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케하르트 쾰러 블라이슈탈 CEO, 독일 아헨공대 금속재료공학과·기계공학 박사 / 사진 블라이슈탈
에케하르트 쾰러 블라이슈탈 CEO
독일 아헨공대 금속재료공학과·기계공학 박사 / 사진 블라이슈탈

올해 창립 67년을 맞은 ‘블라이슈탈(Bl-eistahl)’은 자동차 엔진에 연결된 흡·배기 밸브 등을 보호·보완하는 밸브 시트 및 가이드를 제조하는 독일 중견기업이다. 이 부품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2%에 이른다. 현재 창업 가문 3세인 에케하르트 쾰러(Ekkehard Köhler·59) 최고경영자(CEO)가 27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다.

쾰러 CEO는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1995년 CEO에 올랐다. 그가 경영을 맡은 이후 블라이슈탈의 매출은 9배가 됐다. 취임 1년 전인 1994년 1500만유로(약 210억원)에 불과했던 회사 매출은 지난해 1억3500만유로(약 1900억원)를 기록했다.

쾰러 CEO는 열네 살 때부터 블라이슈탈에서 일하면서 회사 고유의 조직 문화와 리더십을 익혔다. 가문의 전통에 따라 대학(아헨공대 금속재료공학과․기계공학 박사)에선 기초 기술을 배웠다. 쾰러 CEO는 “블라이슈탈의 성장은 성공적인 가업 승계와 세계화에 있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조선’이 8월 16일 쾰러 CEO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경영 수업’을 어떻게 받았나
“아버지께서 내가 어렸을 때 회사에 관심이 있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답하자, 아버지는 1976년 내가 열네 살 때부터 블라이슈탈에서 일하면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물론 학생 때여서 방학 때만 아르바이트 형태로 일했다. 공장이 집 바로 옆이었고 직원들과 함께 어울리며 성장했다. 

본격적으로 회사 경영을 배운 것은 CEO가 되기 10년 전인 스물세 살 무렵부터였다. 그때부터 제조·생산과 고객 관리 등 회사 주요 부서에서 일했다. 여전히 학생이었기 때문에 주로 방학 때 일했다. 이후 1992년 서른 살 때 블라이슈탈의 생산 담당 부장으로 입사했고 1995년 CEO에 취임했다. 공식적으로는 입사 3년 만에 CEO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20년 동안 회사 일을 두루 거친 뒤에 CEO가 된 것이다.”

독일 명문인 아헨공대에서 박사까지 마쳤다. 회사 경영을 위한 것이었나
“그렇다. 어렸을 때부터 회사 경영을 원했다. 그래서 열처리를 포함해 자동차와 관련된 다양한 금속재료 기술을 학교에서 배웠다. 이는 고객이 원하는 제품이나 고객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아버지도 나와 같은 아헨공대 금속재료공학과를 졸업했다. 나는 딸만 셋인데, 회사 경영에 관심을 보이는 큰딸 역시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서 공부했다.”

능력 없는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줄 수는 없지 않나
“회사를 물려받을 자녀가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회사를 운영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가 지속 성장할 수 없다. 자녀의 능력과 의지, 열정은 블라이슈탈 가족 경영의 철칙이다.”


독일→유럽→글로벌 기업으로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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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러 CEO가 회사 경영을 맡기 전 블라이슈탈은 독일 고객사를 중심으로 한 유럽 자동차 업체였다. 그는 CEO 취임 후 세계화에 집중했다. 회사가 더 성장하려면 시장을 넓혀야 한다고 판단했다. 쾰러 CEO는 “할아버지가 창업했을 때는 고객이 독일 기업뿐이었고, 아버지 때는 유럽 중심이었다”며 “내가 회사를 이끄는 현재는 전 세계 기업을 고객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라이슈탈은 현재 미국·브라질·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에 공장, 영국·프랑스·한국·일본 등에 기술영업 사무소를 두고 있다. 다임러·BMW·폴크스바겐·GM·포드·PSA·르노닛산·피아트크라이슬러·스카니아·현대차 등 세계 유명 자동차 업체 대부분이 블라이슈탈의 파트너다. 

해외 진출 원칙이 있나
“블라이슈탈의 첫 번째 해외 생산공장은 1972년 브라질 공장이었다. 브라질로 시장을 확대한 독일 폴크스바겐의 요청에 따라 블라이슈탈도 함께 진출한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화는 인건비가 낮은 해외에 공장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세계 시장의 고객이 우리 제품과 서비스를 더 편리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려면 소비자와 고객사가 있는 곳으로 더 다가가 의견을 듣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브라질 공장, 남아공 공장(2002년)을 지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중국 공장도 건설했다. 중국 자동차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블라이슈탈의 주요 고객인 유럽·미국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고객사를 따라갈 수는 없지 않나
“당연하다. 블라이슈탈은 진출하고자 하는 국가에 우선 영업사무소를 만든다. 영업부가 현지 조사를 통해 사업 가능성을 판단한다. 우리가 들어갈 만하고 충분히 시장 규모가 있다고 판단하면 현지 공장을 짓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50% 법칙’이다. 처음에는 현지 수요의 50%만 현지 공장에서 생산한다. 현지 조사를 제대로 했다고 해도 상황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한 번에 많은 투자를 해서 생산 설비를 건설했는데 그 시장에서 실패하면 큰 손실을 보게 된다. 50% 법칙을 통해 이런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이후 현지 거래 업체의 주문이 늘어나면, 현지에서 수요의 100%를 생산 공급할 수 있도록 증설한다.”

고객 확보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다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블라이슈탈은 현대차에 납품하기 위해 1994년 한국을 찾았다. 27년 전이었다. 계약을 따내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현대차와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했다. 그 결과 2016년 현대차에 블라이슈탈의 제품을 공급하는 계약을 따냈다. 22년이 걸렸다. 우리는 새로운 고객을 확보할 때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꾸준히 그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관계 유지에도 비결이 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게 중요하다. 그동안 현대차와 꾸준히 커뮤니케이션하면서 현대차가 원하는 품질 관련 기술 컨설팅을 해왔다. 부품 관련 기술 자문 요청이 들어오면 성실하게 답하면서 도움을 줬다.”

기술 경쟁력의 원천은
“할아버지께서 1954년 블라이슈탈을 설립했을 당시 개발한 기술을 현재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오늘날 요구되는 사항에 맞춰 수정하고 발전한 형태다. 이것이 우리 제품의 DNA이자 연구개발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핵심 기술은 유지하지만 세대가 지나면서 개선하고 발전한다. 특히 우리는 제품 개발 과정에서 오래 일한 직원과 젊은 직원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술교육 센터도 운영 중이다. 그래야 시대 변화에 따라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 현재는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이산화탄소 등 배출가스를 줄일 수 있는 재료, 제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4세 경영도 준비하고 있나
“큰딸이 가업을 이을 가능성이 크다. 나와 다른 점은 방학 기간을 활용해 블라이슈탈의 사업장이 있는 해외 여러 나라를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는 점이다. 그는 현재 3차원(3D) 금속 프린팅 분야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물론 그가 가업을 이을지는 능력을 검증받은 뒤에 결정할 일이다.”

박용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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