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한양대 올림픽체육관에서 열렸던 한양대 취업 박람회. 사진 조선일보 DB
2018년 9월 한양대 올림픽체육관에서 열렸던 한양대 취업 박람회. 사진 조선일보 DB

서울에 있는 대학의 영문학과를 졸업한 26세 김민지(가명·여)씨. 이른바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대로 불리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 1년간 취업 정보 사이트에 뜬 채용공고에 수십 개의 지원서를 써냈지만, 성과가 없어 쉬고 있다. 비자발적 니트족(NEET, 교육·직업훈련을 안 받는 무직 청년)이 된 것이다. 김씨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문대를 나왔지만, 막상 취업 시장에 뛰어드니 면접을 제안한 곳은 외국계 기업 단 한 곳뿐”이라며 “이력서에 경력이 비는 것도 불안해 취업을 포기하고 중국 유학을 준비하려 한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이른바 ‘고학력 니트족’이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은 청년층의 일자리 환경에 직격탄을 날렸다. 특히 고졸 이하보다 전문대졸 이상 청년의 타격이 컸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월 보고서에서 통계청 자료를 통해 추정한 결과, 지난해 15~29세 니트족이 처음으로 40만 명을 넘었고 이 가운데 전문대졸 이상의 니트족을 18만 명으로 파악했다. 전년보다 38% 늘어난 수치다. 전문대졸 이상 니트족은 2016년만 하더라도 9만 명에 불과했지만, 4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고졸 니트족은 50% 늘었다.

이에 따라 전체 니트족에서 전문대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41%로 전년 대비 4%포인트 상승했다. 1년 이상 무직 상태인 니트족도 지난해 9% 늘어났다. 니트족의 고학력화와 함께 장기화가 우리 경제와 사회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기업 채용 찬바람에 똑똑한 니트족 늘어

고학력자 니트족이 늘어나는 건 젊은층의 고학력화, 대기업의 채용 축소에 따른 양질의 일자리 부족, 재력을 갖춘 베이비부머 세대의 지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25~34세 청년층의 ‘대졸 이상’ 비율은 69.8%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청년층 평균 대졸 이상 비율보다 25%포인트 높으며, OECD 국가 중에서 아일랜드(70%)에 이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3월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상반기 신규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17.3%는 채용 계획이 없고, 46.3%는 채용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한경연은 2020년 3월 같은 설문에서 채용 계획이 없다고 응답한 기업이 8.8%, 채용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답한 기업이 32.5%였던 점을 감안하면 채용 시장이 더욱 얼어붙었다고 진단했다. 한경연 관계자는 “기업 규제 완화, 고용 확대 기업 인센티브 확대, 신산업 성장 동력 육성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워라밸(work-and-life-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젊은층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기보다는 경제 성장기에 안정적인 자산을 축적한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도 니트족의 고학력화를 부추긴다. 서울 상위권 대학을 나온 29세 이지영(가명·여)씨는 20여 명 규모의 직원을 둔 중소기업을 1년가량 다니다 퇴사했다. 워라밸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씨의 부모는 “딸이 1년간 야근한 날이 더 많은데, 수년을 일해도 서울에 아파트 하나 사기 어렵다”며 “다음 커리어를 쌓기 전까지 노후를 위해 마련한 자금을 떼어서라도 보험료와 생활비를 보조해주며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 관계자는 “청년 실업 문제는 한 가구 안에서 빈곤이 윗세대까지 역으로 전이되는 문제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씨처럼 대학 졸업 후 취업하지 못하고 계속 부모 신세를 지는 고학력 20·30대 젊은층은 ‘캥거루족’으로도 불린다. 이는 글로벌 현상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부모에 기대 사는 어른도 어린이도 아닌 사람을 ‘트윅스터(twixter)’로, 캐나다에서는 직업을 구하러 이리저리 떠돌다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로 ‘부메랑 키즈(boomerang kids)’로, 영국에서는 부모의 퇴직연금을 축낸다는 뜻에서 ‘키퍼스(KIPPERS·Kids in Parents Pockets Eroding Retirement Saving)’라 부른다.


기업 경력직 선호…무경험 니트족 급증

일한 경험이 없거나, 무직 기간이 장기화한 니트족이 늘어나는 건 경력직을 선호하는 기업들의 채용문화 변화와 무관치 않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수입을 목적으로 하는 일을 한 경험이 없는 니트족은 지난해 11만8000명으로 전년 대비 32.5% 급증했다. 무직 기간이 1년 이상 지속된 경우는 같은 기간 9% 늘어난 12만 명에 달했다. 기업들이 채용을 줄인 만큼, 신입사원보다는 경력직을 선호하는 사례가 늘면서 업무 경험이 아예 없는 청년층이 채용 시장에서 밀리고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국내 매출액 500대 기업 5곳 중 1곳은 올해 채용 시장 트렌드 전망에 대해 ‘경력직 채용 강화’를 이야기했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CEPR)는 “원격 근무가 가능한 기존 근로자와 달리 아직 사회에 발을 못 디딘 젊은층에게 코로나19 경제 충격이 불균등하면서도 길게 나타나고 있다”며 “청년 니트족이 장기적 시각으로 노동 시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세분화하고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니트족을 성별로 보면 남성이 규모로는 여전히 많지만, 여성이 더 빠르게 늘고 있다. 여성 니트족은 2016년 10만6000명에서 2020년에는 19만1000명으로 늘었다. 그 결과 니트족에서 여성 비중도 같은 기간 30% 중반에서 43.7%로 급증했다. 상대적으로 남성 채용 규모가 크고 여전히 여성의 육아·가사 비율이 높은 탓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중소·벤처 또는 중견기업의 근로 환경 개선 지원을 강화해 일자리 미스매치(불일치)와 기피 현상을 완화해야 한다”며 “성별과 학력에 따라 니트족 특성이 달라지는 만큼 정책 대응도 차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안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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