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디엔에프)와 전기전자(비나텍) 섹터의 강소 기업만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에 기여하는 건 아니다. 소부장 기술 독립 시도는 제조업의 다양한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이 중소벤처기업부 추천을 받아 국산화 우수 사례 가운데 일부를 모았다.


고기능성 대전 방지 코팅제. 사진 에버켐텍
고기능성 대전 방지 코팅제. 사진 에버켐텍

기초화학 | 에버켐텍

이성민 에버컴텍 CEO
이성민 에버컴텍 CEO

코팅제 등의 화학물질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에버켐텍은 일본의 소부장 수출 규제 이슈가 터진 2019년 가장 주목받은 기업 중 한 곳이다. 이 회사가 2019년 개발에 성공한 식품 포장재용 친환경 코팅제 덕분이다.

통상 식품 포장재에는 음식물의 부패를 막기 위해 산소 차단 기능을 넣는다. 이전까지는 일본산 소재인 에틸렌 비닐 알코올(EVOH)이 유일한 산소 차단 물질이었다. 에버켐텍은 유청 단백질을 이용해 EVOH를 대신하는 친환경 코팅제를 만들었다.

에버켐텍은 앞서 2008년에도 일본 기업이 독점하던 디스플레이용 고기능성 대전 방지 코팅제를 국산화해 LG화학·SKC 등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에 공급한 바 있다. 디스플레이용 고기능성 대전 방지 코팅제는 액정표시장치(LCD)·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 쓰이는 핵심 소재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이 코팅제의 국산화 이후 수입 대체 효과를 돈으로 환산하면 2500억원이다. 에버켐텍의 2020년 매출액은 145억원이었다. 2025년에는 6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5개년 평균 매출액 증가율은 15%, 영업이익 증가율은 43%, 고용 증가율은 15%다. 이성민 에버켐텍 대표는 “중국과 베트남을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초균일 코팅 기기. 사진 엔젯
초균일 코팅 기기. 사진 엔젯

디스플레이 | 엔젯

변도영 엔젯 CEO
변도영 엔젯 CEO

매출액(2020년 기준 37억원)만 보고 엔젯의 가치를 평가해선 안 된다는 게 국내 인쇄전자 산업계의 평가다. 한국에는 전무한 프린팅·코팅 노즐 관련 원천기술과 특허를 다수 보유한 실력자이기 때문이다. 인쇄전자는 전자잉크를 새겨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의 회로를 만드는 기술이다.

엔젯은 가장 얇은 전자회로를 가장 정교하게 제작할 수 있는 회사로 꼽힌다. 얇은 전자회로를 만들려면 전자잉크가 나오는 노즐이 그만큼 좁아야 한다. 엔젯 노즐은 10㎛(마이크로미터) 이하의 패터닝을 가능하게 한다. 성균관대 교수이기도 한 변도영 엔젯 대표는 유도정전기장의 힘으로 노즐 외부에서 전자잉크를 당기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변 대표가 이 기술을 개발한 2009년만 해도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의 기술력이 엔젯의 가는 전자회로를 필요로 할 만큼 뛰어나지 않았다. 엔젯이 시대를 너무 앞서간 것이었다. 당시에는 20㎛ 수준의 전자회로를 대량생산해 싸게 파는 일본 기업들이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업계의 관심이 점차 엔젯의 기술력을 향하기 시작했다. 국내 대형 반도체 기업은 물론 글로벌 반도체 업체도 엔젯에 러브콜을 보냈다. 올해 매출액은 100억원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엔젯이 보유한 지식재산권은 100여 건에 달한다. 변 대표는 “미래 산업인 인쇄전자 분야에서 10년 넘게 연구개발(R&D)해왔다”라며 “유도정전기장을 이용한 원천기술이 높은 신뢰와 지지를 얻었다”라고 했다.


고정밀 직선 운동 부품. 사진 원에스티
고정밀 직선 운동 부품. 사진 원에스티

기계금속 | 원에스티

이택원 원에스티 CEO
이택원 원에스티 CEO

원에스티는 로봇 같은 자동화 기기의 핵심 부품인 직선·회전 운동 베어링을 개발하는 회사다. 베어링 외형은 특별할 것 없는 쇠뭉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동화 기기의 직선·회전 운동부에서 기기 수명과 작업 정밀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정교한 부품 설계와 가공 기술 없이는 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보니, 과거에는 THK·NSK·IKO 등의 일본 업체가 이 분야를 장악했다.

원에스티는 1989년 설립 이후 30년 넘는 시간 동안 자동화 기기의 이동 관련 부품 연구에만 집중했다. 우수 인력 확보를 위해 2010년에는 서울에 기술연구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고정밀 직선 운동 부품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는 종주국 격인 일본으로 자사 제품을 역수출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상당수 대기업에도 납품한다.

원에스티의 경쟁력은 독일·일본 등 제조 강국 제품과 같은 품질의 직선·회전 운동 베어링을 20~30%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는 점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장비, 3차원(3D) 프린터, 의료 기기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자동화 기기 수요가 늘면서 원에스티 매출액도 2016년 259억원에서 2020년 481억원으로 늘었다. 이 중 40% 이상을 수출로 번다. 이택원 원에스티 대표는 “생산 규모를 확대해 2025년 18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라고 했다.


디에스피 소재가 적용된 신형 스포티지. 사진 디에스피
디에스피 소재가 적용된 신형 스포티지. 사진 디에스피

자동차 | 디에스피

김진형 디에스피 CEO
김진형 디에스피 CEO

디에스피는 스테인리스 스틸(stainless steel) 업계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강소 기업으로 통한다. 2012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롤 투 롤(Roll to Roll) PVD(Physical Vapor Deposition)’ 기술이 업계의 인정을 받아서다. PVD는 진공 상태에서 물리적 증착 방식을 이용해 코팅하는 방법이다.

스테인리스는 녹슬지 않고 내구성과 내열성도 뛰어나다. 그러나 이 금속 고유의 색깔이 차가운 느낌의 은색이다 보니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쓰임새는 제한적이었다. 표면에 인위적으로 다른 색깔을 입힐 수는 있지만, 스테인리스를 덮고 있는 얇은 산화막이 표면의 색을 금세 벗겨내기 일쑤였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게 Roll to Roll PVD 기술이다. 디에스피는 이 기술로 벗겨지지 않는 컬러 코팅 스테인리스 소재를 만들어 자동차 윈도 서라운드 몰딩에 사용되던 외국산 스테인리스 소재를 국산화했다. 과거에는 차량 창문 몰딩에 미국산 컬러 필름을 붙였다면, 이제는 디에스피의 컬러 코팅 기술을 녹이는 식이다.

현대차·기아가 디에스피 소재를 공급받는다. 거래 초기에는 제네시스·스팅어 등 고급 차종에만 적용됐으나, 현재는 쏘렌토·스포티지 등 중형급 차종에도 디에스피 기술이 탑재된다. 2019년 130억원이던 매출액은 지난해 202억원으로 급증했다.

김진형 디에스피 대표는 “자동차 서라운드 윈도 몰딩을 시작으로 자동차 트림과 스피커 그릴 등으로 적용 부위를 확대하고 있다”라고 했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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