기업은 제대로 값을 쳐주고 M&A를 할 필요가 있다. 대만 반도체 생태계를 보면 중소기업일 때부터 상호 지분 투자도 하면서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대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상당히 수평적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주식 스와프 같은 방법으로 M&A가 성장의 수단으로 정착하려면 세제 보안이 필요하다. 주식 양도로 당장 현금 수입이 생기는 게 아닌데 양도세를 내야 하는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비메모리 육성을 위해 펀드 조성 등 여러 지원책을 내고 있는데 망해가는 회사를 살리는 것이 아닌 제대로 지원받아야 할 회사를 잘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쟁력 없는 기업은 사라져야 경쟁력 있는 기업이 좋은 인력을 추가 확보할 수 있다. 계속 살려주면 인력도 기업도 어영부영 시간만 버리고 만다.”

향후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좌지우지할 이슈는 무엇이라고 보나.
“파운드리의 생산 캐파(Capacity) 절대 부족이다. 팹리스 업체들은 파운드리에 생산을 맡기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 캐파 부족이 리스크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코로나19로 바뀌는 패러다임이다. 지금까지 PC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왔는데 다음은 무엇일지 고민해야 한다.”

안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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